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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이야기3 - 냉이꽃


BY 박예천 2009-04-24

 

냉이꽃

 


눈비 맞은 겨울 진액이 뿌리마다 모여 봄나물이 되었다.

겨울과 봄의 샛길에서 한 계절 굵은 금 그어주는 봄날 으뜸 전령사이기도 하다.

금방 뽑아 올려 흙만 털어내도 코끝으로 전해오는 봄의 향기.

엄동설한 이겨낸 핏줄들이 땅위로 납작하게 잎을 펼쳐놓고 호미질 기다린다.

바구니마다 쟁여 담은 냉이 무더기.

봄이 사방에 흩뿌려놓은 부스러기들이다.

  

전문 나물채취가도 아니면서 봄의 초입부터 나는 정신을 못 차렸다.

들녘이 예전 같지 않아서인지 유년 뜰에 지천이던 냉이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혹여 남의 밭에 들어서기라도 하면 불쑥 나타난 주인이 대파 한 뿌리 캐어갈까 살피는 기색이 보인다. 

세상인심 예전 같지 않음을 익히 알고 있었으나 갈수록 삭막하기만 하다.

상황이 이러하니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된 냉이며 봄나물들은 대형마트에 산더미처럼 쌓여가나 보다.

장보러 나갔다가도 그것들에게는 어쩐지 쉬이 손이가질 않는다.


올봄 내내 들판을 헤맨 보람이 있었다.

넘치게 끓여먹고 무쳐먹었다.

남는 것은 냉동실에 얼려두고 여름날 칼국수 끓이는데 넣어볼까 한다.

장칼국수에 냉이 한줌 집어넣으면 감칠맛에 구수함까지 더해진다. 

여름 뙤약볕에 봄을 추억하는 것도 썩 멋질듯하다.

 

 



하루가 다르게 봄이 무르익는다.

아니, 어느새 여름문턱에 다다른 것인지도 모른다.

흰둥이 강아지 녀석까지 이끌고 뒹굴던 들판에 냉이꽃이 지천이다.

봄의 초입 눈을 부릅뜨고 찾아도 없던 녀석들이 키 낮은 바람결에 난리가 났다.

하늘하늘 꽃으로 피어 나부낀다.

꼭꼭 숨어 있다가 머리마다 한 다발 꽃송이를 매달고 내리쬐는 봄볕을 마시고 있다. 


하늘 한번 우러르지 못한 내가 땅인들 쳐다볼까.

마구 걷다보면 발밑에 짓밟혀 목숨 끊는 냉이꽃무더기.

발걸음 떼어놓는 일에도 숨을 고를 일이다.

쫓기듯 내달리는 삶은 희생자가 많은 법이다.

돌아보고 쉬어가라며 냉이꽃은 봄이 다 저물도록 들판에서 손짓한다.

 

가끔은 이름 모를 풀꽃의 초대에도 기꺼이 응하며 다가서라.

저토록 제 몸 전부를 내미는 환영에 누군들 맘 닫을 것인가.

 

 



2009년 4월 24일 새벽에 냉이꽃 바라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