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316

도전!


BY 박예천 2014-02-28

 

도전!

 

 

 

시어머니께서 메주 열두 장을 택배로 보내셨다.

장 담그는 철이 되면 의당 시댁에서 거사(?)를 행해왔는데,

올해는 사정이 여의치 않아 나 혼자 해결하게 되었다.

콩 농사가 잘 되어 보내드렸더니 메주를 쑤고 말려 다시 주신 것이다.

일전에 남편 차로 큰 항아리를 싣고 오길 잘했다.

 

치과 치료차 막내시동생 집에 가 계신 어머니는 시시때때 장 담그는 법을 알려주신다.

잘 적으라며 연필과 종이를 준비하라 한다.

전화기를 통해 일러주시는 대로 받아 적었다.

어머니의 수치와 분량은 눈금이나 저울로 매겨질 양이 아니다.

오랜 경험과 지혜로 얻어진 것이기에 전해 받는 나로서는 주먹구구식으로 여겨졌다.

요즘 인터넷을 검색하면 다양한 정보가 있다.

분량과 사진까지 나와 솔직히 어머니의 구구한 설명보다 정확하다.

그럼에도 별 대꾸 없이 어머니식의 전통방법이려니 다소곳하게 들었다.

“집에 감초 있냐? 그거 한 웅큼 넣거라!”

“네에? 한 웅큼이면 몇 그람 정도죠?”

어머니의 음식은 언제나 대충 이런 식이다.

적당히 넣어라, 갖은 양념을 해라. 조물조물 무치다 보글보글 끓으면 저어주거라.

어머니만의 습관으로 익혀진 조리법이다.

 

장 담그는 날짜까지 정해주셨다.

“그 날은 절대 하지 마라! 뱀날이라서 안 된다!”

아무 날이나 편한 시간으로 하면 좋겠는데, 어머니는 꼭 날을 지켜야 한다고 몇 번이고 당부한다.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시어머니 원하는 날 하기로 했다.

그날이 바로 음력 정월 스무 아흐레인 오늘이다.

지난 달 잡아주신 날엔 폭설이 쏟아지는 바람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보름정도 날이 연기된 것이다.

 

도전!
(계란크기를 동전과 비교하느라 남편과 옥신각신 했네요...ㅎㅎㅎ)

 

바닷물 두 초롱을 받아왔다.

천일염 풀어가며 염분농도를 맞추었다.

계란이 백 원짜리 동전 크기만큼 될 정도가 되게 하란다.

드디어 계란이 동동 떠다니며 알맞은 소금기가 되었노라 알려준다.

 

도전!
(사진찍는 남편에게 절대 얼굴은 나오게 말라고 부탁..ㅎㅎㅎ)

 

항아리 속에 메주덩이 집어넣고, 준비한 소금물을 퍼부었다.

혹시나 불순물이 들어갈까 망으로 한 번 걸러주었다.

입구까지 차오르게 하니 바닷물 두 초롱의 양이 들어간다.

어머니가 주신 붉은 고추를 맨 위에 올리고, 감초 한주먹도 고명처럼 얹었다.

마지막으로 참숯 덩어리 몇 조각을 불에 발갛게 태워 집어넣었다.

 

 

도전!
(모양만큼은 끝내주네요~ 맛있게 익어갈 일만 남았답니다^^)

 

이것으로 간장 담그기가 끝이다.

약 사십일 정도 후에 다시 된장 담그는 일이 순차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어제 빻아 놓은 메주가루를 이용해 시어머니와 또 한 번 된장 담그기에 도전할 일만 남았다.

막장도 곁들여 담글 거다.

 

며칠 내내 허리가 쑤셔 꾀를 부리고 싶었지만, 이왕지사 벌어진 일이니 즐기면서 했다.

사실 좀 귀찮고 번거로웠다.

조금씩 사다먹고 말지 굳이 며느리를 부려먹나 별 생각이 다 들었었다.

헌데, 막상 장 담그기 마치고 항아리 뚜껑 닫는 순간엔 내가 엄청난 일을 해낸 듯 어깨가 으쓱해졌다.

종가 며느리까지는 아니어도 전통의 맛을 지켜낸 장본인이 된 기분이다.

 

봄이 온다.

마당 안쪽에서 구석구석까지 온갖 것들이 꿈틀거리느라 난리가 났다.

살구나무가 움이 트고 채 녹지 않은 폭설이 마당중앙에 가득하건만, 그 속에서도 대파는 초록으로 깃대를 세우고 당당하다.

 

우물가에 가기 전, 바라볼 것이 또 하나 생겼다.

수시로 장독대를 넘겨다 볼 것이다.

익어가는 장의 빛깔을 훔쳐보고 손가락으로 찍어먹어 볼지도 모른다.

메주덩이 바라보며 커다란 걱정거리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며 짓눌러왔는데,

오늘 장 담그는 일을 마치고나니 후련하다.

장 담그기! 도전해볼만한 일이다.

 

 

2014년 2월 28일

내 생애 첫 간장 담그던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