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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릿골 17 - 개구멍 도시락


BY 박예천 2009-01-04

 

개구멍 도시락

 


농번기 철에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지만 겨울 되면 어머니는 손수 도시락을 날라 주셨다. 신작로 바로 건너에 집이 있었고 교문까지의 거리가 잰걸음으로 채 일분이 안 될 정도였다. 일단 등교를 하고 나면 수업을 마칠 때까지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것이 학교 규칙이어서 지척에 집이 있어도 도시락을 싸와야 했다. 어머니는 점심시간에 맞추어 새로 밥을 지으셨다.


학교를 빙 둘러 향나무울타리이고 나무사이 틈이 벌어진 개구멍이 있었다. 장씨네 가게근처에 나있는 그곳은 어찌나 많은 발 두드림을 당했는지 흙이 단단하고 반질반질했다. 쉬는 시간 이용해 군것질거리를 도둑고양이 걸음으로 옮기던 녀석들의 달구질이 다니기 편한 길로 만들어 놓았다. 어머니는 점심시간이 되면 개구멍 앞에서 나를 기다리셨다. 겨울바람 차가운데 따뜻한 밥 온기에 손이라도 녹이고 계셨을까.

밥 그릇 크기의 주전자 속에는 구수한 숭늉까지 알맞은 온도로 데워져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개구멍 앞으로 갔다. 달려오는 나를 보고 이름을 부르며 웃으신다. 도시락을 건네받고 몇 마디 재잘거리다가 교실로 들어간다. 친구들의 부러운 눈길들이 모두 내 도시락 보자기에 쏠려있다.

주발의 뚜껑을 열자 군침 당기는 밥 냄새와 피어오르던 하얀 김.

반찬은 기껏해야 무장아찌, 멸치볶음, 김치가 전부였으나 내가 먹은 것은 도시락뿐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사랑온도까지 목안으로 씹어 삼키고 있었다. 한겨울 내내 어머니는 도시락 배달부 일을 자청하셨다.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 얼마 전까지도 개구멍 도시락 일은 나한테만 주셨던 유일한 사랑으로 알고 지냈었다.

헌데 언젠가 막내 동생이 가족 글모음에 ‘존경하는 어머니’라는 제목으로 자신도 도시락을 받아먹었다고 적어놓았다. 내리사랑이라 했으니 막내인들 빼 놓았으랴.

방금 한 밥을 따뜻하게 먹게 해주신 도시락당번 어머니의 지극 정성 속에 삼 남매가 컸다. 스스로 자란 줄 알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부모님의 사랑이 되새겨지는 일이었다. 그때가 그리워 숭늉을 일부러 만들어 장아찌 올려 먹어도 옛 맛이 나지 않는다.


빈틈없이 심어놓은 나무사이를 뚫고 누군가 처음 오가며 길을 만들었으리라. 하나 둘씩 들고 나가는 걸음이 구멍을 넓혀놓았고 덕분에 나는 한겨울동안 따뜻한 도시락을 편하게 맛볼 수 있었다.

개구멍 덕을 톡톡히 본 사람은 사실은 나뿐만이 아니다.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들락날락 주전부리를 하던 녀석들이 잔돈 꽤나 장씨네 가게로 들이밀었을 것이다. 찾는 물건을 친절하게 개구멍 앞에까지 전달해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장씨 아저씨도 울타리 뚫린 것에 고마움을 느꼈겠지.

오늘날 개구멍은 사라지고 방음시설 잘된 금속 담장이 하늘까지 닿게 높아졌다. 아무리 이빨 날카로운 개들이라도 단단한 쇠붙이는 감히 뚫고 들어가지 못 할 거다.


잊혀져간 맛과 풍경들이 자꾸 그리워진다는 것은 나이 먹음일까. 물질 풍요롭고 몸은 편해지는데 입맛은 왜 자꾸 빈곤했던 유년을 그리워만 하는지 모르겠다. 친정어머니 하셨던 대로 딸아이 학교로 도시락 나르고 싶지만 뚫린 개구멍이 없다. 단체급식이어서 국도 반찬도 전교생이 똑같다.

잠시 속웃음을 흘린다. 비오는 날 우산도 챙겨 들고 가지 못했던 엄마가 도시락 들고 갈 꿈을 꾸다니.

개구멍 없는 학교를 다니는 딸에게 차라리 고마워하기로 하자.



2004년 겨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