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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나를 세우다


BY 박예천 2008-12-25

 

              바람, 나를 세우다

 

 


 

다섯 해전 속초로 처음 이사를 오던 날.

마음은 고무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설악산과 바다를 날아다녔었다. 바다 어느 작은 바위섬에서 보내온 미역줄기의 편지일까. 코끝으로 스며드는 해초의 비릿함이 오래 익숙해진 어머니의 살 냄새만 같았다. 어디 그뿐이랴. 깊은 골짜기 숨어 자란 초목의 푸른 신록 향까지 설악산에서 보내주는 환영의 인사인 듯 했다. 천혜의 산천에 뿌리내리어 터전을 삼게 됨이 더 없는 행복이었다.


속초가 마련해준 그윽한 풍경들과 새살림을 시작했다.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날마다 볼 수 있는 동해일출과 창 너머로 듬직한 눈빛 주며 내려다보는 울산바위. 자잘한 삶의 얘기꽃을 그것들과 나눈다는 기분이었는지 새록새록 정이 들어갔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끝내 손을 내밀어 마음 주고 싶지 않은 것이 있었다면 그건 바로 바람이다. 속초의 바람은 일찍이 나에게 버림받았다. 미풍으로 살랑거리며 다가온다면 혹 모를까, 도시를 날려버릴  듯한 그 오만함을 사랑해줄 아량은 지금껏 생기지 않았다. 이런 속내가 바람에게 들켜버렸는지 금방이라도 살점을 찢으러 달려드는 것만 같다.


올해삼월로 접어들면서 여린 싹의 목덜미를 간지럼 태우는 애교의 봄바람을 기대했다. 그리하여 나비의 평화로운 비행에도 일조를 가해주는 미더운 바람이라 여기고 싶었다. 허나 며칠 내내 휘몰아치는 바람 앞에 그것은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 되고 만다. 분노만 가득한 형상이었다. 밤이 되면 그 소리는 한이 서린 여인네의 흐느낌이 된다. 제 명을 다 채우지 못하고 요절이라도 한 걸까. 두려움에 몸이 오그라든다. 천둥번개 내리칠 때의 공포와는 또 다른 얼굴이다. 창문 뒤흔드는 울림은 내 이름을 불러대는 목소리로 들린다.


이토록 나약한 것이 인간이었단 말인가. 거대한 바람이 일으키는 소리들로 인해 미물처럼 꼬부라진 자세되어 지은 죄를 손가락꼽아보았다. 행여 인간관계에 설움 맺히게 한 일은 없었는지 기억을 되짚어 본다. 순간 쉴 새 없이 쏟아놓는 내 언어들이 할퀴고 간 생채기가 여기저기서 쓰린 아픔을 호소하는 환상이 보였다. 남발해버린 말이 한 무더기 바람 되어 사람사이를 헤집고 다녔던 지난날들이 확연히 떠오른다. 건물사이를 휘돌며 부수고 파괴의 소리만 쏟아내는 바람과 내 모습은 닮은꼴이었다.


남편에게서 장문의 편지를 받았던 그날의 깊이가 출렁거리며 곁으로 다가왔다. 차분한 필체로 써 내려간 편지지 일곱 장 분량의 긴 글을 읽으며 꼬박 이틀 밤을 울었다. 처음엔 조목조목 아내의 단점들만 상세히 적은 그의 소심함을 비난했다. 참 할 일도 없구나 싶었다. 부부사이 피장파장이라는데 어찌 나의 잘못만 있는가. 귓전에서는 바람이 윙윙 울고 되새김질하듯 다시 편지를 집어 들었다. 읽다보니 참으로 나는 예의도 상식도 없는 사람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남편의 판단이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할 수는 없겠으나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하는 부분이 있었다. ‘말’ 에 대한 것이 그러하다.


유난히 톤이 높고 말이 빠른 나는 성격조차 급한 편에 속하여 대화의 기본적인 자세를 갖추지 못했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고 나의 생각을 내밀어야 도리인데 기다릴 줄을 모른다. 중간에 자르고 급하게 들이닥치는 언어습관은 함께 자리한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런 결점을 알고 있는 벗들의 사귐에서는 어느 정도 감싸주니 다행이지만 어른과의 대화에서조차 그런 실수를 범하게 되는 것이 문제이다. 상대가 연세 높은 어른이라 할지라도 나의 사고 안에서 옳지 않은 주장이다 싶으면 금방 발끈해져 토라지거나 상황설명을 해대는 것이다. 때로는 배배꼬인 회오리바람으로 어느 날은 천지를 뒤덮을 폭풍으로 나를 스쳐간 인연들에게 불어댔을 생각하니 부끄러움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릇된 나의 언어들은 그렇게 여러 사람 가슴을 향해 펄럭이며 목 쉰 바람소리를 냈을 거다. 거듭 충고를 하다 지쳤을 남편이 나이 값 못하는 아내를 위해 드디어 펜을 들었다. 잘못된 언어습관을 고쳐보라며 조심스럽게 편지를 건네주었다. 때로는 침묵이나 상대의 말을 기다리는 것이 더한 아름다움을 줄 수도 있다는 내용을 곁들였다. 갑자기 지나간 내 삶이 소리만 요란했던 빈 그릇은 아니었나싶어 서글퍼졌다. 밤새도록 바람 깊은 어두움 안에서 버둥거리다가 뜬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속초바람은 시끌벅적 요란함으로만 끝나지 않고 마지막 횡포를 부렸다. 동해바다 작은 도시를 통째로 삼킬 듯이 불어대는가 싶더니 결국 엄청난 산불을 낳았다. 나무 가꾸고 풀포기를 보듬어온 인간들의 노력을 비웃는 것인지 화염 속에서도 광란의 몸짓으로 발작한다. 혀를 널름거리며 타오르는 불길이 집과 농작물을 잃은 사람들 가슴에 상처를 남기고 있었다.

공중을 날아다니는 검은 재들. 그 동안 내가 거침없이 뱉어놓은 언어부스러기들처럼 나부꼈다. 홑겹으로 슬쩍 가려두었던 나의 잡티들이 하늘을 날아다닌다.


더 험한 꼴로 태우고 아픔주기 전에 남편의 편지를 받게 되어 다행이다. 바람의 모습은 흔들거나 부수는 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차분하게 써 내려갔을 남편의 필체들이 고물거리며 피어올라 따스한 바람 되어 가슴에 와 부딪힌다. 늦은 감이 있으나 남편으로 인해 또한가지 대화의 처세술을 익히게 된 셈이다. 부단히 배우려 노력하지만 완성의 마침표가 없다. 이런 시행착오는 계속되리라.


몇 해를 더 살아야 속초의 거센 바람에 적응될 수 있을까. 어쩌면 수려한 산과 바다를 병풍처럼 끼고 볼 수 있으므로 바람쯤은 겪어내고 감내해야 하는 것이 나의 몫인 듯도 하다. 산 하나를 먹어버린 바람이 너른 바다 수평선너머로 잠시 숨었는지 오늘은 제법 평온한 기운이 곳곳에 가득하다. 더불어 내 안에 저장된 분량을 가늠할 수 없었던 언어들도 자리 잡기를 시도하고 있다.


제 몸으로 칼날세우고 창틈을 겨냥하며 밤이면 여전히 속초의 바람은 나를 찾겠지.

황사먼지 가득 움켜쥐고서.



2004년 3월 12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