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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릿골 25 - 테레비 보러 왔시유


BY 박예천 2009-07-31

 

테레비 보러 왔시유

 


저녁상 물리면 모두들 신작로 앞으로 모인다.

굳이 인원점명을 하지 않아도 된다. 나이도 몸집도 비슷한 녀석들만 끼어있다.

아이들 무리는 누군가 시키지 않아도 서서히 발걸음을 옮긴다.

매일 한 집만 정해놓고 방문하는 무례함을 절대 범하지 않는다. 오래 터득해온 방법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오늘은 승일네 집이다.

중간 뜸에 위치한 마릿골 부잣집 중 한집이다. 문간방에 새경 받는 머슴이 살고 있을 정도의 갑부이다.

마릿골에서 텔레비전 있는 집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동네 코흘리개 녀석들이 모인저녁 즈음은 꼭 연속극을 앞둔 시각이다. 아직 귀가하지 않은 가족이 있는 모양이다. 대문빗장이 걸리지 않았다.

이미 가위 바위 보로 정해진 녀석이 앞서 걷는다. 슬쩍 솟을대문 밀어본다. ‘삐거덕’거리며 오래된 나무냄새 특유의 마찰음이 깊은 밤의 정적을 가른다.

합창을 하듯 지휘자의 손짓도 없건만 한 목소리로 아이들이 외친다.

“테레비 보러 왔시유!”

충청북도와 근접한 마릿골에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말끝마다 ‘그랬시유, 아녀유’하는 사투리를 붙여 썼다.


백열등빛도 사라진 안방에선 푸른빛 흐릿한 텔레비전 광선만 방문 틈으로 새어 나올 뿐 사람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들어오라든지 어서 썩 꺼지라든지 해야 하는데 가타부타 대답이 없다.

이쯤 되면 돌아서 나와야 기본적인 예의라도 지닌 아이들이다. 허나 우리네 악동들은 닳고 닳아 전혀 꿈쩍도 않는다. 

이제 당돌함의 극치를 발휘할 순서이다. 슬그머니 안방 문을 열고 쪼르르 일행의 꼬리 늘어뜨린 채 들어선다.

푹신한 비단이불이 장지문 앞까지 깔려있건만 이불을 발끝으로 밀며 일렬종대로 앉는 꼴이라니.

올망졸망 늘어앉은 녀석들의 뻔뻔함을 대하고도 미동조차 않는 승일할아버지다. 다만 헛기침 몇 번으로 불편한 심사를 대신한다.

주인의 권한인 채널독점권을 제대로 발휘한다. 당연히 연속극을 펼쳐놔야 보고 발딱 일어나 나오겠는데, 일부러 지루한 권투중계이거나 대한늬우스를 틀어놓는 거다. 자타가 공인하는 심술통 영감임을 드러내는 중이다. 알아서 나가라는 뜻이다.

쪼그리고 앉았던 녀석들 사이로 미세한 한숨이 삐져나온다. 눈짓으로 뭔가 주고받는 듯도 하다. 곧 나가자는 표정이기도하고 버텨보자는 안색도 오고간다.

아! 누구를 탓하겠는가. 텔레비전 한 대 없는 가난을 비통해 하는 수밖에.

돌아서 나오는 아이들마다 풀죽은 모습으로 제 집을 찾아 돌아섰다.

아무래도 내일은 석주네로 발걸음을 돌려야겠구나. 이러다가 아껴보던 연속극이 다 끝나는 것은 아닌지.


약속한대로 다음날 석주네집이다.

복숭아과수원을 크게 하는 석주네는 서울물 일찍 먹은 형님 덕분에 새로운 가전제품이 많다.

도톰한 입술에 빨간 립스틱 칠한 석주네 누나들을 보는 것도 텔레비전 구경만큼이나 눈요기가 된다.

똥구멍이 보일 듯 말듯 아슬아슬한 미니스커트를 입은 날도 있다. 뾰족 손톱마다 형형색색 요란스런 매니큐어를 바른 모습은 마릿골에선 보기드믄 모양새다.

동네 아이들에게 텔레비전을 별 유세 없이 내보여주는 일에도 석주네는 큰 인심 쓰는 양 한다. 가끔 강냉이나 주전부리를 내어주기도 한다.

인기가수가 나오는 날에는 석주 엄마까지 가세를 하여 구성진 목소리로 뽑아 올린다. 텔레비전 화면과 번갈아가며 쳐다보느라 아이들의 흥밋거리가 더해진다.


동네 녀석들과 부잣집 대문 앞에서 밤마다 ‘테레비 보러 왔시유’를 목이 터져라 외친 보람이 있었다. 드디어 울 아버지가 읍내에서 대문짝만한 -당시 내 눈엔 그 정도로 크게 보였음- 텔레비전을 사오셨다.

그 유명한 금성전자에서 만든 텔레비전이다. 양 옆으로 좌르륵 주름 문이 감쪽같이 무대의 휘장처럼 열리면 뽀얗고 말간 텔레비전 화면이 나온다.

신작로를 걷는 내 걸음이 팔자로 쩍 벌어지며 앞으로 거하게 배까지 내밀었다.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난다.

누구든 우리 집에 와라. 생색 않고 애국가 나올 때 까지 보여주마.


여기까지가 지극히 야무진 나의 상상일 뿐이다.

아버지는 엄격했다. 당신의 잣대에서 정해진 시간만 허락했고 과하다 싶으면 가차 없이 코드를 뽑아버렸다. 

어디 그뿐인가. 방학인데 공부는 않고 만화영화만 쳐다본다고 아예 두꺼비집 내려버리는 조치를 취하기도 하였다.

우리 삼남매의 불만은 극에 달해 날이 갈수록 아버지의 삼엄한 경계 속에도 긴장감을 조이고 대범해지기 시작했다.

번갈아 망을 보며 아버지의 감지안테나를 피해 다녔다.

두 개가 결합된 전기코드 한 부분마저 빼버린 아버지의 결단에 승복하지 않고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펜치로 과감히 휘어놓고 꽂아서 텔레비전삼매경에 허덕이며 간 큰 짓도 했다.

두말 할 것 없이 두들겨 맞았던 기억만 흐릿하게 남아있다.

 


그날의 아버지가 여름바다 보고 싶다며 속초 사는 딸네 집에 오셨다.

이상 저온현상 탓에 아직은 바닷물이 차갑다.

옷도 벗지 않고 입술을 달달 떨면서도 바다에 첨벙 몸을 던진 아버지.

오한이 느껴지는지 해거름부터 춥다 하더니 텔레비전 켜놓고 잠드셨다.

저녁 먹던 중 ‘테레비 보러 왔시유!’ 얘기를 추억하며 깔깔거리는 사십 중반 딸 앞에서 내내 웃기만 하더니 곤하셨던 모양이다.

 

 


방마다 볼 텔레비전은 넘치는데 모여들 사람이 없다.

저 혼자 밤새 소리치고 지지직 거리려나. 

그저 지난 세월이,

떠난 버린 사람들만 애틋한 여름밤이로구나.





2009년 7월 마지막 날에.

딸네 집 찾아오신 늙은 아버지 바라보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