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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릿골 22 - 정 냄새


BY 박예천 2009-01-07

            정(情)냄새

 

 

 

 

아들의 옷을 움켜쥐고 오랫동안 냄새를 맡는다. 거실바닥에 던져진 잠옷을 주섬주섬 챙기다가 얼굴에 비벼보았다.

눈앞에서 함께 있다 방금 자리를 떠난 사람의 부스러기들은 입었던 옷가지에 잔뜩 붙어있다. 옷 속에 코를 박고 있으면 진한 살 냄새가 전해져 온다. 갖은 말썽과 떼를 쓰다가 유치원엘 갔건만 먼 길 보낸 어미처럼 아들의 냄새를 그리워한다. 눈을 감고 있노라면 코는 물론이요 가슴 깊은 곳으로 녀석의 냄새가 풍겨온다. 비단 그것은 코로 느끼는 자극에만 머물지 않고 목소리와 표정까지도 덤으로 싣고 온다. 젖을 먹는 나이도 아니건만 마치 비릿한 젖내 같기도 하고 달콤한 과자의 향 같기도 하다.

 

조금은 특이하다 싶을 정도로 사람냄새에 집착하는 이런 습관은 아마도 꽤 오래되었을 거다. 막내 동생을 낳고 젖을 물리던 어머니 몸에서는 늘 젖 냄새가 났다. 동생들이 생기면서 어머니 젖가슴은 나에게서 점점 멀어졌다. 마음껏 내 차지가 될 수 없었다. 어머니를 대신해서 나를 보듬어준 분들이 할머니와 고모들이다. 미처 외로울 겨를이 없도록 보살펴 주셨다. 덩치 큰 아이들에게 혹 맞고 들어오기라도 하는 날이면 어머니는 품안에 나를 꼭 안고 토닥여주셨다. 펑펑 울어대는 와중에도 콧속으로 스미는 젖 냄새를 엄마냄새라고 이름 지어야겠다고 정하고 있었다.

그 후 비릿한 젖 냄새는 곧 엄마냄새였다. 허나 참으로 이상한 것은 동생이 젖을 떼고 많이 자란 후에도 어머니 몸에서 계속 젖 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사람마다 특유의 체취가 있었는데 어머니에게서 느껴지는 냄새를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계절마다 농사일로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서 나를 보살펴주던 큰 고모에게서는 레몬이거나 풀 향기가 났다. 맵시 잘 가꾸는 처녀고모가 아껴 쓰던 분 냄새일까 아니면 몰래 감추어둔 향수라도 있는 걸까 생각을 해봤지만 둘 다 아니었다. 나 혼자만 감지해내는 큰 고모의 냄새가 있었다. 씀바귀에서 나는 쓴 향기인가 여겨지기도 했지만 결코 싫다거나 멀리하고픈 냄새는 아니었다.

노처녀 큰 고모가 드디어 시집을 가게 되었다. 열 한 식구 함께 살다가 처음 이별의 계기가 된 고모의 결혼식에서 눈이 벌겋게 붓도록 울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며 이바지음식을 싸들고 온다던 날. 아침부터 학교에 가기가 싫었다. 학교를 파하고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아버지 자전거를 가지고 나왔다. 어른자전거를 끌고 버스시간 바뀔 때마다 정류장을 오가니 지나가던 동네 어른들이 자꾸 쳐다본다. 조그만 몸으로 자전거에 매미 달라붙듯 하여 바퀴를 굴리는 꼴이 우습기도 했을 거다. 고모는 해거름이 다되도록 오지 않았다. 풀이 죽어 툇마루에 앉아있는데 사립문을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둠 속에서 사람은 보이지 않고 익숙한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부른다. 몇 날을 그리던 큰 고모다. 봉당을 채 밟지도 않고 마당으로 겅중거리며 뛰어가 고모를 끌어안으니 눈물만 범벅이 된다. 훌쩍이는 콧물 속에서도 깊게 스며드는 것은 풀 향기의 큰 고모냄새.

어쩌면 어머니 젖내보다 나를 더 오랜 시간 싸안았던 냄새였을지도 모른다.

영영 남의 집 며느리가 된 고모는 이틀 밤도 못 채우고 서울특별시 영등포로 간다고 했다. 고모가 시댁으로 가던 날은 아예 집안에 있고 싶지 않았다. 일부러 동네 밖에서 서성거리다 와보니 벌써 가고 없었다. 건넌방에는 이틀 동안 고모가 입었던 할머니 블라우스와 평상복바지가 걸려있다. 벽에 걸린 옷가지에서는 금방 떠난 고모냄새가 남아있었다. 몸 빠진 헐렁한 옷들을 부여안고 시집가던 날처럼 울었다. 냄새가 사라질까봐 빨래감속에 꺼내놓지 않고 오래오래 감추어두고 고모의 정(情)냄새를 맡았다.

살면서 가족 누구에게도 고모냄새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실은 혼자 간직하고 싶기도 했다.

고모에게 아직 그 향기가 남아있을까. 참으로 궁금하다.    

 

 

2004년 9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