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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 모자에 대한 집착


BY 박예천 2008-12-25

 

           모자에 대한 집착

 


 

 

 

모자에 대한 나의 특별한 더듬이는 관심을 넘어 집착이라 표현해야 할 정도이다.


두상이 큰 편에 속하므로 모자를 쓰면 어색하기도 하려니와 어울리지 않는다.

아무리 모양과 색상을 선별해서 골라 와도 거울 앞에 서보면 머리 위에 겨우 올라앉은 꼴이 된다. 더구나 늘 짧은 머리를 하고 다녔던 터라 꾹 눌러쓰면 더욱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마치 투병중인 사람이거나 머리에 혹을 감추려고 억지춘향으로 쓰고 있는 듯하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이 모자 깃 아래로 가지런히 내려오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모자 속에 숱을 몽땅 감추게 되니 그런 그림이 나온다. 

유난히 머릿속에서 땀이 많이 나는 체질인 것을 잘 참고 올 여름 견뎌냈더니 제법 어깨를 넘게 머리카락이 길어졌다. 벌써부터 형형색색 모자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강릉행 버스 안에서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두리번거리던 내 시야에 앙증맞은 모자가 들어온다. 사십은 족히 넘었을 여인이 자잘한 꽃무늬 모자 쓰고 창 쪽으로 고개 돌려 앉아있다.  모자 때문일까. 단아하면서도 향기 가득할 것 같은 측면모습에 가벼운 반가움마저 일기 시작했다. 긴긴 겨울 동면 속에 들어갔다가 새싹 돋는 봄이 오면 꼭 저 모양의 모자를 써 보리라. 그때쯤이면 내 머리칼이 한 뼘은 자라있을 상상 속에 빠져든다.


나와는 반대로 얼굴이 작은 남편 또한 모자 쓴 모습을 보면 어색하기 그지없다.

멀리서 보면 사람은 보이지 않고 모자만 공중으로 둥실 떠있는 형상이 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아이들은 부모를 닮지 않아 어찌나 모자가 잘 어울리는지 모른다.

모자에 한이 맺힌 여자인양 나는 계절과 옷 색상에 맞추어 틈만 나면 모자를 짰다.

여름이면 시원하고 까슬까슬한 실로 겨울 오면 따뜻하게 보이는 몽실몽실 털모자를 만들었다.

봄과 가을에도 계절 색을 닮은 모자를 뜨개질하거나 구해왔다.

우리 집에는 얼마나 많은 모자가 쌓여 있는지 모른다.

내가 못 다한 것 자식들에게서나 실컷 만족을 얻어 보자는 마음이 들어 있었나보다.

딸아이는 극성맞게 모자를 챙겨주는 나를 외면하고 거절 할 때도 있다.

정도가 심하여 어느 때는 강제로 쓰게 만드니 그럴 만도 하다.


감정의 사치가 극에 달했는지 올 가을엔 꼭 그렇게 모자를 쓰고 싶어진다.

적당한 챙이 둘러진 갈색 모자를 폼 나게 머리에 얹고 갈대숲에 서보고 싶은 마음이 불같이 일어난다. 유명 모델의 화보촬영이 아니어도 좋으리.

잠시 착각의 늪 속을 헤엄치다 나오면 뻔 한 제자리라 해도 혼자서 그렇게 있어봤으면.

옷차림도 구색을 맞추어 주면 좋겠지만 정 안되면 헐렁한 고무줄 바지 입은들 어떠랴.

어차피 가을 한쪽 베어 물고 허우적대도 내가 좋다면 그만 아닌가.

그렇게 모자는 꼭 쓰고 저녁 어스름까지 풀 섶에 앉았다 오고 싶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집착이라도 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검불 되어 훌훌 날아가 버릴 것 같아 매달리고 있다.

흔들리는 내 감상을 오래도록 붙들고 있는 소품이 ‘모자’ 인 것이 참 다행이다.

거대하거나 엄청난 것이어서 꿈도 꾸어볼 수 없고 이루지 못한다면 상심이 더 클 테니까.


아! 나는 내일 모자 사러 간다.

속초시 중앙시장에 모자 구경하러 갈사람 여기 붙어라!



2005년 1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