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651

삶의향기 - 껌 씹는 남자


BY 박예천 2008-12-26

 

 

옥이 에게.


서울 봉천동에선가 너를 만난 이후 십오 년쯤이 흘렀다.

갑자기 네가 떠오른 것이 바로 껌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지금 내가 타고 있는 버스는 강릉으로 질주하고 있단다.

차안에 음악이 어찌나 경쾌하게 울리는지 밖으로 보이는 바다의 소리가 안에까지 일렁이며 들어와 있는 느낌이야.

눈을 지그시 감고 나름대로 신곡대열에 포함시킬 수 있는 노래를 선곡하여 틀어준 운전기사 님께 고마워하고 있었지.

그런데 말이야.

음악소리 중간 중간으로 ‘딱, 딱’ 하며 아주 거슬리는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들리는 거야. 마치 학창시절 나른한 오후수업 중 어떤 녀석이 모나미볼펜 뒷부분을 눌러댔던 그 음.


바로 껌 씹는 소리였단다.

고개라도 돌려 쳐다보고 싶었지만 곧 멈추겠지 생각하며 참았지.

흩어졌던 음악줄기를 다시 귓전으로 뽑아 올리려고 안간힘을 썼어.

대단한 사람이더라.

쉽게 멈추지를 않고 계속 이어대는 그 소리가 이제는 음악에 맞추어 울리는 타악기 같았다.

그렇게 인정하려 했지. 악기소리일 뿐이라고.

버스가 내 소유가 아닌 이상, 나는 그저 오 천 삼백 원 어치의 좌석을 차지한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어.


그런데 옥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결정적인 소리가 들려 정면만을 주시하던 나는 일순간 뒤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되었단다.

딱 소리만으로는 치아의 넘치는 힘을 주체할 수 없었던지 이제 그 사람은 아예 입술 가에 풍선을 만들었다 터뜨리기 시작하더라.  

좀 전에 들리던 딱 소리는 박자가 일정하니 놀라지 않아도 되겠는데 이번 소리는 아니었어.

언제 터질지도 예측불허였거니와 감당할 수 없는 소리였단다.

드디어 껌 주인공과 얼굴이 마주치는 순간이었지.

뒤로 자빠질 뻔했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보게 되었는데 여자도 아닌 남자였고 더욱 놀라운 것은 사십 중반은 족히 될 나이의 대머리 아저씨라는 사실이야.

정말이지 나이 어린 철없는 십대이거나 이십대 초반의 아가씨 얼굴만을 상상했던 나는 한참이나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 사람을 쳐다봤단다.

무안해서였는지 아니면 껌이 더 이상 씹을 수 없게 삭아버렸는지 소리가 멈추더구나.


너도 그랬었지?

기억나는지 모르겠구나.

솔직히 말하지만 네 양 볼이 조금 늘어져 있는 것으로 보였고 그것이 아무 때고 씹어대는 껌 때문인 것만 같았다.  

중학교 때를 시작으로 여고시절 한 반이 되면서까지 너는 줄기차게 껌을 씹었지.

점심을 먹고 나서부터 지루해지던 5교시 수업시간.

창밖으로는 남한강이 굽이쳐 소리도 없이 흐르고, 또 그렇게 졸음도 우리들 머리를 타고 책상위로 흐르고 있었지.

변함없이 오물거리며 껌 씹는 네 얼굴을 대하며 참으로 용감하다고 생각 했다. 들키지도 않고 어쩜 그리 오래 입안에 간직하고 있는지.

운이 좋지 않은 날이라고 해야 하나?

선생님의 날카로운 시야 속에 껌 씹는 오물거림이 보였고 너는 들켜서 교탁 앞까지 나가 꿀밤을 맞으며 “뱉어! 어서!”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숙였어.

모두들 손에 뱉었을 것이라 여겼지.

혼이 나고 분단사이로 들어오는 네 입이 다시 움직이는 것을 보았어.

왜 다시 껌을 씹느냐는 물음에 너는 작게 속삭였지

“아직, 단물도 안 빠졌단 말이야!”


옥아!

곧 사십의 나이 먹게 되는 너를 떠올리며 꼭 묻고 싶은 말 있다.

아직도 그렇게 껌을 좋아하고 어디서나 씹고 다니니?

버스 뒷줄에 앉은 그 대머리 아저씨 참 흉하고 어이없게 보이더라.

이런 생각을 해봤어.

껌이라는 게 입안에서 씹다가 뱉어서 뭉쳐놓으면 꼭 쥐똥 만하거든.

그런데 말이다.

나이 값 못하고 예의 지켜야하는 장소에서 마구 씹을 때 그 소리 부피는 직접 본적은 없지만 공룡의 똥만큼 거대하지 않을까?

냄새나서 보기 싫고 피하고 싶은 만큼의 분량으로 크게 느껴 질 거야.

소홀히 여기기 쉬운 아주 작고 하찮은 것에도 나이 값이 묻어 있음을 보며,

살아가는 일에 더 신중해야 함을 본다.

도덕교과서 같은 이야기만 했나?


우리, 그렇게 어떤 것에든 나이 잘 먹도록 하자. 


 


2003년 9월 15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