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616

삶의 향기 - 삼월스무날


BY 박예천 2008-12-27

 

                     삼월스무날

 

 

 

음력 삼월스무날은 내 생일이다.

양력 중심의 기념일들 속에서 숫자를 더듬거나 손가락셈을 해야 찾을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새해 달력이 생기는 연말이 되면 남편은 기억해야 할 기념일들을 빠짐없이 기록해둔다.

지나치게 꼼꼼한듯하여 처음엔 곱게 보이지 않았다. 최근 몇 년 사이 그것이 건망증 심한 아내에 대한 배려의 한 부분임을 알게 되었다. 집안 대소사를 챙겨야하는 맏며느리위치인 나에게 달력표시는 고마운 안내이다. 한 달씩 넘어가는 달력을 훑어보며 가족행사를 계획하고 준비할 수 있으니 편하다.   


결혼한 여자들이 자기 생일을 얼마나 잘 챙기며 사는가.

위로 시부모님 위하고 남편과 자식들 거두다보면 실상 자신의 생일쯤은 까맣게 잊는다.

신혼 초. 달력에 표시조차 해 놓지 않고 모른 척 남편의 의중을 떠보기도 했다. 마치 두고 보자는 심정이었다. 잊고 지나가기라도 하면 도끼눈을 뜨거나 콧물 눈물범벅으로 토라졌던 일이 기억난다. 그 후 자신이 적어놓았으면서도 까마귀고기를 삶아먹었는지 지나치기가 일쑤였다. 화도 나고 원망스럽기도 하여 혼자 속을 끓였다.


올해 생일.

드디어 뻔뻔스러움의 강도가 철판이 되어가고 있다. 달력에 색연필로 몇 겹 띠를 두른 것도 부족하여 달포 전부터 남편의 귓가에 외쳐대기 시작했다.

날짜를 반복하여 알려주고 일체 어떤 선약도 만들지 말 것을 세뇌시켰다. 이른 아침이면 달력 앞에 서서 손가락을 짚어가며 아이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엄마 생일이니 잘 알아두라 당부했다. 지시봉만 들었다면 영락없이 사업설명회를 하는 대기업 사원의 모습이었을 거다.

알아서 축하해주기를 바랐건만 소용이 없게 되자 노골적인 압력을 가한 것이다. 거의 협박수준이었다. 그날대우에 따라  용돈절감과 반찬변화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드디어 당일. 결과는 대 만족이었다. 눈곱도 떼어내지 않은 꾀죄죄한 얼굴로 딸아이를 동원해 축하노래를 부른다. 엎드려 받은 절이지만 나는 거드름을 피웠다.

성씨 다른 양력생일 자들 속에서 음력 삼월스무날 내 생일 스스로 찾아먹기는 가히 성공적이었다.


친정어머니가 나를 낳으시던 밤에는 낮 동안 손님접대에 쓰였던 그릇들이 마른행주질로 포개지고 있었다.

옥양목 행주치마 두르고 집안 친척들이며 동네 어른들을 모셨으리라. 시아버지 생신날에 맞추어 콩나물 숙주나물 물바가지 퍼주며 길렀을 테지. 가마솥에 콩물 끓여 시어머니와 옥신각신 부어라 자루 잡아라 손 두부도 만들었겠다. 간간하게 물김치 익혀두는 것도 있구나.

그날의 아침상을 위해 몇 날 전부터 정성이 모아졌다.

손님들이 물러가고 광주리에 쌓인 그릇들이 산더미이다. 대청마루에서 물기를 닦는 어머니가 산기를 느끼고 서서히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더란다.

배를 움켜쥐며 툇마루를 기어 건넌방 문지방을 넘고 문고리에 안간힘을 모으다 어머니는 첫 딸을 낳으셨다. 살림밑천이라는 그 맏딸이 바로 나다.


할아버지덕분에 나는 생일상을 거하게 받고 자랐다. 오전에야 어른들 모시느라 손녀딸은 안중에도 없었지만 저녁만큼은 개똥이 쇠똥이 동네 친구들을 모으라하셨다. 부지런한 할머니가 손수 상을 차려 주셨다.

오색찬란한 음식들을 내가 장만한양 기고만장 친구들 앞에서 뽐내었다. 주섬주섬 연필자루를 선물이라 가져온 녀석도 있었다.

시골구석에서 그것도 한참 농번기 때 어린자식의 생일상을 차려주는 일은 드물었다. 이 모든 영광이 다 할아버지 덕분이다.


하나뿐인 손녀딸이 장성하여 시집가는 날. 분명 예식장에 오신 것을 아는데 가족기념촬영 때에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멀리 사람들 틈으로 잿빛 두루마기가 숨는다. 손을 저으며 할아버지를 부르니 쏜살같이 계단을 내려가신다. 나중에서야 말씀하시기를 머리 허연 늙은이가 사진 다 버린다고.

새댁시절 간혹 드리는 안부전화에 숨찬 호흡 삼키시며, 내 생일날 안 올래?

그것이 어찌 당신생신 기억해달라는 말씀일까. 손녀생일 챙겨주고 함께 나누고픈 맘인 걸 안다.

여든아홉 생신을 사흘 앞두고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

생일동지 할아버지는 없고 음식 차리던 할머니는 치매가 온 기억을 갉아먹어버렸다.


오늘밤 꿈에라도 모시적삼 걷어 올린 할아버지를 만나면 삼월스무날 당신 몫까지 잘 챙겨먹었노라 말할까보다.

꼴짐 지던 할아버지 잠방이는 여전히 풀물 들어 있을라나. 




2005년 4월 28일 내 생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