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원 훔친 아이
아이들이 가져온 걸레는 형형색색 크기와 모양도 제각기 다르다. 입던 헌옷 잘라 사각모양으로 꿰매어 엄마는 내 준비물을 챙겨 주셨다. 쌍화탕 병에 들기름도 담아 가방 속에 넣고 학교 길 나선다.
일 학년 이 반 나의 교실과 복도의 바닥은 전부가 우리 집 마루를 닮아 있다. 좁다란 줄 길게 이어 붙인 쪽마루바닥 위를 청소시간 되면 무릎 꿇고 엎드려 닦았다. 유리창마다 겨울의 찬 기운으로 성에 가득한 추위였지만 걸레 질 하는 우리들 콧등엔 송글송글 땀이 맺힌다. 요령을 피우거나 대충 걸레질을 하는 녀석들이 보이자 선생님께서 한 가지 제안을 하셨다. 구령을 붙여서 하나에서 열까지 세어가며 문지르자고 하신다. 잘하는 친구들에게는 알사탕 하나씩 입 속에 넣어 주신다는 말씀이 떨이지기가 무섭게 바닥이 뚫어져라 쳐다보며 열 번씩 채우고 입안에 달콤함을 선물 받는다.
교실 뒷문 곁에 엎드려 들기름냄새 킁킁 맞던 나는 나무의자 등받이에 걸쳐 둔 동네 친구의 외투를 보게 되었다. 사실은 옷 주머니 속을 뒤져보았다고 하는 것이 맞다. 십 원 동전 몇 개가 눈에 들어온다. 순간적으로 주위를 둘러 본 나는 재빠르게 손을 집어넣고 슬쩍 동전 하나를 꺼냈다. 모두들 매끈하게 나무 바닥을 닦느라 내 서투른 도둑질을 못 본 것 같았다. 머릿속으로는 그 돈으로 무엇부터 사먹을까 순서를 매기기 시작했다. 평소 아버지는 학용품 구입하는데 필요한 용돈 이외의 돈을 주시지 않았다. 색색 물감 같은 젤리나 쫀디기가 무척 먹고 싶다는 순간적인 생각에 주저 없이 돈을 꺼내 손안으로 감추어 버렸다. 정말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고 철썩 같이 믿으며 쉬는 시간 내내 땀으로 끈적이는 돈을 만지작거렸다.
아무 일 없었다는 표정으로 자리에 한참 앉아 있었다. 어서 빨리 학교공부가 끝나고 교문 앞 구멍가게로 직행할 생각만 했다. 잠시 후 선생님께서 교무실로 오라 하셨다는 친구의 얘기를 전해 듣고도 전혀 가슴 뜨끔거리지 않았다. 낡은 나무 책상들이 여러 개 머리를 맞대고 있는 중간쯤에 우리 선생님 얼굴이 보인다. 조용히 내 옆에 의자를 가져다주시며 앉으라고 하신다.
“oo야, 그 돈으로 무얼 하고 싶었니?.”
이럴 수가. 다 알고 계셨다는 얘기가 아닌가. 나는 아무 말도 못한 체 어깨를 들썩이고 코를 훌쩍이며 울기 시작했다.
“괜찮아, 네가 무얼 잘못했는지 알지? 처음엔 작은 돈이지만 고치지 않으면 큰 것도 훔치게 된단다. 다시 제자리에 갖다 두고 앞으로는 절대 그런 짓 하지 마라.”
선생님의 말씀은 회초리 몇 대보다도 더욱 아프게 마음중앙을 찔렀다. 친구들의 눈을 피해 훔친 돈 십 원을 다시 아까 그 아이 옷 주머니 속으로 보냈다. 동전의 무게가 천근만큼 가슴을 짓눌렀었는데 곧 새털처럼 날아갈 듯 가벼워짐을 느꼈다.
“선생님은 네가 공부 잘하는 것 보다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게 더 좋아.”
여덟 살 어린 나이로 그 뜻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었으나 나이를 더해가며 나를 세우는 중심이 되었다.
만약 그때 많은 아이들 앞에서 망신을 주었거나 호된 매질을 하셨다면 또 다른 모습으로 성장하는 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중년의 나이테를 곧 둘러 쓸 때가 되어가니 추억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존경하는 일 학년 이 반 강인숙 선생님이 참으로 그리워진다.
교과서 내용 익히고 시험점수 높은 것보다 인간 됨됨이 바른 아이로 가르치셨던 그 분.
지금은 어느 연세쯤의 노인으로 계실지 아이들 함성 가득한 교단에 아직도 자리하고 계실지 궁금하다. 십 원 훔친 계집아이는 강산 여러 번 변했을 세월을 먹고 이제는 일 학년 딸아이의 엄마로 살고 있다는 것 알고 계실까.
찬 기운 겨울바람 학교마당 휘돌면 그날처럼 들기름 한 병과 사각 걸레를 꿰매들고 마루 바닥 교실 찾아 뛰고 싶어진다. 지금껏 살면서 문득문득 선생님 그리워 빈 하늘 쳐다보았다고 말씀 드려야지.
돈을 훔친 아이가 나였음을 기억하고 계실지 모르겠다.
선생님! 어느 곳에 계신지요.
꼭 한 번만이라도 손잡아 보는 날 왔으면 좋겠습니다.
2003년 6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