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야! 새야!
친정에서 늦잠을 자던 내 귓가에 불규칙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악을 쓰며 싸우는 것 같았고 누구를 부르는 소리로도 여겨졌다. 쇠붙이 탕탕거리며 박자 맞춘 두드림 사이사이로 들려오는 울부짖음은 넙죽이네 집 앞에 심어 놓은 조 밭에 새떼를 쫓는 소리라고 했다.
넙죽엄마는 하루의 시작을 마을전체에 쇳소리 쏟아내며 울려대고 있었다.
반신불수 된 남편의 수발과 어린 손자 키우는 고달픔을 새 쫓는 구실로 한 풀이 하고 있는 듯 했다.
“요즘도 새가 있어요?”
아득한 시절의 정겨움을 동반해주는 그 소리가 오히려 반가워 한마디 여쭙는 나에게 어머니가 대답하신다.
“웬걸. 까마귀 까치도 볼 수 없더라. 비오는 날이면 전깃줄에 가득하게 앉아서 조잘거리던 제비 떼도 없어. 봄이 되어도 처마 밑에 집을 지으러 오지 않는다.”
어머니의 말씀은 허전하게 메아리 되어 친정 뜰 안을 맴돌았다.
농사일을 제대로 돕지 못하는 나였지만 곡식이 매달리기 시작하면 논으로 갔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부터 들판에 익어 가는 황금물결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야했다. 논둑 위에 그늘 키워진 나무가 없을 때는 새 막이라도 엉성하게나마 지어놓아야 한다. 장시간 새를 쫓으며 목소리를 내뱉으려면 뜨거운 태양열기 피하고 물로 목도 축여야한다.
원두막 형태로 지붕을 세우고 땅에 돗자리를 깔면 근사한 새 막이 된다. 동네에서 단연 인기 좋았던 인원이네 새 막으로 자주 놀러 갔었다. 바닥에 쪽마루 닮은 나무판자를 매끈하게 만들어놓아 마루처럼 깨끗했다. 도시락까지 싸서 밀린 방학숙제를 한다는 명목으로 따라간 적이 있다. 새 쫓는 일은 뒷전이고 야영 온 아이들 마냥 들떠 놀던 기억이 난다.
그때쯤이면 동네 어느 논이나 한 가지 풍경만 펼쳐진다. 알차게 익은 낟알들을 참새 떼로부터 지키려는 논 주인들의 안간힘들이 각양각색이다.
드넓은 알곡들이 그려놓은 누런빛 바다. 간혹 손뼉을 치거나 함성을 질러 그곳이 물살 출렁이는 ‘바다’가 아님을 일깨워주는 것이 있다면 세로로 서서 새를 쫓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낡은 헌옷 막대 꾸며 허수아비 곳곳에 세워두지만 간 큰 참새들은 약올리듯 그 위에 나란히 앉아 몸부림치는 사람구경을 하고 있다. 허수아비가 새가슴 덜컹거리게 하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알자 사람들은 시행착오 겹친 연구 끝에 알록달록 은박비닐 끈을 얼기설기 벼이삭 위로 매어두기도 했다. 바람이 흔들고 갈 때마다 빛이 반사되어 새떼들에게 공포심을 일으켜주기라도 바라는 마음이었다. 논 중간 중간에 찌그러진 깡통 속에 돌멩이 집어넣고 매달아 끈을 새 막까지 연결하고는 잡아당기기만 하면 뗑그렁거리며 곳곳에서 소리가 난다.
단련된 새들은 이제 인간들을 기만하는 방법까지 터득했다. 쉽게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이 논 저 논으로 동창회 모임 몇 차를 치르는지 옮겨 다니기만 한다.
할아버지는 짚을 잘게 꼬고 지게 멜빵처럼 엮으셔서 탈기를 만드셨다. 대충 휘두르다 매대기치면 소리가 나는 줄 알았던 내가 탈기를 잡고 땅바닥에 던져도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보란 듯이 시범을 보이셨다. 공중회전 한참 하다가 갑자기 반동을 이용해 휙 하고 잡아당기시니 총소리처럼 굉음이 들린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새떼들은 우르르 다른 논으로 이사를 간다. 해질녘까지 새떼들과의 전쟁은 마을전체의 모습이었다. 탈기소리만으로도 직성이 풀리지 않았던지 마을 어떤 어른은 공기총을 들고 나와 탕탕 쏘아대신다.
새를 쫓으며 안간힘을 쓰기는 했지만 어쩌면 녀석들과 함께 나누어 먹고살았는지 모른다. 말캉하게 익은 감을 따러 나무에 오르는 아이들을 향해 “까치가 먹을 것은 남겨 두거라” 하시던 나무주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봄과 여름내 땀 흘려 맺은 알곡들을 새들이 물어갈까 쫓아대는 일을 해마다 되풀이하면서도 정작 먹을 것은 남겨두는 정이 있던 시절이었다.
눈만 뜨면 어디서고 볼 수 있었던 그 많던 새들은 모두 어디로 날아간 것일까.
멀리 날면서 깃털 곳곳에 어릴 적 아름다운 정서까지 숨기고 가버렸다. 맘 허전해진 나는 논둑에 앉아 고함쳐 새떼를 부르고만 싶어진다. 그러면 무더기로 날아들 새 무리들이 흩어졌던 동심마저 잔뜩 끌고 올 것만 같아진다.
유년의 들녘이 그리운 내 마음속에는 언제부터인가 파랑새 한 마리 날기 시작했다.
흔히 길조라고들 말하는 새가 퍼덕거리며 먹이를 찾는다. 나는 일부러 라도 날개 짓 하며 날아든 새를 모른 체 하고 있다. 아직 열매 맺지 못한 내게도 먹을 것이 있는지 두리번거리는 모양새를 지켜만 보고 있다. 고향 어느 논바닥을 헤매다가 갈 곳 없어 하필 내게 날아들었을까. 설익은 열매밖에 맺지 못한 내 심성에 부디 알곡 가득하여지는 날이 오리라 믿으며 날마다 새를 키우고 있다.
때로 삶에 어려움이 닥쳐도 안으로 승화시켜 낟알 영글게 한다면 추수가 있을 테고 파랑새 먹이도 남겨지겠지.
들판에 곡식 익어도 날아드는 새 없고 속절없이 변해 가는 세상이라며 한숨짓기보다는 사람들 마음속 새 한 마리씩 키우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 이름이 희망을 물어다주는 ‘파랑새’ 라면 더할 나위 없으리.
단 한번만이라도 허수아비와 탈기 만들던 시절로 돌아가 잔뜩 모여든 새떼를 향해 소리쳐보고 싶다.
마릿골의 아침을 박살내던 넙죽엄마의 그 목소리로.
2003년 친정나들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