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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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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이야기


BY 제프 2009-03-10

그날도 지금처럼 졸라 추웠던 날이었던것 같습니다.
 
참으로 너나 할것 없이 모두들 먹고살기 바빴던  70 년대 중반,,
그러니까 까마득히 아련한 30  몇년 전 이바구 입니다.
 
성남 하고도 언덕베기 겁나 많은 상대원동 이라는곳에서 내가 어린시절을 보냈었드랬지욤....
 
휴우~~
 (담배연기 내뿜으며 먼산보고 옛날을 회상하는중,,,,,,,,ㅡ..ㅡ 졸라 멋있오,,,내가봐도,,)
 
동네에서 유난스레 구슬치기에 강했던 3 인방이 있었습니다,
 
영시기,,,,,준배,,,,,,,,,그리고  제프 <--- 특히 쌈치기에 능함,,,
 
그당시 어린애들이 다 그랬듯이,,여름엔 딱지치기 겨울엔 구슬치기 ,,칡캐고 밤따러 다니고
문짝없는 여자화장실 들여다 보고,,,남의 떡치는거 창문너머로 기웃 거리고 놀았지욤,, (나만 그랬나?)
 
좌우지간,,그날
영시기가 구슬치기 해서 꽤나 잃었습니다,
나보다도 키가 한뼘이나 더 크고,,,유독 성숙했던 영시기,
놀이도 잘했지만,베짱좋고 쌈질도 잘했던 친구였습니다.
 
가지고 있던 구슬을 다 잃고 땅바닥 박박 긁어가며 씩씩대고 있었을 때였지요...
 
반대편 언덕에서 조그만 가방을 둘러맨 아저씨가 동네를 돌면서 목청껏 소리를 지르고 오십니다.
 
  - 머리카락 팔아요,,,,,,,,시계 삽니다~ 아아아~!
 
지금 같으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 지만,,,그당시 성남에선 실제로 사람 머리카락도 사가고
시계나 반지같은 귀금속을 사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해는 뉘엇뉘엇 지고,,
봉숭아 물들인 순자 손톱처럼 동네 전체가 시뻘겋던 초저녁 이었습니다.
배가 고팠는지,,장사가 안되었는지,,
얼마 안되는 거리였는데도 머리카락 산다는 아저씨 목소리가 유난히 기운없이 들렸습니다,
 
어느집 처마밑에 잠시 걸터 앉다가 ,,
다시 일어나서,,,한번 더 외칩니다,
 
 - 머리카락 팔아요,,,,,시계 삽니다~아아아,,,~!
 
구성진 엑센트가 그날따라 더욱더 처량하게 느껴집니다.
 
바로그때,,
 
고개를 처박고 씩씩대던 영시기,,
구슬 다 잃고,,무척 자존심이 상했는지 화가 많이 나 있었는지,,
장난 반,,진심 반 이었는지,,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 머리카락 팔아요,,,시계 삽니다~ 아아아,,,,,라는 아저씨의 멘트가 떨어지기 무섭게,,
 
영시기가 그 아저씨랑 똑같은 엑센트로 한마디 날립니다,,,
 
 - 머리카락 안팔아,,,,10 새꺄~~ 아아아,,,
 
쿠궁,,,@@  <---  내 심장 떨어지는 소리,
 
아니나 다를까,,
설마 설마 하던 나의 두려움은 금방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조그마한 검은 가방을 냅다 팽겨치는 아저씨,,
영시기를 향해,,칼 루이스 처럼 전력질주를 하십니다.
 
 - 뭐? 이새끼,,,너 주거써,,,
 
깜짝놀란,,영시기,,
이봉주 보다 더 빨리 토낍니다...
 
때아닌,,가을 운동회 처럼 400 미터 계주 보는것 같습니다,,
잡힐듯 말듯,,,잡힐듯 말듯,,,
 
얼마나 열이 받았으면,,,돈이 들어있는 가방까지 내팽겨치고 생업을 포기한채 영시기 잡으려고
저리도 뛰어 가실까요,,
너무도 놀란 영시기 젖먹던 힘까지 다해서 도망갑니다,,
잘은 몰라도,,,육상쪽으로 빠졌으면 아마 세계신기록 한두개 쯤은 영시기가 세웠을지도,,ㅡ..ㅡ
 
노무노무 착하고 예의바른 제프
어떻게 해야할지 정신을 가다듬고 있었습니다,
너무도 뜻밖의 일에,,,너무도 순식간의 상황에,,,
(그래도 그날 딴 구슬은 악착같이 챙겼지요...암튼 쌈치기는 따라올넘들이 없다니깐,,,)
 
도망간지 한시간,,,그리고 또 한시간,,,
가로등도 없던 시절에,,,동네는 칠흙같이 어두워져 가고,,,영시기는 잡혔는지,
아니면 지금도 도망가는 중인지,,,밥은 먹고 도망가는지,,
걱정이 이만 저만 아니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영시기는 부모님이 없었지요,,
당시 파란 약병을 끼고살던 늙은 할머니와 살고있었는데,
할머니도 거동이 불편하셔서,,영시기가 어디 갔는지,,,집에와서 자고있는지 같이 살아도 모르는
분이었었지요....
 
숙제 빌리러 나간다고 어머니께 구라치고,
영시기 집 주위를 듬성듬성 기웃거려 봤습니다,,
여전히 할머니 기침소리만 요란 하더군요,,
워낙 어린나이라,,,멀리까지 나가보지도 못하고,,
하염없이 영시기 도망가던쪽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시간,, 두시간,,
 
그리고 이틀,,,,한달,,,,몇년,,
 
그날이후 다시는 영시기를 볼수가 없었습니다,, 30 여년이 더 지난 지금도,....
물론 머리카락 산다는 그 아저씨도 동네에 안나타 나셨습니다.
 
훗날,,영시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리를 이사간 동네에서 들었지만,,
그 누구도 영시기 봤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근데,,,
오늘 왜 갑자기 오래전 영시기가 생각이 나는걸까요,,,
 
꼭 한번쯤 보고픈 친구인데,,,,,,,,,,
 
 
  4 시간째 아들한테 쌈치기 비법 전수 해주고 있는 전문 도박꾼 제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