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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돌이


BY 박예천 2013-07-11

 

                                                   퉁돌이

 

 

 

“에라! 사람 참 못됐네. 뭘 그렇게 퉁퉁 거리냐? 나쁜 퉁돌이 같으니라구.”

부슬부슬 장맛비는 쉬지 않고 내리는데 주차장 구석 남편 차에 오르고 출발해서 도로까지 나왔어도 내 입은 구시렁거렸다.

즉흥적인 별명으로 ‘퉁돌이’를 떠올려 그에게 붙여주었지만, 썩 맘에 들지가 않는다. 좀 더 거칠고 무식하며 멍청한 것으로 고민해볼 걸 그랬나보다.

수업이 비어있는 시간, 짬을 내어 아내 혼자 힘들 것이라며 도와주러 온 남편 앞에서 낯선 남자 욕을 종알거리는 내 꼴도 한심하긴 하다.


밭뙈기 하나 사서 이년이 넘게 농사를 짓고 있다.

힘들고 수확이 적더라도 유기농을 고집하며 부부가 땀 흘려 가꾼 보람인지 제법 실한 열매들이 매달린다. 때맞춰 내려준 비와 바람과 햇볕도 한 몫을 했을 거다.

도시에 사는 시동생과 시누이네로, 친정붙이에게로 택배를 보낸다.

푸성귀가 무성해지면 푸른 잎을 따 모으고 쟁여 넣는다.

엊그제 흙속에서 여물어간 감자와 양파를 캤기에 상자마다 넣어 포장을 했다.

감자, 양파, 강낭콩, 꽈리고추, 오이, 상추, 애호박 등등. 양은 적지만 다양한 종류들이다.

거의 일주일에 한번 꼴로 우체국을 찾는다.


헌데, 그곳에서 택배를 접수하는 아저씨 태도가 영 젬병이다.

한 두 번 본 얼굴도 아닌데 볼 때마다 오리주둥이에 심술보가 그득한 표정이다.

처음 봤을 땐, 집안에 우환이라도 있나보다 넘겼다.

우체국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오히려 내가 ‘도 레 미 파 솔!’음으로 인사를 먼저 한다.

“안녕하세요? 날씨도 더운데 수고하십니다!”

답이 없다.

멋쩍어 괜히 웃으며 접수하고 요금 지불하고 나오기를 수차례.

자주 가다보니 접수창구에서 택배스티커 쓰는 시간도 아깝기에, 아예 여러 장을 얻어놓고 미리 적었다가 들고 가기로 했다.

오늘도 감자박스 두 어 개 포장하고 주소적은 스티커를 위에 붙였다. 손에 들고 가다가 비라도 맞아 젖으면 붙지 않을까 해서다.

마침 대문 앞으로 차를 대놓고 기다리는 남편을 만나 빗속에 우체국으로 향했다.


낑낑대며 상자를 날라 접수창구에 올려놓으려는데, 역시나 우리의 퉁돌이 무표정으로 째려본다.

‘왜 저러지? 내가 뭘 또 잘 못했나?’

의아해하며 속으로 생각중인데, 퉁명스런 목소리로 말한다. ‘퉁’이라는 글자와 잘 어울리게.

“이걸 여기다 붙여 오면 어떻게 해요?”

“아? 잘 못 붙인 건가요?”

“무게 달고 주소를 보고 쳐야 하는데, 안보이잖아요! 그 상자 세워도 되죠?”

“어....저기, 세우면 안 되는데요. 내용물이 한쪽으로 몰려서..., 죄송해요!” 라고 말했더니,

손톱 세워서 애써 네임펜으로 적고 붙인 스티커 귀퉁이를 긁어 떼어내려는 거다.

보고 있기가 불편했던지 옆에서 기다리던 남편이 거들었다.

“제가 주소를 불러 드릴까요?”

대답이 없다.

짜증나고 찌그러진 얼굴로 택배상자에 적힌 주소를 옮겨 적는다.

미안해서인지 남편은 듣든지 말든지 퉁돌이(?)에게 또박또박 배송 주소를 읊어준다.

꿀밤 한 대라도 먹이고 싶은걸 속으로 누르느라 참았다.

실수로 스티커 붙인 건데,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던가 아니면 자기가 일어서서 옮겨 적는 수고로 대신한다면 내가 고맙게 여기고 다음부터 신경 쓸 일이 아닌가.

엉덩이 한 번 들고 일어서는 일이 그토록 고된 중노동이었는지 새삼 알았다.


우체국 택배접수창구가 뭔 대단한 상위계급이라고 양 볼에 바람을 잔뜩 집어넣고 있는 건가. 내 쪽에서 먼저 인사를 해도 무표정이거나 무시해버리니.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중앙우체국에 가면 그 양반은 또 어찌나 친절한지 퉁돌이와 같은 성별의 남자임에도 전혀 딴판이다. 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따지고 보면, 우리 동네 우체국 접수창구 퉁돌이만 이상한 거다.

하여간 나도 웃기는 여자다. 기껏 생각해 낸 것이 맘에 안 드는 상대를 향해 별명이나 짓는 소심한 복수라니.

투덜이, 밴댕이 소갈머리 같은 그 사람 특유의 인상과 성질머리를 빗대어 혼자만 즐겨 부르고 있다.


매번 갈 때마다 우체국 퉁돌이 대하는 일도 참 고역이다.

그렇다고 먼 길 돌아 중앙우체국까지 갈 것도 아니고, 퉁돌이에 적응하기 작전이라도 궁리해봐야겠다.

이렇게 나불대고 있지만, 혹시 모른다.

나를 아는 누군가가 내 별명을 ‘퉁순이’ 혹은 ‘변덕쟁이’ 쯤으로 정해놓고 음흉하게 웃고 있을지.

매사 제대로 사는 일이 그래서 버겁다.

 

2013년 7월 11일

우체국 택배창구 퉁돌이 보던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