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면
버스를 타면 여러 사람들의 얼굴들과 만날 수 있다. 기껏해야 가까운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에 불과하지만 소풍가는 어린아이 마냥 들뜨게 된다. 간혹 시외직행버스라도 타게 되는 날이면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더욱 쏠쏠해진다. 버스 안은 바깥 풍경만큼이나 볼 것이 아주 많다.
세상에는 어쩌면 그렇게도 다양한 얼굴의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생김새가 모두 다르다. 대충 얼굴인상만으로도 그 사람의 품성을 짐작할 수 있으니 버스를 타면 인물사전을 펼쳐 읽는 기분이 된다.
오늘은 맨 앞에 앉은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가 운전기사와 구수하게 말씀을 이어가신다. 행여 한 부분이라도 놓칠세라 두 귀를 있는 대로 세우고 들었다.
“내가 처음 시발택시 몰게 되었을 때 기분 끝내 줬지. 그땐 차가 몇 대 없었거든.”
속초를 출발할 때 시작된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강릉쯤에 왔을 때는 장의버스 운전하며 겪었던 영웅담으로 바뀌어 있었다. 운전석 바로 뒤의 할아버지 얼굴은 앞 거울을 통해 버스안 사람들에게 소개된다. 세월의 풍상이 그대로 그려져 어떤 생을 살아오셨는지 읽을 수 있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얼굴에 미소를 짓게 되었다. 차안에 거의 모든 승객들이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어쩌다 꿀맛 같은 졸음을 느끼던 사람도 눈을 감고 있으나 할아버지 사연에 귀를 모으고 있는 듯했다. 쫀득쫀득한 찹쌀인절미 맛의 할아버지 옛날이야기는 오래들어도 지루하지 않게 계속되었다.
얼굴이야기를 하자면 나만큼 할 말이 많은 사람도 드물 것이다. 생긴 모양이 박색이어서 한이 맺혔던 것은 아니다. 지금 떠올리면 슬쩍 웃어넘기고 말일이지만 예민했던 사춘기시절엔 엄청나게 큰 문제였다.
이목구비 또렷한 것은 나름대로 마음에 들었는데 얼굴형이 상당히 불만족스러웠다. 둥글넓적하려니와 몸 전체를 훑어봐도 몇 등신으로 나누어야 적당할지 고민스러울 정도이다. 틈만 나면 부모님을 원망하였다. 키 작은 것은 어머니요, 펑퍼짐한 덩치는 아버지이니 어찌 이런 몸을 만드셨느냐 투덜거렸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던 동네 할아버지들은 나를 향해 곧잘 골목이 환하다 하였다. 얘긴 즉, 내가 걸어가는 곳에 보름달이 떴다는 것이다. 칭찬이 아니라는 생각에 화가 치밀고 집으로 뛰어 들어와 툇마루에 엎드려 펑펑 울었다. 당시는 왜 그렇게도 별일도 아닌 일에 인생전부가 걸려있는 양 심각했던지.
학교 앞에 살던 한 친구는 얼굴이 조막만 한 크기였다. 몸매 또한 늘씬한 것이 재어보지는 않았지만 팔등신으로 나누고도 가위 뼘은 남았을 거다. 헌데 그 아이 불만은 볼품없는 이목구비에 있었다. 깊어 가는 여름밤, 몰래 집을 빠져 나와 흘러가는 도랑물 앞에 쭈그리고 앉아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세상 다 살아본 여인네들 모습으로 둘은 푸념을 늘어놓았다. 너는 좋겠다. 어쩜 그리도 눈이 환하게 크고 코도 오뚝하냐. 날 좀 봐라. 눈은 뱁새눈이고 코도 들창코다. 아니다, 네가 더 예쁘다 얼굴이 작으니 어떤 옷을 걸쳐도 폼이 난다. 서로를 빗대며 부러움 반, 체념 반의 이야기를 섞었다.
물끄러미 땅바닥을 보던 친구가 갑자기 어처구니없는 말을 한다. 이런 몰골로 사느니 죽어 버리겠다나. 솔직히 나는 얼굴이 맘에 들지는 않아도 죽고 싶을 만큼은 아니었다.
태도가 바뀌어 슬슬 친구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 죽지는 말고 독신으로 살자. 이성에 민감했던 시기라서 유난히 외모에만 신경을 썼는가보다.
훗날 죽어도 시집가지 않고 늙겠다던 얼굴 못난이 두 여자는 자식 대롱대롱 낳아 잘 기르는 중년 부인이 되었다. 아마도 그 친구와 나는 ‘박씨부인전(朴氏婦人傳)’에 나오는 이시백 같은 남편을 만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앞자리 할아버지가 조용하다. 거울 속에 피곤한 노년은 짧은 시간 드러내놓은 이야기가 힘겨웠는지 곤한 모습으로 졸고 계신다.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주름 깊은 얼굴을 담고 거울도 덩달아 춤을 춘다.
사십의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는 흔한 말이 생각난다. 꼭 지금 내 나이쯤에 얼굴 들여다보기의 중간점검을 해야 하는데 걱정이다. 타고난 미인은 아니었어도 아름다운 인상의 얼굴이 되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삶이어야 했다.
늦은 감이 있겠지만, 당장이라도 숫돌 위에 인내와 배려의 조각칼을 갈아둬야겠다. 날을 세워 모난 부분을 서서히 다듬어가야지.
버스는 어느새 강릉터미널에 도착하여 속에 가득했던 얼굴들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 틈에 끼어 내리며 사람들 마음 속 골목마다 환하게 다가서는 낯빛, 나는 보름달을 꿈꾼다.
2004년 11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