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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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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한 편 - 뜨개질


BY 박예천 2008-12-25

 

 뜨개질

 

 

 


허공을 내려 긋는 세로줄 물무늬

찬비 맞은 나목이 한기에 떨고

성에 낀 거리의 사람들도 분주히 겨울을 깁는다


실타래 뭉쳐진 삶을 풀어내는 밤

어느 날은 긴 한숨이었다가,

어떤 날엔 벅찬 감동이었을 조각들이 모여

아들의 겨울옷이 된다


다시, 구십 여덟 코를 헤아려

대바늘에 걸어두니 딸의 옷

열병 앓던 밤샘이 고무단에 접히고

젖꼭지 여물어 간지럽다는 미소가 겉뜨기로 새겨진다


두 아이 옷 깃 따라

내 추억의 사슬코는 넉넉히 길어진다


또 다시, 일백 이십 코 남편의 이름을 부른다

지친어깨 감싸줄 수 있도록

바늘과 실로 만나 황혼까지 엮어가도록

오랜 세월 짜 놓은 그것이 사랑이었노라

말할 수 있도록



초겨울 열리는 길섶에서,

그렇게 밤 깊도록

내 가족을 뜨개질 하고 있다. 


2006년 12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