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 전쟁이 한창이던 1905년.
김영하의 "검은꽃"은 조선으로 거슬러간다.
조선에서 근대로 이어지는 망국의 시점에서 인간의 삶은 어떤 의미로 우리에게 와 닿는가.
그것은 인간의 의지와는 별개의 해답에서 철저히 유린당해야만 하는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보여준다.
영국의 일포드 호는 당시 불안한 시국을 이용해 여러 계층의 조선인을 배에 싣는다.
신부와 무당, 양반과 왕족, 젊은이,내시 등 1033명을 태우고 멕시코로 향한다.
나라가 망하는 판에 애국의 존재 여부란 있을 수 없다.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고싶은 생존의 몸부림은
일하고 먹고 생존하는것 이외의 별 의미를 두지않는다.
왕족으로 나라의 수모를 뼈저리게 느끼며,너같은 양반이나 왕족들 때문이라는 양
민들의 등살에 못이겨 떠나야만 하는 가슴아픈 그들....
그리고 이보다 나은 현실을 기대하며 꿈을 갖는 젊은이들...
나라를 떠나는 그들이 기대한 것은 일자리와 더 나은 미래 그 것만으로 과분하다.
그러나 대륙식민회사의 농간에 의해 일손이 달리는 멕시코에 채무 노예로 팔려간 조선인들은
배에서 내린 그 순간부터 낯선 환경과 에네켄 농장에서의 가혹한 의무노동의 현실을 보자
경악한다.
자국의 불안과 횡포당하는 처지를 비관하며 밟은 땅 역시도 혁명으로 얼룩지기 시작하고,
그것에 가담하여 혁명군이 되거나 서로가 적이 되어 남의 나라 싸움에 죽어나간다.
왕족의 여자는 사랑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로 돈에 팔려가고 조선의 무당은 이국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이방신으로, 천주교에 입문한 전도사 역시 그가 갈망하는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마귀로 둔갑을한다.
한사람 한사람 그들의 인생이 엇갈리면서 배를 탈때 그 모습과는 전혀 다른 세상의 사람들로
모두 낯설게 살아간다.
혁명군의 기질을 갖고 있는 조선의 젊은 피는 그들틈에 끼여 "신대한'이라는 소국을 세우기도
하지만 결국 정부군 소탕에 의해 대부분 전사하고 만다.
검은꽃은 어려운 현실속에서 슬푼 운명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야기다.
한 사람도 그냥 소홀이 지나치는 법 없이 일포드 호에 함께 탔던 그 순간부터 끝까지
명확하게 카메라를 드리밀듯 쫒아다니며 친절하게 보여준다.
독자는 그들의 안타까움에 안간힘을 쓴다.
그리고 의무적으로 그들의 삶을 보아야 하는 것처럼 어느새 소설속으로 빠져들고만다.
읽고나면 아쉬울만큼 여운이 진하게 남는다.
역사속에 스쳐간 인물들의 이야기라 더 가슴에 와 닿는다.
그들의 삶을 우리가 그대로 안고 살아가는 듯한 기분으로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