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댁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8시쯤이였다
어머님은 이미 큰댁에 가 계셨고 우린 그걸 알기에 바로 형님 댁으로갔다
목포..
그곳은 나에게 머나먼 나라였다
강원도 춘천에서 목포로 시집을 가게 돌줄은 나도 몰랐었다
춘천에서 잠깐 자리를 잡은적 있는 남편과 난 만났고 우리들은 사랑을 했다
결혼하고 바로 서울에서 신혼집을 차리면서 우리들 가족사는 시작이된다
남편은 7남매의 여섯번째,둘째아들이다
결혼전 자신의 어머니 얘기를 하면서 우는 남편을 보고 마음이 참 따뜻한
이구나 생각했다
내가 처음으로 결혼을 후회한것은 아버님 제사를 치르러 시댁에 내려갔을때였다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어머니의 거친 말씀과 그리고 이해할수 없는 성격
같은 나라에서도 이렇게 다른 이질감을 느낄수있다는 걸 처음알았다
무엇하나 내가 살던 집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든것들이 내게는 그저
두려움이였고 낯설음이였다
그런 나를 위로해주는 이는 오직 남편밖에 없었다
난 나를 보여주지도 내 마음을 열지도 않은체 시댁을 그렇게 형식적으로 오갔다
남편이 나에게 불만을 토로하기전까지...
난 그만 남편에게 쇄뇌당했다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끊임없이 내게 이해를 요구했고 애정을 쏟기를 원했고
그 자신또한 내 부모에게도 헌신적으로 대하면서 난 당연 그의 어머니에게도
잘해야한다는 부담을 갖기시작했다
세월이 나를 철들게 했는지 남편이 나를 철들게 했는지...
난 조금씩 어머니를 이해하며 애정을 갖는다
시댁 내려갈때마다 어머니와 며칠을 함께 지내는 그동안이 내겐 너부 힘들고
어려워도 이젠 내가 해야할 일이고 어머니 살아 계실동안 마음 편하게 해 드리자
그것이 남편을 위하는 길이고 후에라도 남편이 내게 원망같은 걸 하지
않으리란 내 잇속이기도하다
어머닌 이미 큰동서와는 화합할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지 오래다
현재 따로 목포에서 지낸다
어머니 홀로 작은아파트에서 홀로 지내신다
내가 자주 못가는만큼 큰형님도 시댁에 갈 이유(?)가 없어진거다
아마도 내가 남편과 결혼하기 전에 많은 불화가 있었는듯 싶다
지난 18일이 어머니 생신이셨다
목포에 가기위해선 족히 이틀을 비워야한다
평일이면 학교 문제도 문제거니와 남편일이 바쁘면 엄두도 못낸다
하지만 남편이 평일에도 시간이 많이 나는 직업이라 가능하면 어머니
생신을 ??少?
이번엔 평일이 좀 어려울 것 같아 주말에 어머니를 뵈러 가기로 했다
그래도 위로 형님이 계시기 때문에 형님과 통화를 했다
저녁은 형님댁에서 준비를 한다고 하니 바로 형님집으로 오라고 했다
그렇게 먼 거리를 달려갔다
형님댁 거실에서 어머니는 작은상 하나를 마주하고 계셨다
아주버님은 그 옆에 앉아 회를 떠서 상에 올려 놓으셨다
반찬몇가지 그리고 국도,찌게도 올려있지 않은 상을 보고 난 좀 의아했다
우리끼리라면 아무 문제가 아닌걸..
일년에 한두번 형님댁에 가실까 말까 한 어머니가 오신 날인데...
얼른 주방으로 달려가 국이 있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회뜨고 남은것으로 매운탕을 끓일거라며 어서 식사를 하란다
얼떨결에 어머니와 마주?蔓?자리...
밥은 차디차게 식어 있었고 마른밥을 드시는 어머니를 보며 난 너무 죄송스러웠다
형님이 시어머니 시집살이를 얼마나 심하게 했는지는 잘 모른다
귀한집에서 오냐오냐 자랐다는 형님이지만 그래도 현실은 현실인걸....
50을 바라보는 그 나이에도 가슴에 한이 남아 있은들 무엇하랴
그동안 바라본 형님도 이해할수 없는 부분이 많은 사람이였다
어머닌 부랴부랴 집으로 가겠다며 데려다 달라고 고집을 피우셨다
아주버님과 남편이 한잔씩 주고받은 술 때문에 내가 모실수 밖에...
그렇게 밥 몇숟가락 뜨지도 못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난 어머니를 위로해 드릴수 밖에 없었다
우리집으로 가시자고...
생신날 아침 안부 전화와 함께 미역국은 드셨냐고 여쭈었다
그래도 가까운데 있는 형님이 미역국은 끓여 드렸겠지 하는 맘으로...
"전화도 안했다!"
어머니 말씀이다
가끔 사람들이 내맘같지 않다는 생각을 할때가 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수 없다는건 너무도 명백하다
내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일이 내가 해야할 몫인가보다
그것이 삶을 건강하고 밝게 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게 사는 사람의 차이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