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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초롱


BY 박예천 2009-03-23

 

                  새 초롱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주말을 맞아 원주시댁에 도착하여 하룻밤 묵고 나니 오일풍물장이란다.

작정하고 장 구경한 풍경들만 글로 읊어보려는 것이 아니었는데, 졸지에 장터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게 되었다.

오일장에서 건진 소품하나가 신선하게 자리매김하기에 일기쯤으로 여기고 써 본다.


원주 풍물장은 2일과 7일, 닷새간격으로 서는 장이다. 시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 시어머니를 따라 자주 다녔었다. 그 때만 해도 어색한 고부간이었고 나는 한걸음 뒤떨어져 걷는 짐꾼에 불과했다. 양팔로 챙겨든 보퉁이의 무게만 전해와 여유롭게 장 구경을 하기엔 버거운 일이었다. 체구가 큰 어머니의 긴 다리는 성큼성큼 앞서 걷고 쥐방울만한 나는 종종걸음인 꼴이다.

원주 풍물장은 양양오일장에 비하면 규모가 두어 세배는 족히 될 법했다. 길게 늘어선 좌판마다 쌓아놓은 물건의 양도 엄청나다.

마침 장이 서는 날이니 구경 가잔 말에 남편은 신선놀음을 생각했는지 사진기부터 목에 건다. 딸아이와 아들의 손을 잡고 덩달아 강아지 녀석까지 끌어안고 장 구경에 나섰다.


주차장에도 몇몇 상인들이 보인다.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어린 묘목들. 이름도 가물가물한 꽃나무에서 유실수까지 일렬로 늘어선 나뭇가지마다 꽃눈이 트고 있었다.

예전 허름한 장터답지 않게 입구부터 아치형 건축물의 환영문구가 우리를 반긴다. 대단한 귀빈이라도 된듯하였다.

비릿한 해산물들이 펄떡이며 눈길을 끈다. 아이 주먹만 한 꼬막무더기를 보자 꿀꺽 침이고였다. 이것 봐라 저것 봐라 딸아이와 두런거리며 얘기를 나눈다. 멀찌감치 남편은 그 모양새를 사진에 담느라 정신이 없다. 대단한 작품이라도 구상하려는지 어리둥절 돌아다니는 아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좁은 통로를 따라 이어진 장꾼들의 물건 구경하느라 내내 호기심에 눈이 반짝거렸다.

더욱 가관인 것은 곁에 아이들보다 신이나 팔짝거리는 것이 바로 나였다는 사실.


얼마나 걸었을까. 갑자기 크게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어머나! 이것들 좀 봐! 우리 어릴 때 집에 있던 것들이네.”

딸아이는 거기 쌓인 물건들보다 호들갑을 떠는 어미의 꼴이 우스웠는지 힐끗 쳐다본다.

그야말로 유년의 시골집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했다.

지게위에 얹는 바소쿠리, 갖가지 대바구니를 비롯해서 없는 게 없었다. 짚으로 새끼 꼬아 내리고 엮어 만든 물건들이 특히 많았다. 자꾸만 돌아가신 할아버지 굳은살배긴 손이 떠올랐다. 사랑방 돗자리위에서 퉤퉤 침 뱉으며 짚 풀 꼬아 만든 갖가지 물건들이 보였다. 금방이라도 할아버지냄새가 느껴질 듯해서 코를 박고 큼큼거렸다. 무슨 골동품애호가로 보였을까.

두리번거리던 내 눈이 휘둥그레지며 멈춘 곳이 있었다. 작고 앙증맞은 물건 새 초롱이었다.  

 


 

처마 밑이거나 기둥위에 걸어두었을 거다. 아니면 동산 나무들마다 걸려있었을까. 짚으로 동그랗게 꼬아 원통형을 만들고 위에 작은 지붕을 이어 붙였다. 흡사 초가지붕을 축소해 놓은 모양새다. 걸어두기 좋게 지붕꼭대기에 새끼줄로 고리를 만들었다. 구멍 속을 들여다보면 쪼르르 새소리가 울려나올 것만 같은 아련한 유년의 동산으로 내 기억은 마구 구르며 뛰어다녔다.

곁에 섰던 딸아이를 향해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

“좋은 생각이 있어! 우리 이거 현관 앞에 걸고 가족끼리 편지 넣는 곳으로 하자.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쪽지에 적어 구멍 속에 넣는 거야. 어때? 좋지?”

남편과 딸아이 둘 다 반응이 없다. 나 혼자 방방 뛰는 모습이 철부지 같았는지 어이없어 보였는지 의자에 앉아 지켜보던 주인 할아버지가 한마디 하신다.

“하하하 엄마가 꼭 소녀 같으시네!”


주머니 속 잔돈을 헤아려 새 초롱 값을 지불했다. 정말이지 별것도 아닌 작은 물건인데 가슴이 벌렁거렸다. 내 이런 증상이 과연 정상적인 증상인지 미숙아적 정신 상태인지 모르겠지만 걱정되지 않는다. 몸이야 중년의 늙은 아낙이지만 맘이라도 느리게 나이 먹고 싶은걸 어쩌랴. 보는 이들에게 크게 민폐 끼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적당히 순수(?)를 부르짖기로 하자.

어찌되었든 새 초롱 손가락에 걸고 장터를 휘저으며 걸었다. 버섯이며 채소와 밑반찬거리를 몇 가지 더 샀지만 머릿속엔 내내 새 초롱만 대롱거렸다. 


어느 먼 날 다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나의 할아버지가 걸어 두었을 처마 밑 그 등초롱도 있었지.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아 일찌감치 사위가 어둑해 오던 저녁 초입. 불꽃을 유리 안에 가두고 흔들거리던 등 초롱.

그것은 기다림이다. 새로운 소식에 대한 막연한 기대이기도 하였다. 기다리는 사람과 다가올 사람과의 묵언의 약속표시이기도 했다. 바라보고 와야만 하는 푯대이다.

어둠이 있기에 빛이 더욱 고귀하게 보이는 법.

마당 안에 들어서며 반짝이는 흔들림 찾아 툇마루임을 더듬어 찾았겠지. 흙 묻은 작업복 벗으며 걸터앉았을 아버지나 할아버지 그리고 밭일 나갔던 어머니. 


‘초롱’이라는 말이 정겹다.

우리나라 북쪽 산에서만 볼 수 있다는 보랏빛 금강초롱꽃 처음 보던 날 가슴속에서 울려오던 소리를 잊지 못한다. 맑고 투명한 은방울소리가 튕겨 나올 자태였다. 무언가 꽃잎 속에 감추고 있는 양 고개 숙인 부끄러운 모습이라니.

새색시의 다소곳함인지 속이 꽉 찬 여인에게서 풍겨 나올 깊이인지 한참을 감흥에 젖게 하였다.

 


 


나는 새 초롱에 기다릴 것을 담아두려 한다.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이거나 이루지 못했을 소망까지도 쪽지에 적어 담아 볼 거다. 날개 짓 거듭하여 소식물고 올 작고 귀여운 새한마리 마음에 키워보려 한다.

가족들 건의함으로 시작하려는데 구성원들의 비협조적인(?)태도에 작전을 바꿀까 고민 중이다. 


현관입구 신발장 문고리에 새 초롱을 걸어본다. 좌우로 몇 번 달랑거린다.

작은 구멍 속에 손가락 넣고 헤집는다. 아직은 빈 집이다.

굴뚝새 한 마리라도 날아와 주었으면......,

아! 늙어도 늙지 않는 이놈의 맘을 어쩌면 좋으리.



2009년 3월 23일 단지 새 초롱 하나에 넋이 나간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