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어린 사과의 힘
올해 일월 초부터 나는 온갖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치 이어달리기라도 하듯 배턴을 건네주고 있었다. 계속되는 주자들의 활약(?)으로 사월 중순인 지금, 나의 심신은 초주검이 되도록 지쳐있다.
이젠 더 이상 갈 곳도 피할 곳도 없을 정도로 막다른 벽에 다다른 내 영혼을 본다.
인간관계를 맺어가려면 이겨내야 할 과정이겠지 싶어 묵묵히 견뎌내고 있는 중이다.
누가 말했던가.
흑인들이 모여 있는 곳에 백인 한명이 있었는데, 아무런 위협을 가하지 않았어도 존재자체로 불편한 존재라면 그조차 죄가 될 수도 있다고.
마치 그 비유가 내 이야기 같은 몇 달이었다.
내가 하는 일은 사사건건 불편하고 걸림이 되었다. 그 장소가 교회라는 것이 나를 숱한 불면의 밤으로 이끌었다. 모든 것이 내 부실함이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차라리 박차고 나왔으면 후련하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믿었던 사람에게서 뒤통수를 맞고,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상대가 거대한 철퇴를 내리쳤다.
4월 고난주간 새벽기도 기간에조차 시기와 질투의 말들은 계속 되었다.
화살촉이 자꾸 나를 향해 날아들자, 반항으로 거부하기보다 지난 내 삶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지천명을 코앞에 두고 처절하게 수난을 당하는 꼴이다.
내 인격에 문제가 있지는 않았나, 스스로 점검하고 고뇌하던 침묵의 몇 날이었다.
차라리 이런 일들을 통해 나의 부실한 인생이나마 돌아보는 계기로 삼자고 다짐했다.
간신히 속을 다스리고 있던 중, 어제 또 예기치 않은 사람과 부딪혔다.
모든 일에 자신감이 있었고 당당했던 내가 이젠 붕괴직전에 이르렀나보다. 가볍게 하는 농담조차 공격으로 느끼게 된다. 오히려 이젠 내 쪽에서 칼날 세우고 상대를 대하며 예민해진 것이다.
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을 같이 나가는 교사가 있다. 도서실에서 아이들의 책을 읽어주며 독후활동을 하는 각 학년 삼십 분정도의 시간이다.
내 심사가 불편해서인지 유난히 아이들의 집중도가 떨어졌다. 급기야 1학년 녀석들은 바닥에 엎드리거나 일어서기까지 한다. 나는 진땀이 나기 시작했다. 도서 선정을 수준에 맞지 않는 것으로 했나, 글 읽는 속도감이 지루 했나 등등. 교사의 부족한 역량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솔직히 녀석들은 매주 그 모양이었고, 나 혼자만의 기분이었다.
겨우 수업을 끝내고 숨을 몰아쉬는데, 함께 수업을 나가는 그분이 이것저것 지적하기 시작했다. 미흡함을 너무나 잘 알고 후회로 고개 숙이고 있는 나를 향해 세밀하게 말하는 것이다. 잠시라도 힘든 나를 위로하거나 이해한 후, 문제점을 나눴으면 좋았을 것을.
순간, 다혈질인 내가 폭발하고 말았다. 그것은 단지 그 순간의 불편한 내용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다.
지난 1월부터 나를 향해 달려들던 그 얼굴들을 향해 침 뱉듯 마구 언성 높이고 그 장소에서 뛰쳐나왔다. 상대는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다음 상황은 나의 안중에 없었다. 차를 거친 속도로 몰고 집으로 와 쇼파에 드러누워 자버렸다. 두통이 심해서였다.
두 어 시간 낮잠을 잤을까. 당장 내일일이 걱정되었다. 수업에서 또 그 분과 만나야 한다.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막막한 가슴으로 저녁을 맞이했다.
미술치료실에서 나오는 아들을 맞이하며 차 문을 막 여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어제의 나의 지랄에 맥없이 당한 그 분이다.
전화건너에서 들려오는 소리.
“선생님! 어제 많이 힘들었구나? 생각해보니 내가 잘못한 거 같네. 정말 미안해!”
단지 이 말 한 줄이었다.
그런데, 나의 귓속에는 다른 소리들이 들려왔다. 올해 초부터 나에게 비수를 꽂던 그 사람들이 전부 한 묶음으로 달려와 합창이라도 하는 것만 같았다.
진심으로 전해오는 사과의 한마디에 그간의 모든 상처가 치유되고 있었다.
어제일 전부가 나의 잘못에서 비롯된 일인데도, 연배가 한참이나 위인 그분이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진심어린 사과의 힘은 대단했다. 옆자리에 아들도 의식하지 못한 채, 핸들잡고 꺼이꺼이 울며 운전을 했다.
집 앞에 주차하다가 다시 그분께 전화를 했다.
“선생님! 정말 죄송하고, 고마워요! 덕분에 그간의 아픈 가슴이 다 치료되었어요!”
정작 비수 꽂던 당사자들에게는 한마디의 사과조차 받지 못했지만, 그분으로 인해 가슴에 쌓였던 응어리가 뻥 뚫리는 개운함을 맛보았다.
연신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미안하다는 그 말 한마디면 되는 것을.
그까짓 거 내 쪽에서 그들 모두를 다 용서해주기로 한다.
저녁을 지으러 주방으로 향하며, 지난 몇 달 동안 굳게 다물었던 내 입에서 찬양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덩달아 아들도 지휘까지 겸하며 노래를 따라 부른다.
오늘 밤은 숙면이 될 거다.
다 해결 되었다!
2015년 4월 16일
진심어린 사과를 받고 감동받던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