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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 김밥 말이 대 작전


BY 박예천 2008-12-26

 

김밥 말이 대 작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나는 혼자 잠을 잤다. 늦은 밤까지 라디오를 들으며 가요를 따라 부르고 가사를 적기도 했다. 이불 속에서 배 쭉 깔고 엎드려 책을 읽고 편지와 일기도 썼다.

혼자만의 시간은 언제나 달콤했다. 그래서인지 누군가 곁에서 함께 잠을 자면 익숙하지 않아 예민해진다. 성년이 되어 객지에서 생활을 할 때도 역시 혼자였다. 방 한 칸 얻어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으니까.

그러다가 막내남동생이 직장근처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면서 어쩔 수없이 한방을 쓰게 되었다. 아랫목은 내 차지가 되고 동생은 윗목 책상 앞에서 늦은 밤까지 공부를 하다가 겨우 새우잠을 자곤 했다. 가끔 잠결에 내 몸에 손이나 발이 닿기라도 하면 발딱 일어나 손으로 찰싹 때리니 “누나, 너무 심한 거 아냐?” 하며 시집가기 글렀다는 것이다.


시집가기 글렀다는 동생 보란 듯이 나는 꽤 괜찮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신혼 초, 익숙하지 않은 잠자리 때문에 불편했다. 방에 누구만 있어도 불편한 마당에 아무리 사랑한다지만 한 이불을 덮고 자야한다는 것이 힘들었다.

남편은 잘 때 옆 사람을 끌어안아야 하는 습관이 있었다. 자기 쪽을 쳐다보고 꼭 팔을 베고 자라는 것이다. 똑바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가슴에 손을 깍지 끼고 자야하는 나와 다른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나는 이렇게 자야한단 말이야. 좀 봐 주라. 안 그러면 잠이 안 와.” 이런 내 말에

“야, 미쳤냐! 내가 이렇게 자려구 결혼을 했냐? 이리와..음?” 하며 달라붙는 것이다.

별명이 ‘삐돌이’였기에 안겨주지 않는다고 삐칠까 걱정되었다. 잠들 때까지만 버텨주자는 심정으로 남편 쪽을 향해 모로 누워있으려니 체중이 한 방향으로만 쏠려서인지 저리기도하고 신경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조금만 이라는 심정으로 버티고 있는데 드디어 쌔근거리며 코를 곤다. 슬쩍 바로 누워볼까 몸을 뒤틀면 다시 손을 내밀어 자기 곁으로 끌고 간다. 콧김을 어찌나 투우장의 황소처럼 뿡뿡 품어대며 자는지 귀가 뚫려버리는 줄 알았다. 코고는 소리쯤이야 솜이나 휴지로 틀어막으면 그래도 어느 정도 견딜만하다. 허나 남편의 잠버릇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시댁에서 시부모님과 함께 살 때 일이다. 지은 지 오래 된 집이라서 겨울이면 외풍이 심했다. 이불 밖으로 숨을 내쉬면 입김이 하얗게 나올 정도였다.

새벽쯤이었을까. 어찌나 심한 한기가 느껴지는지 눈이 저절로 떠졌다.

세상에! 이 남자 이불을 돌돌 말고 침대 끝에서 김밥이 되어있는 것이다. 잠들기 전 갖은 폼을 다 잡고 나를 품에 안아야 잠이 온다던 남자가 말이다. 이불 끝이 어디인지 끙끙대며 잡아 빼 보려다 그냥 날밤을 새고 말았다.

장롱을 뒤져 새 이불이라도 찾아 볼 것을 그땐 왜 그렇게 꼭 한 이불을 덮으려고 안간힘을 썼는지 모르겠다. 한 침대 위에 이불 두 채 있는 것이 좋지 않게 보일까봐 그랬는지.

며칠을 그렇게 이불싸움을 했다. 아침밥을 차리며 콧물을 훌쩍이는 나를 보고 시어머니께서 “너 감기 걸렸냐?”하고 물으셨다. 이불이야기를 해드렸더니 “야~! 그걸 가만 놔 두냐? 발로 확 밀어버려라. 침대  밑으로 떨어지게 해.” 하신다. 물론 당신아들을 향한 진심은 아니겠지만 조금 위로는 되었다.

하루, 이틀.... 밤이면 밤마다 남편은 김밥을 말았다.

드디어 어느 날 작정을 하고 내가 먼저 침대에 누워 이불을 돌돌 말아버렸다.

“자, 오늘부터 내가 미리 이렇게 말고 있을 거야 알았어?”

남편처럼 나도 이불 끝을 등 밑으로 감추고 온 몸으로 통통한 김밥을 말았다.

그랬더니 글쎄 이 남자가 “히히 그렇다면 다 방법이 있지.” 하더니 옷장 문을 열고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다.

군청색 오리 털 파카를 꺼내서 지퍼를 턱에까지 쭉 올리더니 “이불대신 이거 입고 잘란다~!” 하며 벌렁 누워버린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우리 부부는 그냥 이불하나 더 꺼내서 따로국밥으로 쿨쿨 잘 자고 있다. 진작 이렇게 할 것을 왜 그리도 이불싸움을 했는지.......

신혼엔 그저 남는 게 힘뿐인가 보다.



2004년 6월 23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