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언니
홍 언니
새해 들어 첫 속회가 있는 날입니다.
애초에 거동 불편한 강 집사님 댁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사정이 생겨 장소가 바뀌었습니다.
새롭게 시작되는 날이니, 식사라도 함께하자는 의견입니다.
뜨끈한 굴 국밥 한 그릇씩 먹으며 인사나누기로 했지요.
부족한 저는 인도자라는 책임을 맡게 되어 조금 긴장이 되었습니다.
약속한 장소에 일등으로 들어섰네요.
대화나누기 편할듯하여 주인에게 2층 방으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시간이 되니 홍 집사님이 먼저 계단위로 올라옵니다.
처음으로 한 속이 되었는데도 마치 오래 된 가족인양 자연스럽게 미소가 번집니다.
금요기도회에서 자주 만나서 그런 모양입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가방에서 뜨개질보퉁이 꺼내어 대바늘뜨기를 하네요.
묻지도 않는 말을 먼저 하십니다.
“이거, 아무개 줄 거야!”
이곳저곳 몸도 아프다면서 뜨개질할 때 표정은 그저 밝고 힘차기만 합니다.
뒤이어 속장님과 삼포 사는 이 성도님이 들어왔습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 한 해 동안 속회의 방향과 기도제목들을 여쭤봤지요.
“두 가지만 말씀해 주세요. 첫째는, 올 한 해 교회에서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둘째는 개인적으로 바라는 소망이 뭔지요.”
미리 준비해간 내용은 아니었지만, 인도자로서 기도해야할 제목정도는 알아야겠기에 수첩을 꺼내들었습니다.
돌아가면서 한 분씩 자세히 알려주십니다.
혹시 잊기라도 할까봐 별표시를 하거나, 밑줄을 그어가며 적어두었습니다.
제 얘기를 해야 하는 순서가 왔지요.
개인적은 바람을 밝히는 부분에서 ‘올 해는 글 좀 많이 쓰고 싶다!’ 라고 했습니다.
홍 집사님 표정이 사춘기소녀처럼 발그레해집니다.
“나두 글 쓰고 싶었는데....., 시인이 되는 게 내 꿈이었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꿈꾸는 건 다 이뤄지거든요.”
힘을 실어드리고 싶은 맘에 응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맘은 하고 싶은데, 이젠 그럴 수가 없어! 사고 몇 번 나고 머리가 엉망이 되어 버렸어. 기억이 나질 않거든.”
마치 남의 얘기하듯이 초연하게 웃으며 말합니다.
특별히 건강에 대한 기도 부탁하다가 일동은 폭소를 터뜨립니다.
“난, 아프지 않은 곳이 없어요. 허리디스크, 목디스크에....등까지 아퍼!”
앞자리에 속장님이 말을 받아 넘깁니다.
“홍 언니! 등판대기도 아프잖어! 인도자님, 등판대기 좀 안 아프게 기도 많이 해줘요!”
그냥 ‘등’도 아니고 꼭 ‘등판대기’여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홍 집사님 등판대기를 치료해 주세요!’ 라는 상상에 속으로 웃습니다.
주거니 받거니 나누는 말이 정겹습니다.
예전 저의 중고등부시절 교회 성극연습하다 집에 와서 아버지께 한 마디 하다 호되게 혼났던 기억이 납니다.
“아부지! 섭이 오빠가 자꾸 한 줄 밖에 안 되는 대사를 바보같이 자꾸 까먹는 거 있죠?”
교회에서 ‘언니, 오빠’ 라는 호칭을 쓰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미 주안에 형제, 자매인데 그렇게 부르냐고 혼내셨지요.
그러나 우리의 홍 집사님은 어쩐지 다른 이름보다 ‘홍 언니’가 익숙합니다.
마땅히 누구 집사님, 권사님으로 불러드려야 하는데, 그 분은 그냥 우리들의 ‘언니’ 이어야 할 것만 같습니다.
인도자가 한 턱 내겠다고 선포했으나, 굳이 맏언니가 계산하겠다고 떼(?)를 써서 얻어먹고 말았지요.
어느새 시켰는지 싱싱한 굴과 수육까지 추가로 나옵니다.
꼭 얻어먹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홍 언니에게서 퍼주기 좋아하던 우리네 어머니 모습이 떠오릅니다.
옷이고 음식이며 어떤 물건이든지 이웃에게 나눠주려 합니다.
어쩐지 홍 언니는 정이 그리운 분만 같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고, 눈 맞춤 오래 지속하고픈 천성이 여린 여자입니다.
남자형제들 틈에서 언니 없이 자라서인지, 아까부터 거침없이 부르는 속장님의 ‘홍 언니’ 소리가 부러웠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든든한 ‘홍 언니’를 주축으로 4속이 첫 발 내딛게 되었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속회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고 싶은데,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겨울 찬 기온 사이 고루 퍼지는 햇살이 따습고 감사한 날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