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줄에 사랑 엮어
잘 자란 오이 싹이 줄기를 뻗기 시작했다.
땅바닥에서 계단 철제난간까지 연결하여 남편은 비닐노끈을 매달아 놓았다.
저 매끈하기만 한 끈에 과연 넝쿨손이 닿을까 의문스런 맘으로 며칠 지켜보았다.
역시나 제대로 잡고 오르지 못한다며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혼자 남아있는 오전시간.
어설프더라도 모름지기 농부의 딸이니 내가 나서야 할 차례이다.
공원길 끝 쪽 밤나무가 가득한 야산으로 향했다. 베어버린 긴 가시나무와 잔가지를 여러 개 집어 들고 왔다.
골목길을 질질 끌고 오는데 어디 땔감 주워오는 촌 아낙의 모습이다.
잔디밭에 나뭇가지들 내려놓고 주섬주섬 뭔가를 찾았다.
달포 전인가. 양양 장날 싸게 사온 총각무로 물김치를 잔뜩 담근 적이 있다.
대 여섯 단 묶었던 짚을 버리지 않고 모셔놨었다. 혹여 쓸 일이 있을까 해서다.
장독대 구석을 뒤지니 아직 그대로다. 마른 짚 수돗가에서 대충 물기 적시고 새끼를 꼬기 시작했다.
겨우 한 가닥 짚 풀만 들어갈 정도로 가늘게 꼬았다.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손바닥 힘을 모으며 비벼댔다.
마음으로 들리는 소리가 있다.
이름 없는 풀포기가 흔드는 소리에도 의미가 있음을 배워간다. 우리 집 마당에 사람은 나 혼자여도 온종일 수다스럽다.
전부 초록빛으로 지껄이기도 하고, 어쩌다 색색의 꽃을 머리에 이고 자랑하기도 한다.
그들의 언어에 일일이 답해주느라 내입도 쉴 새 없이 떠들고 다닌다.
잘 자랐네, 내 손에도 꽃 피워주어 정말 고맙다 등등.
작기만 한 푸른 공간에서 대화가 끊임없이 샘솟으며 이어진다.
오이줄기의 안간힘쓰는 소리를 들은 것도 마음으로 들리는 움직임 때문이었다.
새끼줄 길이가 늘어간다.
꼬불꼬불 잔디밭으로 기어 내려간 줄 따라 사랑방 할아버지도 기억 속에서 굳은살 손바닥을 비빈다.
방문을 열면 노인의 찌든 냄새 보다 언제나 짚 풀 향기가 먼저 코끝으로 닿곤 했다.
방구석에 쟁여놓은 날고구마를 파먹으러 들어갔다가 단물나게 깨물며 그냥 주저앉아있었다.
다발로 묶여진 새끼줄 더미 곁에서 할아버지는 그날도 퉤퉤 침 뱉으며 꼬아 내렸다.
적당히 길어지면 슬쩍 엉덩이를 들추며 빼놓는 줄.
등 뒤에 웅크리고 앉아 꼭 똥 줄기 같다며 속으로 웃던 나는 악동 손녀딸이었다.
똥줄이 빠지게 애면글면 땀 흘렸기에, 줄줄이 매어달린 새끼들 입이나마 거미줄 치지 않았겠지.
숨차게 늙어 백발성성했던 할아버지는 의식을 놓는 순간까지 새끼줄을 꼬았다.
멍석, 삼태기, 맷방석들을 짚으로 꼭꼭 여미느라 가시 박힌 손은 더 딱딱해졌다.
두어 자를 넘겼을까.
손바닥이 화끈거린다. 더 꼬아 내릴 짚도 모자라고 이쯤에서 접어야겠다.
주워온 나뭇가지로 오이포기마다 기둥세우고, 방금 만든 새끼줄을 얼기설기 가로로 엮는다.
자연을 닮은 초록빛 오이줄기도 짚 풀의 냄새가 그리웠으리라.
마음으로 들으니 정 없는 노끈보다 백만 배 낫다고 외친다.
그 어렸던 날.
할아버지 곁에서 날고구마만 어석어석 깨물다 나오지 않길 잘했다.
떼쓰고 징징거려 새끼 꼬는 법을 익혀두었으니 정말 다행이지 않은가.
여든 여덟에 떠나신 할아버지대신 곁눈질로 배운 새끼줄 잘도 꼬았으니, 먼 곳에서 나를 보시면 기특하다 하시려나.
쭉쭉 뻗어 넝쿨손이 새끼줄 잡고 오르기를 헤벌쭉 웃으며 바라본다.
여전히 마음의 소리로 당부하는 내 의중을 오이네 일가도 알아들었겠지.
대롱대롱 사랑담아 길쭉하게 열매들도 매달아 놓길 간절히 바라노라.
알겠지? 오이들!
2010년 6월 9일
기억 더듬어 새끼 꼬던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