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옷을 들고
영동지방에만 비가 온다더니 일기예보가 오늘은 딱 들어맞는다.
오후가 되자 장대비가 쏟아진다.
아침부터 바람소리와 하늘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바닷가에서 시작된 먹구름이 설악산 쪽으로 몰려가더니,
울컥울컥 가을 설움덩어리를 토해낸다.
진짜 울고 싶은 건 나인데, 제 먼저 통곡을 해대는 하늘.
어찌 나이를 먹을수록 채워지는 것은 없고 더욱 초라해진단 말이냐.
가끔은 지나치게 감상적인 내 자신이 싫다.
사계절은 때가되면 바뀌는 게 당연지사고,
철따라 눈비내리며 꽃피고 지는 것인데.
그것에 뭐 맘이 동요되어 훌쩍거릴 이유가 되는지.
꼭 이맘때.
더구나 가을이 빛을 더해가며 익어갈 무렵.
누군가 서운한 말 한마디 건네면 정신 못 차리도록 슬프다.
목울대를 간질거리며 명치끝이 괜히 아려오는데,
정곡을 가르듯 말 한마디로 비수를 꽂는 이가 있으면 더욱 그러하다.
빗방울이 거세지고 굵어진다.
땅바닥을 후벼 파며 생채기를 내고 있다.
넋을 놓고 멍청하게 앉아있자니 우산 없이 등교한 딸아이가 떠오른다.
나 초등학교시절 울 엄마는 늘 바빴지.
품앗이 논밭일 가야하고 추수 때 지나기 전에 거두어들일 낟알이 많으니까.
오늘처럼 예고 없이 비가 쏟아지면 수업이 끝나기도 전에 복도에 두런거리는 소리.
엄마들이 미리 우산을 들고 와 있었지.
단 한 번도 비오는 날 우산 가져온 적 없는지라 선생님 말씀은 귀에 안 들리고,
어깨만 쳐지며 풀이 죽기 시작했지.
교실 문이 열리고 옥신각신 아이들이 빠져나가면,
서로들 자기아이 이름을 힘차게 불렀지.
그 속에 울 엄마 목소리는 없었지.
딸아이에게 그런 서글픔은 물려주기 싫었다.
늘어졌던 감상을 추스르며 서둘러 비옷을 챙겨들었다.
방수가 잘 되는 운동복 차려입고, 학교마당을 건넌다.
남의 집 논일 밭일 하지 않아도 되는 엄마여서 나는 참 행복하다.
삼학년 오반 복도에는 벌써부터 한 무리의 엄마들이 북적거린다.
잔뜩 흐린 날에도 다방마담 뺨치게 잘 차려입었거나 명품도배를 한 엄마들.
한쪽 귀퉁이에 노란 비옷을 든 운동복 차림의 아줌마는 신발장만 뚫어져라 쳐다본다.
아침에 신고 간 검정구두를 딸아이 손이 집어 들면 아는 체를 하리라.
깜짝 놀라겠지?
드디어 아이들이 나온다.
한참을 기다려도 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교실 뒷문으로 슬쩍 보니 책가방 싸는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
“선뽕아!”
“어? 엄마다!”
이말 외에 더 큰 감탄사는 없다.
엄마라는데.....,
해바라기 웃음으로 달려 나온다.
비옷을 들고 엄마가 용사처럼 나타났다는데 얼마나 기세등등할 일인가.
친구와 같이 오겠다는 딸에게 비옷을 입혀주었다.
왔던 길을 딸아이 가방 메고 추적거리며 걷는다.
어디서 들은 말이었더라.
사랑을 받아 본 사람만이 줄줄도 안다고.
꼭 그렇지만은 않다.
비오는 날 우산한번 건네받지 못하고 자랐지만,
나는 열심히 학교로 우산 배달하며 살 거다.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천리만리 길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우산배달일로 잠시 긴장했던 정신이 다시 늘어진다.
또다시 가을타령으로 들어가 눈물이 봇물처럼 터질까말까 한다.
누가 나 좀 말려줘요!
아님 두들겨 패주든지.
2005년 10월 18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