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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에 가보니


BY 박예천 2009-05-06

 

예천에 가보니

 




특별하게 글재주가 뛰어난 것도 아닌 내가 인터넷상에서 귀한 인연과 만나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칠년 전쯤이었을까.

주로 가정주부들이 편하게 생활속이야기들을 옮겨 적는 공간이었다.

엉성하기만 한 나의 글을 격려하며 다가온 독자 한분과 대화하게 되었다.

자신감 잃고 쩔쩔매던 중이었으므로 그분이 보내오는 위로는 새로운 에너지이기도 했다.

조심스레 필명으로 권한다며 건네주신 것이 ‘예천’이었다.

과연 그런 것을 걸어둘만한 자격이나 있는 것일까 두렵기도 하였으나 따뜻하게 전해오는 마음이 느껴져 덥석 받아들고 말았다.

해석인즉, 예천(藝泉)이라 하여 예술적인 감각이 샘처럼 솟아나는 글을 쓰라는 뜻이다. 참으로 깊이 있는 이름이다. 부실한 내게 넘치도록 과분한 필명이기도 하다.

덕분에 이름값을 해볼 요량으로 머리 싸매고는 있지만, 어디선가 지켜보실 그분의 탄식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여간 송구한 일이 아니다.


뜬금없이 필명을 거론함은 엊그제 실제 지명인 경북예천 다녀온 얘기나 해볼까 해서이다.

해마다 오월이 되면 가족여행 겸 나들이를 다녀온다. 짧게는 일박이요, 맘 내키면 하루를 더 묵기도 한다.

불쑥 떠나는 일이 다반사라 이번에도 그다지 궁금해 하지 않았었다.

행선지가 경북에 있는 예천이라고 말했을 때서야 하마터면 소리칠 뻔 했다.

음흉스레 내 뒷조사를 하고 다니기라도 했나 하필이면 예천이라니.

예천엔 어인일로 가느냐고 물으니 곤충 기념관이 있어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단다. 마침 곤충사진촬영 행사도 열리고 주변에 가볼 만한 몇 곳이 더 있다는 남편의 말이다.

갈아입을 옷가지 한 벌만 주섬주섬 챙겨들고 따라나섰다.

익숙해진 손이라 짐 꾸리기의 달인이라 해도 될 정도이다. 아침 거르고 급하게 떠나는 여행길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대충 가락국수로 끼니를 잇고 주전부리 할 몇 가지면 족하다.


첫 도착지는 곤충 기념관이다. 곧 소나기 쏟아질듯 하늘빛이 흐리다.

기대가 컸었나보다. 행사장 입구에서부터 썰렁한 분위기가 느껴지더니 건물 안에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살아있는 곤충들을 제대로 보겠다는 욕심이 앞섰는데 거의 표본들만 즐비했다.

집근처 낙산에 소재한 소규모 곤충박물관보다 장소만 넓었을 뿐 구성자체가 실망스러웠다.

후회가 밀려왔으나 어차피 떠나온 여행이니 장소를 옮겨보기로 하였다.

 


지도 펼쳐놓고 미지의 곳을 향해 더듬어 간다. 그곳엔 늘 예기치 못한 기다림이 있다.

‘회룡포마을’이라는 곳이 그랬다.

낙동강 물줄기가 한 바퀴를 휘돌아 만들어낸 육지속의 섬마을이다. 동네가 내려다  보이는 산꼭대기쯤 정자에 오르니 강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와 때 이른 더위를 식혀준다.

강 한가운데 열 가구쯤 되는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있다.

조물주가 만들어놓은 세상바라보기가 이러했을까. 아득하게 작은 크기로 보이는 손바닥만한 마을이 물위에 둥둥 떠 있는 듯하다. 

강을 가로지르는 외나무다리가 몇 사람 무게에 출렁이기도 한다. 

나와 아이들은 땡볕 내리쬐다 소나기를 퍼붓는 변덕스런 기후에 슬슬 지쳐가기 시작했다. 사진기 들이대며 시간가는 줄 모르는 남편만 신났다. 요구하는 각도대로 자세 잡아주랴 모델(?)역할 하랴 남매의 짜증이 겹친다.  


무슨 축제다 하여 이름 붙여진 행사에 가봤으나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주최 측에서는 첫 번 열리는 것이고 농촌을 돕는 마음으로 이해해 달라 했지만 정도가 심했다.

하천가에 유채꽃 몇 마지기쯤 심어놓고 조악한 아이들 놀잇감 진열한 것이 전부다.

유일하게 남아있다던 삼강주막에도 갔으나 주모는 뵈지 않고 장사꾼만 넘쳐났다.

여행후기라도 잔뜩 건져볼 생각에 들고 간 수첩엔 빈 먼지만 풀풀거렸다.

후회막심이다. 차라리 도시락 들고 동네 야산에서 봄나물이나 뜯을 걸 그랬다. 


저녁이 되어 숙박시설 찾아 헤매다 읍내 여관하나 발견하고 들어섰다.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았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흔한 말을 되새기고 있는 중이다.

아이들을 사이에 끼고 넷이서 방바닥에 누었다. 밤 깊도록 잠이 오질 않는다.

어쩌자고 예천으로 온 것인지 남편이 얄궂다.

자정이 넘었을까. 이불 들썩이며 엎치락뒤치락 빈대떡 부쳐대던 남편이 코를 곤다.

머릿속이 말갛게 헹궈지며 오히려 나는 명료해진다. 잠자기는 애초에 글렀다는 얘기다.

갑자기 ‘윙윙’하는 기계음이 들린다. 아까부터 눈에 거슬리던 소형냉장고가 내뿜는 소리다. 어디 중고전자제품 가게 구석에나 쳐 박혀 있을법한 고물이다.

꼴을 보아하니 어째 내 모습만 같다. 최신형도 아니요 골동품도 아닌 자세로 엉거주춤 냉장고흉내만 내고 있지 않은가.

잠들지 못하는 나를 따라하는지 덩달아 시골읍내도 밤새 깨어있다. 취객의 악다구니도 들리고 이따금씩 강변을 내달리는 오토바이 굉음이 고막을 찢는다.

도시도 아닌 것이 또한 아예 민속촌도 되지 못하는 어중간한 형태의 사람마을.

칠흑의 어둠이건만, 어정쩡한 위치에 선 내 꼴이 훤히 뵌다. 중년이라 이름붙일 사십대 나이도 그러하고, 작가도 아닌 것이 깔끔하게 주부도 되지 못하는.

이래저래 새벽이 오고야 말겠구나.  


이도저도 아닌 미지근한 여행이 억지로 끝나간다.

차지도 덥지도 않은 멀건 내 위치만 오지게 확인하고 왔다.

겨우 내 꼴 제대로 알게 된 것만으로도 소득이라 여겨야 하는지. 

예천 다녀온 기념으로 뭐라도 남겨야겠기에 써봤지만, 그냥 지울걸 그랬다.

맘이 착잡하다. 다시 글을 쓰고 싶어지려나.



2009년 5월 6일

경북예천을 다녀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