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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 문간방 사진관


BY 박예천 2008-12-25

 

                문간방사진관

 


 

“여보! 빨리 좀 이리와 봐. 얼른.”

목청 높여 황급히 부르는 저 소리에 불과 몇 달 전이었다면 쪼르르 달려갔을 것이다.

허나 오늘은 멀찌감치 서서 지켜보기만 했다. 이미 다음절차를 알기 때문이다.

가스 불에 찌개가 끓어 넘치든 거실에 아이가 물을 쏟아 흥건할지라도 달려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간방남자의 외침은 끝없이 계속된다.   


사실 어떤 일에 몰두해있던 것을 정지할 만큼 위급한 상황이 아니다.

벌겋게 묻은 고춧가루 양념이 범벅된 손을 어찌할 줄 몰라 싸매 쥐고 가보면 입이 떡 벌어지고 콧김이 풍풍 나온다.

컴퓨터 화면에 자기가 찍어온 사진을 작업해 놓고는 감탄을 연발하며 나도 동참하라는 것.

혀를 쯧쯧 차려다 기죽거나 삐칠까 봐 예의 상 멋있다 말해주면,

“야, 네가 아르(art 필요이상 가래 끓는 소리로 발음을 최대한 굴린다)를 알기나 해?”

자기가 이루어 놓은 예술작품의 극치를 알아줄 사람이 없을 거란다.

좋다. 난 아르인지 뒤르인지도 모르는 여편네인데 왜 자꾸 시시때때로 불러대는가 말이다.


문간방 남자의 귀가시간이 늦더라도 식사를 같이 하는 날 나는 하숙집주인이 된다.

요즘은 아예 끼니도 밖에서 해결하고 오는 날이 잦다. 차츰 여인숙아주머니가 되어버린 나는 겨우 들어와 잠만 자고 나간 그 남자의 뱀허물 벗듯 집어던진 이불만 발길로 툭툭 차본다.

그놈의 ‘아르’를 찾기 위해 날이면 날마다 바다를 쓸어 담거나 산 속을 후비고 다닌다. 

마누라한번 찍어달라며 어색하게 폼을 잡으면,

“렌즈에 넌 다 들어가지도 않는다. 살이 접힌다야!” 하며 일언지하 거절이다.


한때, 문간방은 비좁기는 하나 ‘서재’라는 간판을 걸어둔 곳이었다.

방주인이 슬슬 사진기를 집어 들기 시작하면서 벽과 공간마다 조각병풍이 알록달록 펄럭이게 되었다. 간신히 사람하나 구부려 누울 곳만 빼고는 조잡한 액자에서부터 대형사진이 갈수록 새끼치기를 하고 있다. 누군가 복채 들고 찾아와 점을 보든지 굿 한판 해달라고 할 정도이다.

새 부리로 종알거리며 쪼아대기는 했지만 가끔 나는 그 남자가 부럽다.

컴퓨터, 낚시, 등산, 사진촬영 등, 하고 싶은 것은 죄다 하며 사는 사람.

옷 한 벌 장만하는 일에도 자식 걸려 망설이고 남편생각 난다며 접고 마는 나보다 훨씬 용기 있는 남자이다.

아르(art)를 사랑하며, 먼저 에고(ego)를 찾을 줄 아는 남자이다.


어젯밤, 문간방 사진관에 특별주문 제작이 들어왔나 보다.

평소보다 방밖으로 나오는 횟수도 적고 슬쩍 들여다보니 연실 자를 긋고 오려댄다.

액자 틀을 끼워 맞추느라 쪼그려 앉아 끙끙거린다.

핑계 삼아 슈퍼에 간다며 피신해야 할 순간이다. 분명 소리쳐 ‘아르’감상 권을 부여하고 관람하기를 명령할 것이므로.

아니나 다를까.

“여보....., 장모님한테 나 같은 사위가 어디 또있겠냐 그치?” 불러대며 큰 소리 치는 것이다.

커다란 흑백사진 속에서 어머니가 내 아들의 어깨를 싸안고 웃고 계셨다.

지난 추석명절 친정에 갔을 때 할아버지 묘지 앞에서 찍은 거였다.  

낼모레 회갑기념 파티에 들고 가기 위해 준비한 모양이다.

사진 여백 옆으로 흐르는 남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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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사진을 왜 찍느냐고

외롭기 때문이라고 말해주었다

 

누군가 또 물었다

왜 사진을 찍느냐고

마흔하고 하나 둘 나이를 먹다보면

오래된 기억들이 그리워지는

때문이라고 말해주었다


가끔, 유년의 할머니를 곱씹어보는

군내나는 새로운 습관이 드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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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업인 교사보다 자칭 찍사 이기를 기뻐하는 문간방남자.

오늘도 수업 후에 중앙시장 생선 파는 할머니들을 담으러 간단다.

한편의 ‘아르’가 탄생될 때마다 문간방사진관 남자의 목소리는 열정에 들떠있다.

열 번, 백 번이고 불러주기를.

그것이 당신 삶의 큰 의미가 되는 것이라면 앞으로도, 계속, 연실..... 들락날락 할 것임을

나 여인숙주인 아주머니는 만인 앞에서 공포함! 도장 꽝!

 


 

2004년 11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