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인발
제대로 성이 났나보다.
발끝에 뭔가 툭 부딪히기만 하면 아찔한 통증이 전해져 온다. 저녁설거지를 끝내는 순간까지도 멀쩡했었다. 양말을 벗어 확인해보고 싶었으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겼다. 시계 분침은 밤 아홉시를 막 벗어나고 있다. 욱신거리는 강도가 점점 심해진다. 허나 병원을 찾기엔 늦은 시간이다.
조심스럽게 오른쪽 발 양말을 벗겨냈다. 이런, 네 번째 발가락이 고장이군.
탱탱하게 부풀어 올라 있다. 벌겋게 독 오른 살집은 그나마 못생긴 발톱까지 덮어버릴 듯 잔주름하나 없다.
진짜 아프다. 응급실이라도 달려가고 싶을 정도로.
잠자리에 들었으나 정확히 심장박동 수만큼 박자 맞춰 쑤셔댄다. 내버려 두면 온 신경세포가 발끝으로 모여 밤새 이럴 것이다. 어쩐다지.
문득 알고지내는 후배아낙이 지나치며 내놓은 말이 떠오른다. 생손가락을 자주 앓는데 상처부위에 고운 소금을 뿌려 싸맨다는 것.
그야말로 제대로 된 상처에 소금뿌리기 치료법인 셈이다.
찬장 양념 칸을 열어 고운소금 병을 꺼냈다. 종이 깔고 탱탱하게 부은 발가락 위로 소금가루를 뿌리니 알갱이들이 바닥으로 낙상하느라 정신이 없다. 가루가 붙어있을 촉촉함이 없으니 제각기 흘러내리며 난리다. 아쉬운 대로 발톱사이사이 소금 탑을 쌓고 거듭 올렸다.
붕대로 친친 동여매고 반창고를 붙이니 전쟁터에 부상병이 따로 없다. 절뚝거리며 침대로 돌아와 다시 잠을 청해본다.
아! 웬걸. 아까보다 몇 십 배 아니, 몇 백배는 더한 고통이 느껴진다. 머리카락까지 뻣뻣하게 세워지도록 저릿저릿하다. 잠자기는 글렀다.
덜컥 겁이 난다. 돌팔이도 아니고 괜한 처치로 멀쩡한 발가락에 오히려 병을 추가하게 된 것은 아닌지. 거의 밤을 꼬박 샜다.
다음날 아침.
속이 궁금했지만 끔찍한 상태로 변해있을까 두려움에 망설여진다.
조심스럽게 양말을 벗고 붕대까지 풀어본다. 간밤에 온갖 세균 병사들이 모여 악전고투를 벌이던 발가락이다. 몹쓸 상상이 동원되고 있다. 상태가 악화되기라도 하면 병원으로 달려갈 참이다. 누군가는 발톱을 뽑기까지 했다는데, 그 꼴 될까봐 내심 겁나는 순간이다.
짜잔, 드디어 개봉이다!
완전 여름날 소금에 절여둔 오이지다. 쪼글쪼글 살갗이 바람 빠진 풍선껍데기 같다. 발톱 밑으로 노란 고름이 새어나오고 있다. 휴지를 말아 꾹꾹 눌러 닦았다. 신기하게도 거짓처럼 아픔이 사라졌다. 살짝만 건드려도 소스라치게 전기오던 통증이 없다. 소금기가 농을 다 빨아먹었다는 얘기다. 항생제 연고를 바른 후 다시 소금가루를 뿌려 싸매두었다. 내친김에 뿌리 뽑을 심산이다.
이제 서서히 소금뿌리는 민간치료법에 확신이 들기 시작한다. 정성껏 싸매고 뿌리기를 며칠간 계속했다. 드디어 허물이 벗어지고 새살이 나온다.
지난겨울이 끝나가던 그 자리에서 나는 지독히도 심한 생인발을 앓았다.
꼭 그 무렵이었을 거다. 베란다 앞 화초가 맥없이 무너져 내린 날이 말이다.
내 몸 챙기느라 외면했던 무심함에 속절없이 고개 꺾고 말았던 이름 모를 선인장.
엄청나게 미안해졌다. 초록의 물오른 자태를 보고 기특하다 대견하다 여겼는데 녀석도 생인발을 앓고 있었던 거다.
모진 추위 잘 이겨내고 봄의 초입에 우뚝 서는가 싶더니 고꾸라지고 말았다. 겉모습 푸르기에 뿌리 쪽도 건강하리라 믿었다.
나는 그랬는데...., 겨우내 머릿속부터 엉거주춤 머무르던 상념의 찌꺼기들이 밑으로 빠지느라 생인발을 앓았노라 속말을 했는데.
마침내 발톱 밑을 지나 농이 빠져나오고 소금가루 한 줌에 거대한 세정식을 거행했노라 스스로 의미를 부여했는데......, 푸르던 날 곁을 지키던 한 포기는 가고 말았다.
녀석에게 뿌리는 머리였음을 내 발가락이 온전해 지던 날 울컥 느꼈다. 농이 시작된 지 한참이었을 텐데.
화분 속 흙을 쏟아내는데, 이미 시작된 선인장의 두통은 만신창이 뿌리 속에 짓무르고 있었다.
한줌 소금이라도 흙속에 묻어줄걸 그랬나?
잎 끝으로 빠져나와야 했을 고름기가 뿌리에 고여, 지난겨울 나는 일어섰고 녀석은 넘어졌다.
마당가에 내 놓은 빈 화분을 씻다가 정 떼고 가버린 녀석 생각이 났다.
그래. 추었으니까, 충분히 아팠으니까 봄이 오는 거야.
저길 봐! 살구나무도 몽실몽실 제 새끼들을 매달고 있는 걸.
분홍 꽃잎 터지는 날, 네 얘길 해 줄게. 너도 나만큼 겨울을 앓았다는.
잘 가라 선인장 친구!
2010년 4월 5일
햇빛가루 날리는 마당 있는 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