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사세요!
먼저 살던 아파트에서도 그랬다.
여름아침이 뿌옇게 열리는 시간 정적을 깨뜨리며 울리는 소리.
스피커를 타고 흐르는 기계음이 아니어서 더욱 솔깃해지곤 했다.
부산하게 남편의 출근길 배웅하거나 아이의 책가방을 챙겨주다가도
청각이 번뜩 곤두서곤 했다.
폭포수 아래서 득음을 하지 않고서야 저리 깊은 음이 나올 수가 없다.
빽빽하게 들어선 아파트 숲을 가르는 당찬 외침으로 봐서 당연히 아줌마일거다.
때론 악다구니로 어느 날은 바가지 긁는 잔소리로 단련된 목소리를 지니고 있는
나도 아줌마이기에 자연스레 알아진다.
바퀴달린 작은 수레에 따끈한 김 서린 옥수수봉지 싣고 아침마다 아파트단지를 훑고 간다.
“옥수수 사세요!”
옥수수아주머니들의 마케팅전략이 외치는 소리에도 실려 있다.
대충 밋밋한 음으로 하는 법이 없다.
특색 있게 강약을 살려야 한다.
마치 한겨울 골목을 가르며 낭랑히 울리는 찹쌀떡과 메밀묵 장수의 음성과도 흡사하다.
길게 뽑아내다 끝을 약간 올리는 게 매력이다.
계획된 상술인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들었을 때 뭘 사달라는 얘긴지 통 알 수가 없었다.
앞의 물건이름은 들리지 않고, ‘ㅇㅇ사세요!, ㅇㅇ사세요!’만 귓가에 맴도는 거다.
뭘 사라는 얘긴지 궁금증에 안달이 나고,
베란다 창문을 기웃거리며 다시한번 확인하게 만든다.
추적거리며 밤부터 내리던 비가 아침까지 이어지는 오늘.
우산 받쳐 든 여인이 빗줄기를 가르는 소리 “옥수수 사세요!”
나는 ‘사세요!’뒤로 한참이나 이어지는 여운 속사연이 더욱 알고 싶어진다.
자기 눈높이로 상대를 바라보는 오랜 악습 때문일까.
어쩐지 산만큼 큰 한숨이거나 명치끝에 혹처럼 달린 아픔을 뱉어내는 소리 같았다.
‘사세~~~요!’의 ‘요’가 길게 꼬리를 늘어뜨리며 사람 없는 빈 주차장만 쓸고 지나간다.
뒤따라 외치며 비 오는 거리를 울리고 싶다.
난 뭐라고 소리치나?
고물사세요!
갈팡질팡 변덕 죽 끓듯 하는 몸집만 좋은 고물사세요!
2005년 7월 28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