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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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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코버섯


BY 박예천 2013-10-01

 

글코버섯

 

 

 

 

가을장마인지 연일 비가 쏟아집니다.

황금들녘마다 볏짚냄새 그득하게 풍기다가 때 아닌 장대비에 딸꾹질 하듯 놀라 멈추고 말았지요. 논바닥에서 굉음을 내며 시동 중이던 콤바인들도 어디로 갔는지 쉬고 있습니다.

빗줄기는 종일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네요.

밭고랑에 풀도 개운하게 뽑아주고 당장 거둘 채소도 없으니 할 일이 없어졌습니다.

주말이면 밭으로 달려가던 남편이 집안에 앉아 끙끙 똥마려운 강아지 흉내를 냅니다.

흙냄새 맡으며 바쁘게 움직이던 시간을 하릴없이 보내려니 얼마나 지루했을까요.

 

지난 토요일, 아침 먹자마자 늘어져 쉬고 싶던 저를 쑤셔댑니다.

친구하나 데리고 산에 밤이라도 주우러 가자네요.

인심 각박해지고 무서워진 세상에 어디 우리 주울 밤 몇 톨 뒹굴고 있을지 의문이지만 둔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 따라나섭니다.

멀리 설악산 바라보며 양양 쪽으로 이어진 길을 갑니다.

산골마을 따라 길섶에 아람 벌어진 밤이라도 있을까 눈에 힘주고 봤지만, 역시나 허탕입니다.

친구가 부동산 통해 소개받았다는 농가주택에 들러 꼼꼼히 살펴보며 오전시간을 보냅니다.

촌뜨기로 살았던 유년시절 탓인지 집 안팎 구석구석 참견하기 쉽더군요.

나무기둥과 흙을 개어 바른 벽이며 눈에 익숙한 가옥구조였습니다.

근처 이름난 추어탕전문 음식점에 들러 콧잔등 송송 땀방울 맺혀가며 맛나게 점심을 먹었지요.

 

야트막한 산 입구에 듬성듬성 밤나무가 있었지만, 길손들이 챙겨갔는지 남아있는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냥 돌아오려니 허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간, 친구의 눈에 뭔가 띄었는지 옥타브높은 음으로 반색을 합니다.

“어머! 산초열매가 꽤 많네?”

처음엔 친구주머니 채우는 일을 거들겠노라 몇 개 따다말았는데, 욕심이 났습니다.

어느새 제가 입고 있던 점퍼와 바지 주머니들이 볼록해집니다.

무게가 더해지니 금방이라도 엉덩이까지 바지가 흘러내릴 것만 같습니다.

성가연습시간이 임박해져 부랴부랴 집에 들러 정리를 하고 교회로 향했지요.

남편은 고성 방향 산에 버섯이 나왔나 보겠다고 달려갑니다.

졸음 쏟아지는 토요일 오후시간에 성가연습을 하는 일은 굳센 의지가 필요합니다.

몸이 노곤해지며 늘어지니까요.

겨우 연습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남편의 전화를 받습니다.

“어디야? 언제와?”

연속으로 물어대는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습니다.

버섯산행의 결과물이 좋다는 뜻이지요.

 

집에 당도하니 과연 풀어헤친 버섯 보따리가 굉장합니다.

“따서 담을 비닐봉지가 없어서 그냥 왔어! 이럴 줄 알았으면, 헌 쌀자루라도 가져갈걸!”

옷도 엉망이고 피곤에 절은 안색이었지만 남편의 목소리는 쩌렁쩌렁 울립니다.

많이 아쉬운지 내일 또 가겠답니다.

처음 보는 갈색 버섯이라 물어보니, 일명 뽕나무버섯이랍니다.

강원도지방에선 ‘글코버섯’이라고 부른답니다.

저녁 먹고 밤이 이슥하도록 따온 버섯의 상태에 등급을 메겨가며 분리해 담습니다.

상품은 시댁과 친정에 보내고, 중품은 시동생과 친정동생네로 보내자며 잘 포장합니다.

하품과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우리가 먹기로 했습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잘 익고 깨끗하며 예쁜 것은 다른 사람 주고 정작 우리는 못난이만 먹습니다.

기분이 언짢아질 만도 한데, 참 이상한 건 좋은 걸 주고나면 잘생기고 품질 좋은 상태를 먹은 것 이상의 포만감이 밀려옵니다.

 

다음날, 주일예배를 마치고, 주룩주룩 비가 오는데도 마저 따오지 못한 글코버섯 사냥(?)을 갑니다.

산초열매 따던 친구까지 불러내어 셋이서 산속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온몸이 젖고 발밑은 미끄러웠지만, 찐한 추억 만들기를 또 한 번 한 것입니다.

오들오들 떨면서도 재미난 일인 양 키득거리며 지천명이 코앞인 나이도 잠시 잊어봅니다.

 

돌아오는 길.

이름에 ‘별미’자가 들어간 식당에서 뜨끈한 국물요리 시켜먹으며 한기를 달랬지요.

젖은 옷 입은 채 서로의 꾀죄죄한 차림새를 쳐다보며 짓궂게 또 웃습니다.

웃음 뒤로 버섯의 이름이 자꾸 메아리치네요.

‘인생 뭐있냐, 좋은 곳 찾아가고 맛난 음식 나눌 사람 있으면 그만이지! 아무렴 그렇고말고!’

그렇고 말고...., 이 말이 ‘글코말고’라는 소리로 들립니다.

우리 셋이 나누는 말끝마다 박자 맞춰 맞장구치며 글코말고 합니다.

이렇게요.

아무렴 글코말고!

내일 저녁식탁엔 글코버섯전골이 올라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