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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 족쇄


BY 박예천 2009-01-07

 

족쇄

 


 

현대문명이 낳은 최첨단 기계들의 활용으로 자아실현은 물론 가정경제에 최대한 이바지하는 사람이 우리 남편이다.

일찍이 남편은 컴퓨터를 비롯한 카메라에 이르기까지 각종 기계들을 섭렵해왔으며 그것들과의 유대관계 또한 마누라이상이었다.

성능 좋은 음향시설에서는 샹송과 뽕짝을 총 망라한 노래가 철철이 흘러나온다.

코딱지만 한 방에 우주기지를 설치하려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날이면 날마다 혼신의 힘을 기울여 장인의 정신을 기른다.

창문 앞에 기다란 쇠 젓가락이라도 꽂아놓는다면 반드시 혹성에서 전파를 보내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외계의 언어를 습득하지 못했다.

남편 역시 통역을 할 만한 실력이 되지 못하기에 외계와의 접속을 잠시 보류한 듯 하다.


출근을 하거나 외출 시 그는 여전히 문명의 덩어리를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사람들이 ‘휴대폰’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았으므로 충심을 다해 몸통에 지님이 마땅하다고 외친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깊은 겨울 밤.

집구석에 들어와야 할 시간에 그 인간 연락이 없음이다. 열 번이 넘게 교신을 시도해도 은하계로 날아갔는지 휴대폰을 받지 않는다. 겨우겨우 신호음이 중단되고 들리는 우렁찬 목소리.

“야, 너 미쳤어? 전화를 그리 여러 번 울려 대믄 어쩌냐? 너 땜에 삼중으로 박을 뻔 했단 말야.”

길이 미끄러워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는데 차는 밀리고 전화벨은 고막이 터져라 울려 댔다나.

그날이후 뭔 일로든 전화만 하면 퉁가리 입처럼 째진 목소리다.

뭐라 하더라. 족쇄라나. 자기를 감시하는 것도 아니고 어쩌고 하면서 불만을 내 쏜다. 내참 기가 막혀서.


드디어 족쇄를 내동댕이치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다.

오늘날 그 양반 방에다 휴대폰을 두고 출근을 하시었다. 하루 종일 오는 전화 한 통 없다. 그러면 그렇지 외계인들도 사람 봐가며 교신을 하겠지.

오후가 넘어 저녁밥을 먹을 때가 지났건만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연락조차 없다. 하루 이틀 일도 아니니 아이들 건사하며 내 몫의 모이를 쪼아 먹었다.

거실을 오가면서 젖은 빨래를 건조대에 걸치는데 남편의 요새에서 경보 등이 반짝거린다.

족쇄가 발동을 하는 모양이다. “빠라 빠라 빰” 문자가 오는 소리다. 개인 사생활 침해 어쩌고 하는 말은 뒷전으로 슬쩍 감추고 급히 정보 확인에 들어갔다. 신용카드 사용한 명세를 알려주는 친절한 휴대족쇄.

어쭈구리! 오후 여섯 시 넘어서 자동차 연료를 채웠군.

또 한 번의 팡파르 소리에 문턱을 넘던 발걸음을 돌려 좁쌀문양으로 박힌 문자 확인 작업 실시. 요것 봐라.

이번엔 산채비빔밥이라. 흥! 이 인분에 공기 밥 하나 추가했군. 금액을 보니 얼추 계산이 되었다.


밤이 이슥하니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귀가를 하시었겠다.

“산채비빔밥 맛있었어?” 하는 내 말에 남편의 뜨악한 얼굴이라니.

“자기가 공기 밥 추가했구나. 상대는 여자니까 많이 못 먹구 그치?”

그 남자의 쪽 찢어졌던 눈매가 오 백원 동전 만해졌다.

“헉! 그걸 어떻게 알았어? 그냥 대학 후배야. 저녁 한 끼 먹구 차 마신 거야.”

누가 물어보기나 했냐고요.

쩔쩔매는 최첨단 기계 애용자 남편이 안쓰러워 그대가 두고 간 족쇄가 친절히 말해주었노라 했다. 그러자 남편은 심각한 표정으로 양 미간사이에 내 천川자를 오래 내려 긋더니,

“아무래도 안 되겠어 역시 휴대폰이니까 휴대하고 다녀야겠어.” 하며 스스로 족쇄를 꺼내 달랑 챙겨드는 것이다.


인간아! 산채비빔밥 집에 자기 마누라는 휴대하고 가면 안 되냐?

남편과 같이 밥 먹은 여자보다 그 식당 나물이 몇 가지나 나왔는지가 너무너무 궁금한 나는 이 시대의 펑퍼짐 아줌마였다.

오호 통재라!



2004년 6월 11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