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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릿골 16 - 오줌싸개


BY 박예천 2009-01-02

 

오줌싸개

 


 


밤이면 이불에 오줌을 쌌다. 저녁에 수분 없는 음식위주로 먹어도 거의 매일 밤 지도를 그렸다. 미리 화장실을 다녀와도 마찬가지였다. 내 별명은 ‘오줌싸개’로 가족들 입에 오르내렸다. 열 두 살이 다 되어가도록 그런 실수를 했으니 본명을 아예 바꾼다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닐 정도였다.

엄마는 아침이면 축축한 이불을 걷어내며 옷을 갈아입히기에 바쁘다. 큰 소리로 화를 내거나 가족들에게 이르지도 않고 오히려 혼이 날까 숨겨주곤 했다.

어찌 그것을 감출 수 있겠는가.

당장 빨랫줄에 깔고 덮던 지린내 절은 이불이 펄럭이며 걸리게 되는걸.

 

할머니께 오줌 싼 일을 들키는 날은 아침부터 아랫집에 사는 ‘강원도할머니’댁에서 소금을 얻어 와야 한다. 할머니가 강원도에서 이사 왔다하여 그렇게 불렀다.

소금을 얻으러 갈 때는 반드시 머리에 키를 씌우고 손에는 바가지나 대접 하나 들려 보낸다. 사립문을 빠져 나와 머리에 쓴 키가 떨어질까 한 손으로 붙잡고 엉거주춤 강원도할머니 집안으로 들어간다. 소금을 얻어오지 않으면 집에 들어올 생각도 말라는 할머니의 엄명이 있었기에 그 집 마당쯤에서 안채를 향해 모기 소리만 하게라도 입을 열어야한다.

분명 입은 벌어지는데 말소리가 나오려하질 않는다. 단골로 소금을 얻어오는 집이기에 단련되기도 하련만 어찌 된 것이 갈 때마다 주눅이 든다.


“할머니, 소금 얻으러 왔어요!”

다 죽어 가는 소리로 몇 번 입 밖으로 소리를 내밀어 보았지만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 할머니와 미리 약속한 듯 늘 같은 대본의 억양과 말투로 혼 구멍을 내던 분이다. 헌데 오늘은 되돌이표 붙은 노래처럼 몇 번이고 불러도 나오질 않는다. 외출이라도 한 것 같아 밖으로 나오려는데 할머니 모습보다 고함 소리가 먼저 귓전에 사정없이 울린다. 뒤란에서 걸어 나오며 “너 또 오줌 쌌나? 어째 날마다 그 꼴인가?”하신다.

허겁지겁 소금항아리에서 한 사발 퍼 그릇으로 옮기는가 싶더니 이어지는 매서운 매타작. 물론 직접 몸에 손을 댄 것은 절대 아니다. 일찌감치 준비했던지 강원도할머니 손에는 끝이 시커먼 부지깽이가 들려 있었다. 그 긴 작대기로 마구마구 머리에 쓰고 있는 키를 두들겨 대는 것이다. 아픔을 느끼거나 할 여유도 없었다. 우선은 키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소금대접을 들지 않은 손으로 부여잡아야 했고 조금이라도 매타작을 피하려면 부리나케 그 집 마당에서 탈출해야만 했다.

소리 내어 울면서 마구 뛰었다. 머리에 쓴 키는 벗어질 것 같고 소금도 자꾸 내가 뛰는 출렁임에 따라 그릇 밖으로 쏟아지려 한다. 차라리 집에서 회초리 들어 종아리 몇 대 칠일이지 아침부터 동네 시끄럽도록 창피를 주는 할머니가 못내 서운하고 밉기까지 했다.

몇 번이고 오줌 쌀 적마다 강원도할머니 댁을 방문하게 되는 불청객이 되었다.


자면서도 꿈을 자주 꾸었다. 또래계집아이들과 오줌 마려운 것을 참고 동네 공터에서 고무줄놀이 하는 꿈이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낟가리 옆이나 벽 뒤에 숨어 시원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꿈으로만 끝나면 오죽 좋으랴. 잠결에도 찬기가 느껴져 더듬더듬 손으로 이불을 만져보면 현실에서 개운하게 싸버리는 것이다.


추운 겨울아침.

잠에서 깨보니 또 한바탕 흥건히 이불이 젖었다. 굴속에 겨울잠 자는 곰 마냥 웅크렸다. 눈가에 붙은 잠 부스러기 손으로 비벼 떼어내며 방밖으로 나갈 일이 걱정이 되었다. 호랑이 같은 아버지는 아까부터 큰 목소리로 빨리 일어나라고 부르고 금방이라도 고모가 들어와  이불을 홀딱 걷어내며 일으켜 세울까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옷이야 나 혼자 그럭저럭 갈아입는다 해도 이불은 어찌할 수가 없다. 끙끙대며 고민하고 있다가 고모에게 들켜 동네가 떠나가도록 혼이 나기 일쑤였다.

강원도할머니 마주 대할 생각에 또 눈앞이 캄캄해 온다.

몸이 허약해 그렇다며 엄마는 이것저것 민간요법으로 전해오는 약들을 해 먹였다. 여러 가지가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것은 감꼭지를 달여 주거나 참새 한 마리를 통째로 푹 고아 국물을 떠 먹여 주곤 했다.

공부는 곧잘 하는데 그놈의 오줌 싸는 일이 문제였다. 행여 학교친구들 귀에까지 소문이 퍼져 별명이 ‘오줌싸개’로 될까 노심초사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자연스럽게 오줌 싸는 일이 없어졌고 끝내 반갑지 않은 별명은 얻지 않게 되었다.

나이 어릴 때 오줌을 자주 싸던 일이 심리적으로도 불안감을 주었는지 성인이 되어서도 늘 긴장을 하게 된다. 잠들기 전에 서 너 번은 화장실을 다녀와야 직성이 풀리고 버스라도 타고 갈 일이 생기면 또 그날의 내가된다.


딸아이가 엄마인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 들으며 즐거워하는 것을 보았다. 동화책보다 재미있다며 자주 들려주기를 원한다. 들로 산으로 뛰놀며 있어졌던 아름다운 추억담만을 끄집어냈을 뿐 오줌싸개 이야기는 해준 적이 없다.

친정에 아이와 함께 가게 되는 날, 어머니가 불쑥 딸아이에게 ‘네 엄마가 어렸을 때 말이야.....’하며 오줌싸개 이야기를 풀어낼까 지금도 괜히 두 볼이 화끈거린다.

아무래도 미리 친정엄마께 비밀로 하라고 손가락 걸어야겠다.



2003년 12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