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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의 노래


BY 박예천 2009-11-12

 

          어부의 노래

 


푸른 물결 춤추고 갈매기 떼 넘나들던 곳

내고향집 오막살이가 황혼 빛에 물들어간다.

어머님은 된장국 끓여 밥상위에 올려놓고

고기 잡는 아버지를 밤새워 기다리신다.

그리워라, 그리워라 푸른 물결 춤추는 그곳

아~저 멀리서 어머님이 나를 부른다.

 


        (우리집 어부양반(?)이 작년에 찍은 바다 사진 몰래 훔쳐와 올립니다...^^ 파도가 심하지요?)

 

 

요즘 나는 이 노래에 빠져 지낸다.

워낙에 음치인지라 높낮이는 포기한다 해도, 어찌하여 가사가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는 것인가. 나이를 먹는다는 확실한 증거다. 입안에서만 맴돌고 터져 나오지 않는 노랫말 외우느라 애를 먹는다. 종잇장에 적어놓고 운전 중에도 중얼중얼 수험생이 따로 없다. 애잔하도록 울려나오는 가수의 음색에 도취되어 갖은 똥 폼 잡고 흉내 내어 봤지만 한곡을 깔끔하게 마무리 한 적이 없다.

저녁밥 짓다가도 웅얼거리니 쳐다보던 남편은 한심한지 혀를 끌끌 찬다.

“도대체 얼마동안 연습만 하는 거냐? 아예 민요를 읊어라, 거기서 왜 꼬부라지냐구!”

멋들어지게 뽑아보려다 지나친 기교를 섞었나보다. 좋은 노래 망친다고 눈을 부릅뜬다.

두고 보라지. 노래방이라도 가는 날 눈이 번쩍 떠지도록 놀라게 해주마.


아들이 치료받는 동안 주차장 구석에서 목이 터져라 연습중이다. 남편이 저장해 준 추억의 노래 덕분에 스피커가 문드러지도록 듣고 있다.

한 시간 공부를 마치고 나온 아들 녀석.

조수석에 앉자마자 멀뚱히 나를 쳐다보더니 하는 말.

“31번!”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보니 네비게이션 화면 노래목록이다.

녀석도 적잖이 익숙해진 모양이다. 31번은 바로 ‘어부의 노래’였다.

복습차원에서 클릭을 하고 다시 듣는다. 운전대를 돌리며 다시 목청 뽑아대니 아들이 주먹 쥔 손을 어미의 입가로 내민다.

“왜? 이게 뭔데?”

정면만 주시하면서 아주 짧게 외친다.

“마이크!”

놀라워라! 잘 준비된 환경에 친절한 매니저까지 있다.

가속페달을 악기의 부분인양 밟아대며 ‘어부의노래’ 한곡 터뜨렸다. 이따금씩 곁눈질로 아들을 쳐다보며 윙크도 잊지 않았다. 간주가 흐르는 동안은 연실 아들의 주먹손 마이크에 뽀뽀세례를 퍼부었다.

   

마침 노래 제목도 그러하니, 이쯤에서 우리 집 어부 한 분을 소개해야겠다.

자칭 본업이 어부이며 부업으로 교사직을 하고 있노라 외치는 남자이다. 퇴근하기 무섭게 어느 드라마의 못난이처럼“밥 줘!,밥 줘!”라고 다그친다. 저녁밥 먹자마다 낚시도구와 어망 챙겨들고 현관문을 나선다.

“얘들아, 아빠 고기 많이 잡아올게!”

아이들도 당연한 듯이 잘 다녀오시라, 큰 것으로 잡으라는 둥 넘치게 배웅을 한다.

낚시에 건져지는 것이 없는 날에도 꽃게, 홍합, 전복, 소라....등등 빈손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신선한 해물을 자주 먹으니 고맙기는 하다. 그러나 온 집안에 풍겨대는 비린내는 참아주기 힘들다. 마당이라도 훤하게 있는 집이라면 모를까 아파트인 주거환경에선 반갑지 않은 냄새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못마땅한 것은, 남편의 허무맹랑한 꿈이다.

“이담에 애들 다 크면 나룻배 타고 나랑 고기 잡으며 살자! 나는 잡아오고 너는 손질해서 요리하면 좋겠지? 그치?”

‘그치?’라고 쭉 내미는 입술을 한 대 퍽 때려주고 싶었다. 꼭 바보 용팔이 같은 말만 한다. 쭈글쭈글 늙어서까지 새로운(?) 남자도 아닌 몇 십 년 쳐다보고 살던 그 남자와 배를 타다니. 어림 반 푼어치도 없음이다. 신선놀음도 아니고 수산물 획득 작업 인부로 동행하자고?

나는 따발총을 입에 달고 연타로 발사하기 시작했다. 

속초를 떠나지 못하고 사는 이유도 거기에 있단다. 바다 전부가 남편자신의 어장(漁場)이라는 것이다.

방파제공사라도 있는 날이면 풀이 죽어 들어와서 잔뜩 구긴 얼굴로 한마디 한다.

“아무래도 이사를 가야겠어. 자꾸 공사를 해대니 고기들이 잡히질 않는다구!”

기가 막혀라! 고기 잘 잡히는 바닷가로 발령신청을 해보겠다고 한다. 그냥 해보는 소리이겠거니 하다가도 입이 떡 벌어진다.

냉장고가 넘쳐나니 스스로 냉동고를 구입해 온 남자다. 잡아 온 수산물 저장고다.


요 며칠, 하늘에서 눈비 뿌리느라 낚시도구들이 잠만 잔다. 퇴근 후 거실 티브이 앞에서 뒹굴던 우리 집 어부도 끙끙 앓는다. 흐린 하늘에 주먹질만 해댄다.

베란다와 작은방 가득 넘쳐나는 어구(漁具)들을 정리하고 들춰보며 밤 시간을 보낸다.


점심나절로 접어드는 지금.

반짝 햇살이 창 앞에 포개지는 것이 보인다. 저녁풍경은 안 봐도 짐작 간다.

노랫말 속 어머니가 되어 된장국이라도 끓여야 할까. 허나 나는 고기 잡는 아버지를 밤새워 기다릴 자신은 없다.


아~! 저 멀리서, 어부님이 나를 부른다.

‘밥 줘!’라고 외치며....,






2009년 11월 12일

어부의 아내 되기 싫은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