이런 호사를 언제 누려봤던가.
애 둘을 낳아도 누려보지 못한 호사이지 싶다.
산모는 일단 자신의 몸은 둘째치고 갓난 아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불안정한데다 수시로 울어대는 아이를 쳐다보느라 완벽한 사후조리는 불가능하다.
몇주전 대단치도 않은, 남들도 다 아는(?)수술을 했다.
3일 입원을 하고 이주정도의 휴식이 필요했다.
실로 오랜만의 휴식이었다.
퇴원해 며칠을 남편이 해 주는 밥을 먹었다.
빨래며 대충 하는 청소며 아이들 챙기는 남편을 보니 남자 주부를 보는것 같아
마음이 흐믓했다.
남자 가정주 두고 살고 싶은 내 오랜 바램이 잠시나마 이루어지는것 같았다.
남편은 주방일만큼은 깔끔하게 처리했다.
빨래 널기와 개는것은 기본이고 음식찌꺼기며,특히 분리수거를 아주 잘했다.
다행이다 싶어 한마디 했다.
\"거봐...평소 교육을 잘 받은 덕분에 얼마나 다행이야\"
남편은 일찍 퇴근해 가끔 징징거리기도하고 혼자만 바쁘다고 투덜거리기도했다.
난 느긋한 얼굴을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원래 집안일이라는게 다 그래\"
퇴원한 날부터 나는 온종일 티비 리모콘만 붙잡고 살았다.
누워 있어야만 했기에 할 수 있는건 한가지밖에 없었다.
혼자 있는 시간의 전부와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온 시간에도 누워서 티비를 보았고
남편이 와도 누워서 티비를 보았다.
그누가 와서 티비를 함께 보더라도 리모콘은 내 차지였다.
간혹 다른 방송을 보자고 누군가 나의 동의를 구하면 나는 가차없이 내방에서
나가라고 내몰았다.
침대속에서 집안일은 손하나 까딱 않고 리모콘 하나만으로 가족을 군림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나는 신이났다.
케이블 방송 프로그램도 대충 외었다.
쇼핑을 즐기는 내게 홈쇼핑은 그야말로 천국이었고 품을 팔지 않고도 물건을 구입하니
하루종일 누워 있어도 부러울게 없었다.
하루는 저녁을 먹고 침대에 누워 티비를 보고 있는데 안방문이 활짝 열린다.
열려진 안방문 사이로 냉장고 문이 열려져 있는게 보인다.
\"냉장고 쳥소하시게?\"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보는 내게 남편은 이것 저것 들이밀며 음식들의 유통기간을 묻는다.
관심없는듯 \"대충 알아서 버려...\" 했다.
남편은 궁시렁 거리며 냉장고의 물건들을 식탁으로 옮겨 놓으며 딸아이와 내 흉을 본다.
그러던지 말던지 난 리모콘으로 여기저기바쁘게 이동중이다.
딸아이도 바쁘게 안방에 왔다갔다 하더니 잠잠해졌다.
잠시후 나가보니....
남편의 폼이 가관이다.
상의 매리야스바람에 츄리닝 바지를 입고 고무장갑을 끼고 앞치마를 두르고 씽크대에
잔뜩 쌓인 그릇들을 닦고있다.
자세히 보니 콧노래를 부르고있다.
이런...
언제 틀어 났는지 주방 한켠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가끔 등뒤에서 살며시 안아주던 남편이 생각이났다.
따지고 들면 정말 웃기는 모습이지만 왠일인지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살금살금 다가가 내가 남편이라도 된듯 앞치마를 질끈 두른 그의 허리춤에 손을
감아보았다.
그리고 잠시 그의 등에 머리를 붙혔다가 얼른 손을 빼 남편의 엉덩이를 엉덩이를 툭툭치며,
"어이~피곤한데 그만하고 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