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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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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며느리들이 산다.


BY 박예천 2010-05-20

우리 집에 며느리들이 산다.


 

 

행동 하나하나가 맘에 안 든다.

굼뜨게 느릿느릿 반응하는 멍청한 태도도 그렇고, 주구장창 한 벌뿐인 옷 모양새도 보기 싫다.

뭔 말을 하면 알아듣는 표시라도 하던지, 우이독경인 꼴이니 한 대 쥐어박고 싶다.

잔소리도 아깝다.

도대체 가정교육은 제대로 받았는지 의심스럽다.

어른 말에 무조건 순종하는 듯 보이지만 완전 무시하고 있지 않은가.

동으로 가라하면, 서쪽을 향해 생각 없이 방향을 틀고 있으니 속이 터진다.

아예 조용한 곳에 몸 숨기고 있으라며 당부해봤다.

자숙하는 심정으로 구석에 들어앉아 생각정리라도 하길 바랐다.

한동안 조용하기에 이제야 내말대로 하는가보다 안심하고 있었다.

웬걸. 나 모르는 사이 은밀한 장소에 떼를 지어 모여 있다.

쑥덕거리는 중이었는지 갑자기 다가서자 움찔 놀라며 다들 부동자세를 취한다.

보나마나 뻔하다.

같은 처지들이니 또 한자리에 모여 구시렁거리며 내 흉이나 보았을 것이다.

말투가 표독스럽다느니, 쉴 새 없이 퍼붓는 참견에 견디기 힘들다 떠들었겠지.

듣지 못했으나 그것들이 벌인 대화의 상황을 미루어 짐작하는 바, 내치기로 정했다.

당장 내 집에서 썩 나가라 소리쳤다.

들고 나갈 것도 없으니 맨몸으로 그 좋아하는 단벌옷이나 걸치고 문밖으로 사라지라 호통을 쳤다.

발끈 화를 삭이며 씩씩거리는데 여전히 미련한 꼴로 미동조차 않는다.

처음엔 그래도 일말의 양심이 있어 반성하느라 고개 숙인 것이라 여겼다.

헌데, 자기네들끼리 귓속말로 안테나 세우며 말을 옮기는 게 아닌가.

한쪽에선 아예 나를 무시한 채 서로 끌어안고 포개어져 난리가 났다.

어른 알기를 발톱에 때만큼이나 우습게 아는 작태들이다.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알아서 집 나가주기를 기다리기엔 내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는 거다.

“당장, 내 집에서 나가라. 썩 꺼지란 말이다. 이것들아! 내말 안 들려?”

앙칼지게 핏대를 세웠다.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소릴 들었다면, 오만정이 똑 떨어져 발딱 일어나 대문 박차고 나갔을 것이다.

이것들은 정반대인 꼴이다.

굳세고 질기게 눌러 붙어 죽어도 여기서 죽고 마침내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조선시대 여인에게나 있을 교육을 받았는가. 

마당으로 내려가는 돌계단 붉은 벽돌을 부여잡은 채 꿈쩍을 않는다.

동정심이라도 유발하도록 눈물을 보이거나 가엾은 척 표정이라도 짓는다면 달리 생각하려 했다.

전혀 아니다. 오히려 더욱 당당해진 걸음걸이로 특유의 짜리몽땅한 몸체를 비틀대며 엉뚱한 방향으로 걷듯이 기어간다.


어느 날은 감히 내방에 들어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벽 쪽에서 멀뚱히 기대있기도 한다.

나도 그리 모진 여인은 아니다.

어차피 식솔이 되었으니 다 거두어야 한다고,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되씹기를 두어 달.

벽창호 같은 존재들에게 더 이상의 관심은 오히려 인력과 시간의 헛된 낭비다.

대충 외면할 수도 없으니 속이 터진다.

마당 어느 곳을 가도 허리 없는 몸통을 이리저리 굴리며 나보다 앞서 있다.


미나리를 꺾다가, 열무 순을 솎다가 깜짝깜짝 놀라며 소리치다보면 남편은 저만치서 웃는다.

“그냥 냅 둬라! 걔네들이 뭐라 하든?”

물론 뭐라 먼저 말한 적도 없고,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생김자체가 그냥 혐오스럽고 징그럽다.

태평하게 텃밭 물 주느라 몰두중인 남편 뒤통수에 대고 큰소리로 받아쳤다.


“당신은 좋겠네! 이 많은 며느리들을 거느린 시아버지라서 말이야.

이름도 근사한 쥐며느리!”


그렇다.

우리 집엔 쥐며느리들이 바글바글 모여 산다.

하필이면 이름에 며느리가 붙느냐 말이다.

며느리 밑씻개, 며느리발톱 등등.

설움 겹고 배고픔에 절었던 며느리의 아픈 이름이 왜 또 그 벌레 끝에서 달랑거리느냐.    

부탁이다.

제발 나를 너그러운 시어미로 살게 해다오!




 


 

2010년 5월 20일

마당에서 굴러(?)다니는 쥐며느리 떼 보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