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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릿골 12 - 꽃과 어머니


BY 박예천 2008-12-26

                  꽃과 어머니

 

 

 

 

지금쯤 마릿골 친정 앞마당 화단에는 키 낮은 봉숭아가 무리 지어 피었을 것이다. 여름이면 어머니는 우리 삼 남매의 손톱에 정성껏 꽃물을 들여 주셨다. 마을 논일 밭일 품앗이로 허리 한번 펴지 못했을 고단한 어머니는 땀내 나는 몸을 닦기도 전에 뜰 앞에 핀 봉숭아꽃과 잎사귀를 훑어 뒤란 그늘에 놓아 시들게 했다. 담 밑으로 기세 좋게 넝쿨 올라간 진초록 포도잎사귀도 여러 장 봉숭아 꽃잎 옆에 놓는다. 어느 정도 시든 꽃과 잎사귀를 댓돌 위에 놓고 백반 으깨어 곱게 찧어 둔다.

 

저녁상을 물린 후 대청마루 흐린 형광등 밑에 모여 앉아 봉숭아물을 들인다. 욕심 많은 내가 제일먼저 손가락을 들이밀고 열 손가락 모두 해달라며 조르면 어머니는 약지와 새끼손가락만 하는 게 예쁘다며 싸매 주신다. 동글동글 질척한 덩어리를 손톱위로 얹고 적당하게 시든 포도잎사귀로 돌돌 말아 여러 개 끊어둔 무명실로 잘 묶는다. 재잘거리며 웃는 우리 무리를 보고 어머니를 향해 할머니가 한 말씀하신다.

“그렇게 시간이 남으면 부엌일을 더 할 것이지 애들처럼 에미가 되어 가지고 뭔 짓이냐?”

어머니는 봉숭아 꽃잎 같은 작은 목소리로 “엄니도 해드릴까요? 그냥 누우셔서 손만 내밀어 보세요. 제가 해드릴 테니.”하며 웃는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며 돌아눕던 할머니도 손을 잡아당기는 어머니에게 못이기는 척 손가락을 맡긴다. 고등학교 다니는 막내고모 손가락까지 하려면 아무래도 무명실이 모자랄 것 같다. 실 낭비한다고 할머니께 싫은 소리 한 번 듣는 것을 끝으로 어머니의 손가락에도 도톰한 포도 잎 모자가 씌워진다.

 

잠을 자는 중간에도 몇 번씩 일어나서 요강에 걸터앉아 소변을 해결하는 나는 가끔 우스운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볼일을 보는 도중 잠결인지라 무의식중에 엉덩이를 손으로 긁적거린다. 아침이면 손가락 지문 쪽만 모두 구멍이 나 있는 것이다. 포도 잎이 연하니 그런 일이 생긴다. 동생들과 어머니가 그런 내 손 모양새를 보고 큰 소리로 웃곤 했다. 눈을 비비고 잠에서 깬 아침 얼굴을 마주 대하기 바쁘게 뒷마당 우물가로 모여 서로의 손톱을 비교하며 물 대야에 담근다. 손톱 얇은 막내 동생 엄지손가락이 제일 붉게 들었다는 어머니 말에 괜히 우쭐해지는 모습으로 누이를 쳐다본다.

억지춘향으로 물을 들인 할머니도 우리들 틈으로 손을 내밀어 보이며 이게 뭐냐 살에만 붉게 들고 손톱은 허옇다 하신다. 그날 밤은 분명히 할머니 손톱을 위해 또 한 번의 붉은 봉숭아물 파티를 열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어머니는 소녀 같았다. 꽃을 심고 가꾸는 걸 좋아하셨는데, 화려한 장미나 백합보다는 수수하게 피는 꽃들을 가까이 두었다. 채송화, 맨드라미, 붓꽃, 코스모스 같은 꽃들이 소박한 엄마의 화단식구들이었다. 틈틈이 잡초를 뽑고 다듬는 손길에 꽃들은 어머니 자식이 되어 방긋거리며 나비 떼를 불러들인다. 그래서인지 산이나 들에 자잘하게 피어있는 들국화 무더기를 보면 들꽃 같은 어머니가 떠오른다. 꼭 어머니를 닮은 모습으로 드러나지 않게 웃음띄우기 때문일까.

 

어머니 뱃속에 내가 있을 때 밤이면 꿈속에서 외가 뒷동산에 올라 이름 모를 꽃들을 한 아름씩 안고 내려왔다고 한다. 거의 날마다 같은 꿈으로 꽃무더기를 들고 산을 내려오셨다는 어머니 얘기를 듣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꽃이면 예뻐야 하는데 왜 난 꽃처럼 안 예쁜 거야? 엄마, 그거 개꿈이다.” 내 말을 듣던 어머니는 잘 여문 해바라기처럼 웃으며 말씀하셨다. “네가 꽃인 것은 맞다. 우리 집 봐라 너 때문에 웃고 사니 웃음꽃 아니겠냐?” 하긴 내가 웃을 일을 자주 만든 것은 사실이다. 딸 하나라는 버릇없음을 핑계 삼아 할아버지 앞에서나 모든 가족들에게 갖은 응석과 우스운 말을 재잘거려댔으니 그럴 만도 하다. 아니 어찌 보면 어머니가 꽃이기에 모든 이들을 꽃으로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제 잎사귀 떨어뜨리며 나무들 옷 벗는 계절이 되면 어머니의 손길로 꽃밭은 월동준비에 들어간다. 여문 꽃씨들은 종이에 꼭꼭 싸여 서랍 속으로 숨고, 다알리아 알뿌리는 부엌나뭇간 밑을 파고 묻어둔다. 겨우내 얼지 않게 잘 두었다가 새 봄 되면 다시 어머니의 화단으로 심겨질 꽃 뿌리이다. 지저분한 벌레가 생긴다며 아버지는 어머니의 꽃과 나무들을 자주 베어버렸다. 마당에 풀 한 포기 없이 깔끔하게 뽑아야 직성이 풀리시는 아버지였다. 그와 다르게 어머니는 씨 뿌리고 가꾸며 꽃피우게 하셨다. 누가 보던 말 던 “저것 좀 봐라 색이 참 좋지 않니?” 혼잣말하며 환해진다.

어머니는 지금도 한 떨기 꽃이다. 앞마당에 가꾼 꽃들은 가뭄 들면 물도 주고 씨 맺히면 받아내야 하지만 어머니 꽃은 시들거나 지는 일이 없이 늘 피어 있다. 모진 시집살이 비바람에 부러지고 상처받아 초라해 질만도 하건만, 나는 오래도록 한결같게 향기 품는 꽃을 본다. 치매 할머니 요양시설에 모시라는 가족들 말에 “난 못한다. 얼마 사시지도 못할 분 그런 곳에 모셨다가 금방 가시면, 후회되고 한 맺혀 어쩌란 말이냐.” 하는 영혼 맑은 꽃이다.

 

어머니는 꽃을 가꾸시며 그렇게 피어 평생을 고운 향기 발하는데 나는 누굴 닮아 이리도 자주 피고 지는가. 친정갈일 생기면 어머니께 생떼 좀 부리고 와야겠다.

제발 어머니 꽃 뿌리 한끝자락이라도 내 맘 중앙에 접붙여 달라고 꼭 말해보리라.

그리하면 내 나이 육십쯤엔 어머니처럼 환한 꽃으로 피어 인생의 화단 꾸미고 있을까.

 

 

2005년 여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