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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밭은 내 마음에


BY 박예천 2013-05-22


콩밭은 내 마음에

 

 

 

 

저만치 녹색신호등이 켜지고, 가속페달을 밟던 내 입에선 짧은 탄성부터 흘러나왔다.

“아! 저게 뭐지?”

중장비가 동원되어 콩밭을 밀어내고 있다.

간혹 노인의 안부가 궁금했지만, 거의 눈에 띄지 않는 편이었다. 그나마 콩밭이 존재하는 한 언제고 감상할 수 있는 그림이겠거니 맘을 놓고 지냈다.

아무리 도로에 인접해있던 콩밭이었다 할지라도 이토록 한순간에 사라지게 될 줄은 몰랐다.

수신호 보내며 차량행렬 정리하는 남자를 지나치면서 곁눈질로 콩밭만 바라본다.

농사짓던 땅뙈기를 지주에게 다시 빼앗기는 소작농의 심정이라도 되는 양 하염없이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내게 있어 그 공간은, 이름 모를 어느 노부부의 소일거리 삼는 콩밭 이상의 의미였다.

천지가 개벽을 하고 최첨단 문명으로 뒤바뀐 도시가 된다 해도 이름값은 끝까지 해주길 바랐다. 그저 소박한 콩밭으로 남아있었으면 했다.

사전에 노부부와 내가 계약 맺은 것도 아니고, 무슨 조건식으로 대금을 지불한 적도 없으니 어쩌면 이 또한 억지스런 감상이다.

 

그러나 어쩌랴.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지랄같이 생겨먹은 내 속을 탓할 수밖에 없는 거다.

남들 다 웃는 일에도 혼자 망연자실 하고, 모두가 심각한 상황이라며 침묵하는데 배시시 웃음이 나곤 하는 특이한 감성을 지닌 여자가 나다.

정상적이지 못한 이 감성에 또 탈이 난 모양이다.

노인의 콩밭이 사라질 위기에 참지 못한 눈물이 먼저 등장한다.

아쉽다, 안타깝다는 표현보다 짙은 말이 뭐였더라?

갑자기 고장 난 머릿속을 흔들어 봐도 뒤죽박죽 된 낱말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뭔가 사라진다는 것. 견딜 수 없는 아픔이며 혼돈이다.

익숙했던 것으로부터 강제로 이별을 선고받고 분리불안에 떨어야 하는 고통이다.

또 한 번의 소멸이 내게 찾아온 것이다.

천년만년 운명의 끈으로 묶여있을 것 같던 가족이라는 구성원들도 하나 둘 사라지고 있지 않은가.

어느 날 나 역시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

 

콩밭의 존재는 내 범위 속에 큰 위치였다.

찌든 일상에 초록의 호흡기를 대어주었고, 뿌연 시야를 맑게 씻어주는 역할도 했다.

오며가며 복잡한 심사를 정리하기도 했고, 바라보면 뭔가 따스한 결정체들이 피어오르던 땅이었다.

 

반대편 차선 우회전 방향의 폭을 넓히기 위해 기관에서 매입을 하게 된 모양이다.

따지고 보면 당장 콩밭이 공중분해된 것도 아니고, 도로체증을 해결해준다는 마땅한 대책으로 사용되었지만, 나는 못내 슬프다.

은밀하게 간직해왔던 나만의 공간이 오고가는 자동차바퀴에 짓밟힐 생각을 하니 화가 치민다.

진즉에 맘을 접었다며 콩밭이야기는 다시 꺼내지 않았지만, 항상 내 안테나에 접선되곤 하던 곳이었다.

쉽게 내던질 수 없도록 맘을 흠뻑 주고 말았었다.

며칠 동안의 공사를 마치고 통제했던 콩밭도로(?)가 개방되었다.

시커먼 아스팔트 속으로 꽁꽁 묻혀버린 콩밭을 달리는데 가슴이 먼저 아는 체를 한다.

‘여기가 거기였지! 콩밭 나야. 안녕!’

 

콩밭!

사라지는 것이 어디 너뿐이랴.

몇 해를 거듭 사계절 내내 내 마음은 콩밭 네 안에서 뛰놀고 돌아다녔다.

이제부턴 네가 내 맘속으로 들어와라!

그리하여 이야기 제목은 ‘콩밭은 내 마음에’가 되는 거다.

 

 

2013년 5월 22일

콩밭이 사라지던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