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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 틈에 끼어


BY 박예천 2010-06-03

 

                    쑥 틈에 끼어

 



이미 두 차례나 쑥개떡을 해먹었다.

쫀득하고 찰진 맛에 너도나도 손이 가는 떡이다. 간식삼아 내 놓으니 아이들이 쉴 새 없이 입가로 가져간다.

시어머니 생신 때도 쑥내음 가득한 개떡 반말을 들고 갔다. 시누이며 아랫동서, 조카들까지 볼이 미어져라 잘도 먹는다.

죄다 들고 가는 바람에 정작 우리 먹을 떡이 모자란다. 냉동실에 몇 덩이 얼려놓은 것이 달랑거린다. 나눠주고 퍼 돌리다 보니 남은 게 없다.

즉각 원료 채취에 나섰다.

새로 이사한집 구경삼아 친정 부모님도 오신다는데, 이참에 쑥향 물씬 담은 그 떡을 선보이고 싶기도 했다.


초여름이다 싶게 해가 따갑다.

이번엔 북쪽으로 달린다. 기온이 낮은 지역이니 쑥도 아직은 연하겠지.

산골짝 군부대 앞을 휘돌다가 낮은 둑 가까이에 멈췄다.

여리고 보드라운 쑥이 지천이다.

작업복 삼아 입고 온 청바지에 쑥물이 들든 말든 퍼질러 앉았다.

챙이 넓은 모자 눌러쓰고 산 아래를 내려다본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미풍에 쑥 향기까지 섞여와 운치가 그만이다.

손안가득 뜯어 모으다가 아득히 눈을 감아본다.

좋구나! 산과 들이 지척이라 맘만 먹으면 달려올 수 있으니.

달달거리며 무논을 삶아대는 트랙터 혹은 경운기소리가 유년의 들녘 아지랑이 가득했던 기억 속 샛길로 펼쳐진다.   

내 나이 듦은 보이지 않고, 마음은 마냥 한 곳으로만 달리는구나.


쑥쑥 올라온 쑥을 뜯는데, 참 이상도하지.

모양도 색도 쑥처럼 생긴 풀이 사이사이 끼어있다. 자세히 들여다봐야 식별이 가능할 정도이다. 지난번엔 들국화가 섞여있었으나 곧 찾아내곤 했는데 이 풀은 다르다.

가려가며 뜯어내다보니, 하는 짓이 나를 닮았구나싶어 꺾어들고 한 소리 읊었다.

“어찌 너는 쑥도 아닌 것이, 쑥 틈에 끼어 쑥인 척 하고 있는 것이냐!”

밭두렁 아래쯤에서 낫으로 쑥대를 베던 남편이 힐끗 올려다보며 픽 웃는다.

“누구랑 뭐라는 거여? 일하기 싫으니 잔꾀나 부리고.”

“아니, 이거 봐. 생긴 건 쑥인데 향기도 없고 위장하고 있는 게. 꼭 나 같네!”

엉뚱하기만 한 대답에 남편은 의아한 표정이다.

“잘 봐! 내가 그렇잖어. 작가도 아닌 것이 글 쓴답시고 작가들 틈에 끼어 제대로 작가냄새는 나는지 말이야. 에휴!”

 

엉성한 글을 써 놓고 작가흉내 내는 꼴도 우습고 한심한 지경이다.

지극히 자신 없는 태도도 문제가 되겠지만, 언제 들여다봐도 내 옅은 그릇은 바닥이 드러나게 작다.

다양하고 폭넓은 시야로 접근하고자 들이댔다가도 쩔쩔매며 접는 것이 나다.

누구보다도 내 자신의 됨됨이와 주제를 잘 파악하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어색해진 분위기 좀 돌려보고자 남편에게 한마디 건넨다.

“당신도 말이지, 혹시 교육자도 아닌 것이(?) 교육자들 틈에 끼어 진정한 교육자인척 하고만 있는지 되짚어보란 말씀이야! 알겠소?”

듣고 있던 그가, 쓸데없는 개똥철학 나불대지 말고 쑥이나 뜯으라며 쏘아본다.

낫질하는 손으로 내리칠 기세다. 

낄낄대고 웃다가 길옆에 향기로운 아카시아 꽃이나 훑어오자 했다. 집에 두고 온 토끼양반에게도 단 꽃 맛을 넣어줘야 한다면서.


이른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투표소에 다녀왔다.

내미는 공약마다, 구호마다 자신이 제대로 된 정치인임을 호소하던 몇 날이 지났다.

확성기가 터져라 노래로, 형형색색 옷들 차려입고 열 맞춰 춤까지 선보였다.

누가누구인지 어리둥절 파악조차 힘든 상황에 전부 왕왕거리니 정신없었다.

쑥 틈에 끼어 저도 쑥인 척 의기양양 고개 세우던 그 풀빛을 보니 정치인인들 다를까 싶다.

저마다 제대로 하겠다며 외치는데, 틈에 끼어 그냥 묻어가려는 것은 아닌지.


어릴 적 할머니도 민화투 즐기는 사람들 틈에 몸 들이밀며 우스개 소리 하시곤 했다.

“참깨 들깨 노는 곳에 아주까리도 끼어주게나!”  

참기름 들기름을 아주까리기름과 어찌 견주겠는가.

그래도 같은 기름과에 속하니 묻어가고자 청한 말이다.

 

내 삶이 이도저도 아닌 것으로 비춰온다.

진정한 어미의 역할도 못한 것이 아이 낳았으니 이름만 어머니가 되어, 참된 모성 속에 끼어 덤으로 묻어간다.

뭐든 똑 부러지게 해 놓은 결과물이 없다. 대충 세월만 가라 식이다.

향기로, 색으로 다가 설 나만의 것이 뭐였더라.


곁을 지나는 이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느 틈에 끼어있는지요?





2010년 6월 2일

쑥 틈에 끼어 잘난 척인 잡풀 바라보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