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864

막잠


BY 박예천 2009-01-13

                                              

                                                         막잠

 

 


 섶에서 고치도 짓기 전에 몸이 부서져 가루가 된 누에를 보았다. 은행상품코너에 누에가루가 진열되어있다.

뽕잎냄새를 싣고 아득해진 기억이 올라온다. 대소쿠리에 뽕잎 따 담고 누에똥 가려주던 계집아이는 어느새 불혹 넘긴 아낙이다. 누에는 넉 잠을 자고 난 후 고치 속으로 숨곤 했다.

누에의 잠에는 순서가 있고 이름이 붙는다. 첫 번째의 잠을 ‘애기잠’이라 하고, 고치를 짓기 바로 전에 자는 잠이 ‘막잠’ 이다. 마지막 잠이라는 뜻이다. 한잠씩 늘어지게 자고 일어날 때마다 누에는 나이를 먹는다.

 

고향집에서도 누에치기를 했다. 동네에서 제법 잘 살던 집은 별도의 거대한 잠실이 있어 열장이 넘었다. 우리 집은 두 장 반 정도의 누에씨 즉, 알을 읍내 잠종장에서 받아왔다. 진회색 점들이 보일 듯 말 듯 붙어있다. 주로 겨울이 지나고 농번기가 시작될 무렵의 봄누에다. 주 수입원인 벼농사만으로는 살림을 꾸리기 어려워 대부분 농가에서 누에치기를 겸했다. 처음 알에서 부화되어 나온 누에유충은 검은 개미떼로 보인다. 망사 천위에 놓인 개미벌레들을 보드라운 깃털로 쓸어 모으고 연한뽕잎을 잘게 썰어 뿌려준다. 누에치기의 첫 단계인 누에떨기이다. 이삼일 후 몸 전체가 노란색을 띠게 된다. 하루정도가 더 지나면 열심히 먹어대던 뽕을 먹지 않고 머리를 들어 올린 채 정지하고 있다. 그것을 누에의 잠이라고 하며 이때 겉껍질 안쪽에 새로운 껍질이 생겨 탈피를 준비한다. 묵은 때를 벗어 던지고 깨끗한 옷을 덧입게 되는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누에 일을 도와야했다. 뽕밭에 일꾼으로 동원되는 것이다. 누에똥을 가리는 순서에도 나는 한사람 몫을 든든히 해냈다. 싸리나 대나무로 만든 사각의 잠박 위에 신문지를 깔아둔다. 그물망을 펼치고 누에를 올려놓자 한 덩이로 엉키어 난리법석이다. 골고루 뽕을 얹어주면 사각사각 먹어대던 소리.

막잠을 자고 일어난 누에의 뽕잎 갉아먹는 소리는 한여름 소낙비다. 뽕을 먹고 하루가 다르게 누에가 자란다. 몸집이 커질수록 잠자는 시간도 길어진다. 애기잠은 하루 만에 깨어나고 이어서 두 잠과 석 잠을 자며 이틀밤낮동안 자는 것이 막잠이다.

 

막잠자고 난 누에의 먹성은 엄청나다. 일주일 내내 쉬지 않고 뽕잎을 먹는다. 알에서 나와 고치를 만들 때까지 먹는 뽕잎양의 80퍼센트 이상을 이때 먹어치운다. 잠 잘 때도 잠박 안 누에들이 일제히 가슴을 세우고 정지해있는 것은 아니다. 양껏 먹지 못한 누에들은 잠든 무리 곁에서 부산히 머리를 흔들며 뽕잎을 찾는다. 깨어있는 녀석들에게 뽕을 얹어준다. 뽕잎은 최상의 것으로만 골라 주어야한다. 혹시라도 젖은 잎을 먹게 되면 싸놓은 배설물로 고치가 지저분해진다. 뽕잎이 모자라 집집마다 꾸어주고 얻으러 다니기도 한다.

배를 불린 누에의 몸은 말갛고 투명해진다. 집짓기 전에 배설을 완전히 끝내고 섶으로 올라갈 준비를 한다. 익은누에만 선별하여 제집을 찾아준다. 칸막이를 분양 받고 이삼일에 걸쳐 고치를 완성한다. 다된 고치를 따내고 읍내 선별 장에서 최고등급을 기대하는 것으로 봄에 시작했던 누에치기가 막을 내리게 된다.


상품진열대에서 누에가루를 보았던 그날이후.

누에막잠을 빌려서라도 아들이 단잠 이루기를 바라는 맘이 절실해졌다. 아들의 잠버릇은 신생아 때부터 유별났다. 기분이 좋지 않으면 초저녁에 보채기 시작하여 늦은 밤까지 어미인 나의 진을 다 빼놓는다. 녀석이 지니고 있는 발달장애의 특성이려니 너그럽게 이해를 하다가도 인내심의 바닥은 자주 드러나 분노의 목청을 세운다. 잠을 청하는 내내 요구사항이 많다. 등을 긁어라, 한겨울에도 부채질을 하라며 징징거리다가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잠이 든다. 밤중에도 몇 번을 깨어 울거나 새벽 두세 시쯤 갑자기 일어나 놀아 달라 떼쓰다 아침녘에 잠들기도 한다. 덕분에 잠이 부족한 나는 늘 충혈 된 눈이어서 보는 이들도 피곤에 지쳐있는 상태임을 단박에 읽어낸다.

녀석의 특이한 모습들이 어디 한 두 가지였던가. 또래아이들과 다른 장애아인 것이 이제는 마음속에서도 차츰 인정되고 있다. 충격과 슬픔도 오래 묵으면 탈피를 하여 새 옷을 갈아입게 되나보다. 신체의 감각적인 문제와 정신적인 부분까지 복잡한 증상들을 완화시켜줘야 하겠지만 어미인 나의 소원은 지극히 소박해져있다. 단 하루만이라도 아들이 편한 잠을 잤으면 좋겠다.

 

누에씨처럼 형체를 분간하기 힘들 정도의 작은 점이 몸속으로 들어와 임신이라는 이름으로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세포분열을 거듭하면서 사람의 모양을 갖추고 아기의 심장소리를 초음파로 확인하는 순간 명치끝이 저리도록 벅찼던 감동을 잊지 못한다. 곧바로 육아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독백으로만 늘어난 편지가 한 권 책 분량이 다 되어 가건만 녀석은 아직도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아들은 이제 막 첫잠을 끝낸 애기누에의 정신 연령이다. 두 잠, 세 잠 연거푸 자고 일어나야 뽕잎을 거뜬히 먹어치울 텐데 잠이 깊지 못하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영양가 있는 뽕잎을 아들에게 주기 위해 나름대로 애쓴 삶이었다. 아이가 정서적으로 안정되기만 한다면야 뽕밭이 멀고 험해도 기어갈 작정이었다. 하루 여덟 번 차를 갈아타며 ‘놀이치료’ 뽕잎을 구해 먹였고 궂은 날씨에도 휘청거리지 않고 ‘언어치료’의 뽕밭을 찾았다. ‘감각치료’ 뽕나무밭에도 들어섰다.

넓은 잎 씹을 힘없는 애기누에라면 연한뽕잎으로 골라 썰어 주리라. 차근차근 먹다보면 이미 섶에 오른 또래들과 견줄 수는 없으나 늦잠이라도 자겠지.

 

나는 매일 아들의 손을 잡고 뽕밭을 걷는다. 봄누에, 가을누에 가리지 않고 삭풍이 몰아치는 날에도 뽕을 찾아 헤맨다. 편안히 잠든 아들의 막잠을 보게 될 그날까지 지칠 틈이 없다. 섶으로 올라갈 수 있게만 도와주면 다음 단계 달음박질은 녀석의 몫이다. 완벽한 홀로 서기가 되면 비단실을 뽑고 고치 속에서 날개도 비벼댈 것이다.

깊어가는 가을밤, 꿈까지 밀어내고 단잠 들기 바라며 아들의 조각난 잠을 모성(母性)의 풀칠로 이어 붙이고 있다.



2005년 10월20일.

 


 

(어젯밤 녀석은 엄마에게 지난 추억을 떠올려 주려는지 잠들지 못했습니다. 혼자 깨어 놀이하는 게 아니라 꼭 엄마를 못 자게 합니다. 유아기 때는 졸고 있는 엄마 눈을 집게손가락으로 쑤셔대곤 했지요.

이젠 저도 늙었나 봅니다. 하룻밤 새는 일이 벅차 낮 동안 내내 몸이 휘청거리더군요.

예전 써 놓은 글을 읽다가 녀석의 잠버릇 이야기가 있기에 올려봤습니다.

오늘밤은 달게 자면 좋겠습니다.  2009년 1월 13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