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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 보러 나오세요!


BY 박예천 2009-01-04

              토성 보러 나오세요!

 

 


 

계획하고 여행을 떠나지 않는다.

행선지 정하고 치밀하게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미 여행의 절반이 사라진다. 대충 짐 꾸려  마음에 드는 장소에 하루를 기대고 또 한 발짝 내딛거나 쉬어가는 것이 나와 남편의 여행철학이다. 불쑥 떠나는 일에 제법 익숙해져 있다.

물론 그 간격이 좁아지기까지 오랜 시간 삐걱거렸다. 무작정 내달리는 조수석에 앉아 묻고 되묻고의 연속이었으니까.

돌아오는 대답은 단 한마디.

“몰라!”

이게 다였다. 갈 곳을 모른다는 것이다.

무성의한 대답에 화가 치밀고 언성도 높아지기 여러 번.

알고 보니 더듬어가는 여행이었다. 힘들면 쉬어가고 집 그리우면 돌아오고 뭐 이런 식이었다.


이번 겨울여행 역시 계획 없이 시작되었다. 청소기를 돌리거나 설거지 하다가도 “가자!”라는 말이 떨어지면 옷가방을 챙겨야한다. 욕실엔 언제고 챙겨 넣을 수 있도록 세면도구가 밀폐봉지 안에 들어있다.

부리나케 옷가방을 쌌다. 그래. 떠나는 거다.

남편은 춥지 않게 단단히 입으라는 말만을 건넨다. 역시 나는 묻지 않았다. 어딜 갈 것이고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해는 뉘엿뉘엿 산등성이에 걸터앉아 마지막 숨을 할딱이고 있었다. 남은 삶 건더기를 몇 조각 핏빛 조각구름으로 남겨둘 뿐이었다. 거실 벽에 간신히 매달려 펄럭이던 한 장 달력이 떠오른다. 또 한 해를 접는구나.   


홍천시가지를 벗어나는가 싶더니 다시 횡성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딱히 기억될 만한 장소가 떠오르지 않자 내심 궁금해졌다. 국도변으로 보일 듯 말듯 작은 푯말하나 눈도장 찍고 비탈길을 내려간다. 푯말에 써 있다. ‘우리별 천문대’

아! 별자리를 보러 가는 모양이구나.

입구에 들어서자 예약된 곳으로 안내를 한다. 하룻밤 묵을 거라고 그제야 남편이 내게 말한다. 부창부수라 했던가. 묻지 않는 아내에 알려주지 않는 남편이라니.

직원쯤 되는 남자가 작은 조립식 집 한 동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우리가 잘 방이다. 집 이름이 기가 막히다. 토성!

토성에 여장을 풀었다. 거대한 은하계를 여행하다 대충 맘에 드는 별 하나 점찍고 쉬어가자 누워버린 기분이다. 집마다 태양계 별들의 이름을 따왔다. 태양관, 목성, 금성, 수성 그리고 은하수.


따끈하게 데워진 구들방에 들어서자 움츠렸던 한기가 삽시간에 녹아내린다. 긴장이 풀리고 흐물흐물 사방으로 몸이 패대기쳐지려 했다. 여행이 주는 아늑함 때문인가 보다. 지금부터 나는 누구의 아내도 누구네 어머니도 아니다. 딱 하루만 그러고 싶어져 눈을 감아버렸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고 식당에 도착하니 밥상이 잘 차려져있다. 정갈하기도 하려니와 소박한 반찬들이다. 고들빼기김치와 시래기된장국의 개운함이 겨우내 잃었던 입맛을 자극해왔다. 연거푸 밥그릇을 비운다.

머릿속을 서늘한 겨울밤 기온에 헹궈내려 뜰로 나왔다.

불룩해진 배를 두드리며 거나하게 트림 한 자락 읊어대고 하늘을 보노라니 먹구름이 가득하다. 별보기는 글렀다는 얘기다.

일삼아 찾아온 천문대에서 별을 볼 수 없다 생각하니 슬슬 여행경비 본전이 손가락 꼽혀진다.

기상변화로 별 관측을 할 수 없는 경우 대체 프로그램이 있지만 실내에서 이루어진다. 추위에 아래턱을 덜덜거리더라도 하늘 한 번 우러르면 좋겠다고 여겼는데 맘이 무거워졌다.


별이 있어도 하늘 외면한 채 고개 숙인 사람들.

위에 떠있는 별을 바라보던 시절에는 이야기와 전설과 꿈이 있었다. 마음 밭마다 높이 오르며 키가 크는 나무.

별을 노래하던 입으로 세상에 빛나는 것은 오직 황금뿐이라며 가르치고 있다. 옆으로만 가지가 뻗어 사람사이 시기와 편견만 키워내고 있다.

별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늘려가던 시간 속에 한참이나 벗어나 나는 살고 있다.

제대로 별을 읽으러 왔건만 헛걸음이 될지도 모른다.


그때였다. 

답사리마당비로 누군가 하늘을 휘저었는지 말끔하게 씻겨 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뜰 안에 천체망원경 여러 대가 설치되었다. 낯선 가족들 뒤로 줄을 섰다.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치기 시작했다. 사실 직접 별을 천체망원경씩이나 동원해서 바라보는 일이 처음이다.

여기저기 세워둔 망원경근처에서 사람들의 탄성이 들린다. 드디어 내 차례다. 한 쪽 눈 질끈 감고 렌즈 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 책에서나 보았을 별이름들이 나와 손 내밀어 이어 붙고 있었다. 금성, 오리온, 북극성...,은하철도 철이의 여행지 안드로메다.

수억 광년을 거슬러 올라가 동그라미 렌즈 안 그 자리에 별과 나만 있었다. 살아서 전해주는 별의 소리를 듣고 읽어내느라 집요하게 뜬 눈가에선 눈물이 질금거렸다. 

때맞춰 바람결에 물러간 구름떼 덕분에 겨울 밤 별보기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토성’방으로 돌아와 누웠지만 쉬이 잠이 오질 않는다.

마치 인류역사의 엄청난 일급비밀을 혼자만 알고 있다는 듯 은밀한 웃음이 입가에 그려졌다.

가족이 한 방바닥에 일렬횡대로 누워본 적이 있는가.

얼기설기 딸과 아들, 남편과 아내가 방바닥을 하늘삼아 하나씩 별이 되어 잠을 부르고 있었다. 도란도란 얘기 끝에 아이들이 먼저 잠이 든다.

남편과 아내는 어느 한 날 잃어버렸던 전설과 꿈의 별 이야기를 하느라 새벽으로 가고 있었다. 말소리가 바람결에 어깨위로 내려앉은 나뭇잎 같더니 스르르 잠속에 묻히고 말았다.


새벽이었을까.

철제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세요?”

딸깍이며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려하자 곧이어 들리는 남자목소리.

“아니요, 추우니 열지마세요. 토성 보러 나오세요! 지금 봐야 합니다.”

몸이 천근만근 일어날 수가 없다.

일부러 알려준 성의 생각해서라도 남편을 깨워야했다. 발끝 쭉 뻗어 아들 건너편에서 코 골고 있는 남편의 몸을 툭툭 건드렸다.

“빨리 일어나 봐요. 토성 보러 나오래!”

반쯤 감은 눈을 비비며 남편이 나가자 흩어진 잠 조각들 꿰맞추려 다시 눈을 감았다.

잠시 후 헐레벌떡 들어온 남편이 나에게 소리친다.

“여보! 토성 보라구, 끝내줘 지금 안보면 후회할거야.”

슬쩍 커튼을 젖혀보니 이미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다시 잠을 청하기엔 무리다 싶어 신발을 찾아 신었다.

새벽공기가 싸하게 코끝으로 다가왔다. 망원경렌즈 입구에 눈을 밀착시켰다.

아! 정말 토성이 보였다. 우리가족이 하룻밤 묵은 방 이름 토성이 아닌 진짜배기 토성이다.

사선으로 허리띠를 둘러차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말갛게 제 몸을 드러낸 자태에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머나먼 은하계 지구상 수치로 계산되지 않을 거리쯤에서 뵈지도 않을 이 한 점 나에게 빛으로 다가서고 있다.

이제껏 누군가에 빛이 된 적 없었던 나를 끌어당기는 토성.

말을 잃고 바라볼 뿐이다.


고맙네. 청년!

새벽미명 외쳐준 그 한마디 덕분에 잃었던 꿈의 별을 다시 만났으니.

별 이야기를 잃은 이들이게 외쳐주기를.

토성 보러 빨리 나오세요!


 


2009년 1월 4일 새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