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자질
시시콜콜 별것도 아닐 하찮은 일을 까발려보려 한다.
좀 더 솔직한 속내를 말하자면, 확성기 부여잡고 시청 앞 광장에서라도 떠들고 싶은 심정이다.
마음이 다소나마 평정을 찾고 유유히 흘러갈 적에는 수면위로 드러나지도 않는 감정들이다.
이상하리만치 예민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요즘 나의 상태가 정상은 아닌 듯싶다. 별게 다 거슬리고 온몸의 촉수들이 빳빳하게 긴장을 하기도 한다.
화풀이는 고스란히 가장 가까운 상대인 남편이 떠안게 되어있다.
갱년기로 진입하려는 극성몸부림일까.
하여간 어느 인간이든 걸리기만 해보라는 식의 도끼눈을 뜨고 있다.
우선 남편의 일상이 맘에 들지 않는다.
뭐 딱히 일상이랄 것도 없이 눈에 거슬리는 몇 가지가 나를 못 견디게 한다.
내 말을 매번 무시하는 것으로 일관하는 그의 태도가 나무주걱 들고 뒤통수 후려치고 싶게 만든다.
똑같은 말로 앵무새마냥 중얼거리는 것도 이젠 지친다.
현관 신발장 앞에 재활용 종이 쓰레기를 모아둔다. 출근하는 길에 버려 달라 부탁해도 그냥 나간다. 산더미처럼 쌓여가도 매일 빈 몸으로 나간다.
처음 몇 번은 잊어버렸나, 바쁜가보다 이해하려 했다.
주차장 분리수거장소 바로 앞에 자신의 차를 세워둔다. 시동을 걸어두고 담배 한 개 피울 시간은 있고 폐지 모아놓은 것 들고 갈 여력은 없는가.
다른 날은 아량도 깊고 바다만큼 맘도 넉넉해져 웃고 넘어간다.
몸이 지치는 날, 아들로 인해 슬퍼지는 날은 더없이 그가 미워진다.
주방 벽에 걸려있는 나무주걱을 들고 싶어 손이 근질거린다.
또 한 가지.
이왕 일러바치는 김에 다 말하자.
남자들 있는 집이라면 다 겪는 고충일 것이다. 변기 말이다.
어찌하여 오줌줄기 내 쏟으며 변기깔개 올리지 않고 일을 보는가.
종알거리며 잔소리 좀 하면 조준을 잘 하고 있으니 걱정 말란다.
명중이야 잘 하지. 미세하게 남겨진 소변의 포말들이 차츰 불쾌하게 코끝에 닿는 기분을 알려나.
제발 세워놓고 발사하라고 얼마나 여러 번 아니, 오랜 세월 부르짖어 왔는지 모른다. 마음키가 늦게 크는 아들 유뽕이도 엄마의 말을 귀담아 꼭꼭 올리고 오줌 누는데 아비 된 자가 철이 덜 들었다.
슬슬 지쳐간다.
그리하여 곰곰이 머리 굴리다 묘안을 떠올렸다.
어제저녁 또 당당히 버티고 서서 좔좔 쏟아대는 남편의 뒤 꼭지 바라보다가 조용히 딸아이를 불렀다.
남편의 귀에 들리도록 크게 외쳤다.
“선뽕아! 아무래도 아빠는 포기해야겠으니 우리가 작전을 바꾸자. 유뽕이는 스스로 잘 하니까. 너와 내가 볼일을 마치고 변기 꼭 올려놓는 거야 알겠지? 어때?”
심각한 의논일까 달려와 귀 기울였던 딸아이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인다. 자못 심각했던 엄마의 목소리가 어쩌면 한심했을지도 모른다.
손꼽을 수 없을 정도로 가정사에 비협조적인 남편의 행실들이 많다.
한 가지만 더 말한다.
잠자는 순간 엄마만 찾는 아들덕분에 침대는 늘 모자(母子)가 차지하고 잔다.
남편은 방바닥에 이불을 깔아주었다.
단 한 번도 그 이불을 개는 일도 펴는 일도 하지 않는다.
뱀 허물 벗듯이 아침이면 쏙 빠져나온다. 아무리 말해도 굳세게 버티며 이불을 접지 않는다.
일부러 며칠 놔둔 적이 있었다.
밤이 되니 그 허물 속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가서 잔다.
지저분한 먼지며 불순물들이 이불위로 더께더께 올라앉은 기분이었다.
결국 안달과 조급증에 팔딱거리던 내가 이불당번을 자초하고 말았다.
집에 오면 손가락 하나 꼼짝하기 싫다는 그 남자.
아무리 목에 핏대 세우고 악처를 자청해도 마이동풍에 우이독경인 그.
주먹으로 내 가슴팍 퍽퍽 내리치다 고자질을 하기로 결심했다.
하여, 누가 듣거나 말거나 자판 두드리며 허공에 대고 활자를 뿌려대는 것이다.
쏟아내니 좀 시원하긴 하네.
지금 이 순간에도 자기 흉을 보는지 욕을 하는지 관심도 없다는 자세이다.
바로 내 옆에서 컴퓨터로 사진작업 하며 끙끙거리느라 여념이 없다.
내일 양양장날이다.
가서 나무주걱 큰 것으로 다시 장만해야 할까보다.
궁둥이를 철썩 내리치면 좀 나아지려나.
아이고, 내 팔자야!
2009년 6월 18일 밤에
팔자타령 늘어지게 해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