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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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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한눈으로바라보는세상은....


BY 햇반 2005-03-23

 

드라마에는 오래 묵어 찌들은 감정의 찌꺼기들을 떼어낼수있는 산뜻한 정서가있다.
예고없이 반겨드는 손님처럼 설래이고 따뜻하다.

지난 가을 가 보았던 정선의 5일장.

화암동굴,화암약수, 아우라지,약초시장,민등산...
잠시 고향친구를 잊은듯 하다 어느날 불현듯 내 앞에 나타난 낯선그리움.
고향냄새로 배인듯한 뒤늦은 정선의 겨울정취와 정선을 배경으로 드라마 한편.
나는 그날 밤 마지막겨울과 함께 지냈다.
새로 사랑하는 이가 생긴 여자처럼 서둘러 겨울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
여운이 남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천천히 아주 오랫동안 겨울을 잊고 싶었다.
그리하면...
비로소 봄이 되어 새로운 이를 맞이할때면 그도 더욱 화사해 지리란믿음.


어둠이 조금씩 봄비로 얼룩이기 시작하던 이른저녁,매취순 한병을 거의 다 마신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화장실에 철퍼덕 주저 앉아 도로 그만큼을 내것이 아닌양

되돌려 놓았다.
누군가 와서 등을 두드려 주었다.
끔찍히도 사이좋은 제아빠(남편)에게 딸의 모진 항변이 쏟아진다.
왜 엄마를 이렇게 만들었냐고...
아이들은 이상하다.
그러라 한적도 없고 내용도 모르면서 화난 내 모습이나 속상해 있는 엄마를

보면 언제나 아빠에게 덤벼들 기세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영문이람.
아빠(남편)과 한잔 하다가 좀 과음을 했고 그 술에 못이겨 화장실에 갔을뿐인데,
아빠가 엄마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하니 아빠는 참으로 억울해서 못살듯하겠다.


남녀의 감정.부부를 남녀관계라 말해도 좋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미묘한 심리는 꽤나 오랜세월이 흘러도 미묘함으로부터 벗어날수는 없나보다.
숨소리만으로도 상대가 원하는것,작은 몸놀림의 미세한 진동으로도 감지해 버리는

그들의 감지기는 거의 인간의 것이 아닌듯하다.
아니 인간이기에 가능한 그들만의 의사소통에 종종 소름이 끼친다.

 

함박눈이 쌓인 시골의 고즈넉한 풍경.
여자는 남자에게 버림을 받고 강원도 정선의 작은 읍내를 찾아와 홀로서기를 결심한다.
민박을 해결하는 집에서 큰아버지랑 할머니랑 함께 사는 소년을 만난다.
여자와 소년은 외롭고 쓸쓸하다.
불쑥불쑥 집안밖에서 부딫히는 소년과 여인은 친구가된다.
소년은 가까운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하고 할머니를 따라 시내읍내의 시장터에

나가 나물을 판다.
순수하고 부끄럼많은 시골소년과 사랑을 이루지 못해 버림받은 여자의 정서는
적절하게 콤비를 이루고 그들만의 정이 겨울산에 쌓인 눈처럼 조금씩 두터워간다.
여자는 결국 그곳에 정착할것을 포기하고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려한다.
소년은 떠나는 그녀를 잡을 수가 없다.
여자는 소년에게 엄마가 될 수도 없도  소년의 여자가 될수도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는 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데 어울어지는 것이다.

 

떠나는 기차를 따라가다 멈춘 소년.
여자를 태우고 떠난 기차를 바라보는 소년의 앙상한 뒷모습.
여운처럼 길게 늘어진 기차는 정선역에서 그리움으로 서있는 소년의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간다.

 

그날도 그랬다.
말 한마디에 모든것이 엉망이 되는,별 말도 아닌 오해였는데...
감정의 흐름이 순환되지 못하면 막힌다

그리고 쌓인다.
그때문이다.
흐름이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공기나 나쁜게 공기탓인가.
화장실에서 오니 마신 술이 무색할 정도로 몸도 정신도 맑다.
소주두병을 마신 아빠는 몸을 못가누고 침대에 널브러져있다.
술을 마신 아빠는 더러 잠투정을한다.
딸아 재워주라...
아들아 재워주라...
그도저도 다 싫다 마누라 재워주라...
아빠(남편)을 재우려면 아들딸 모두 동원이된다.
잠투정 하는 아이는 일단 재워야 조용해지는 법이니까...
맑아진 정신은 조용해진 집에 좀더 머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티비를 켜고 여기저기 탐색을한다.
7개도 안되는 채널...
밤을 지새기엔 턱없이 부족한 채널이다.
신나게 놀땐 다양한 친구들이 필요하듯 홀로 즐기기엔 다양한 채널이 필요하다.
취하지도 않았는데 취한듯 중얼거렸다.

 

정선에 가면 아리랑 창극공연을 빼놓지 않게 보게될 것이다.
정선 아리랑의 묘미는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절로 구술퍼지는 그 매력아닐까
눈이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 든다~
명사십리가 아니라며는 해당화는 왜 피며~~
모춘 삼월이 아니라며는 두견새는 왜 우나~~

 

소년의 마지막 뒷모습으로 아리랑민요의 한이 정선의 산속 깊이깊이 메아리친다
그토록 민요가 아름답게 들렸던적이 있었던가.

그날밤 나는 술을 마시고 창에 취해 겨울산에 한동안 갇혀있었다.

봄보다 겨울이 더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