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박 남편과 컴맹 아내
컴퓨터화면 맨 앞줄 위에서 커서가 깜빡이고 있는 게 심장 소리와 한 박자로 쿵쾅거렸던 기억이 있다.
뭔가를 적을 때 종이묶음과 칼로 깎은 연필 한 자루면 족했었다. 고쳐야 할 부분은 뭉툭한 지우개로 쓱쓱 지우고 다시 쓰면 그만이다. 원시적으로 보였는지 남편이 컴퓨터를 이용해 볼 것을 권했다. 예전에 타자를 쳐본 일이 있어 자판의 위치는 대충 알고 있다.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글을 써보려니 영 어색하다. 마우스를 잡은 손에 힘이 빠지고 덜덜 떨렸다. 어느 부분이든 선택을 하려고 클릭을 했다가는 컴퓨터작동이 멈출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마음대로 사용해보라며 어떻게 망치든 다 고쳐놓을 자신이 있다고 했다.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후환이 두려웠다. 너그러운 척 하는 소리이지 막상 컴퓨터가 엉망으로 되었다면 공포영화 한편 찍게 되겠지.
아직도 모니터 앞에 앉으면 스승 앞에서 중대한 시험을 치르는 소심한 학생이 된다. 시간이 흐르고 자주 사용하다보면 컴퓨터와도 자연스럽게 친숙해지겠지.
남편은 군대시절부터 독학으로 컴퓨터를 익혔노라고 평소에 노래 가락처럼 읊어댔다. 서재에 절반정도가 컴퓨터 관련 책이고 보니 그 말에 절대적으로 수긍이 간다.
퇴근을 하여 집에 있는 남편을 가끔 밖으로 불러내는 반갑지 않은 전화가 있다. 같은 직장 선배이거나 동료가 컴퓨터를 고쳐달라고 부탁을 해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며칠 전 미리 선약이 되어있어 “나 이번 주말에는 선배 집에 컴퓨터 봐주러 간다”라고 해서 나들이를 기대하는 가족들의 희망을 간단히 무시해 버린다.
어디 그것뿐인가. 컴퓨터 관련 책을 보다가 풀리지 않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며칠이고 해결이 될 때까지 밤을 새운다. 동굴 속에서 득도하는 사이비 교주가 된 남편의 모습은 과히 기막힐 정도이다. 푸르스름하던 면도자국의 턱은 구두 솔 모양의 수염 싹이 돋아나고 양치질도 하지 않는다. 밥 먹는 일조차 잊고 컴퓨터 앞에만 매달려 있다. 머리는 까치집을 짓고 얼굴은 푸석푸석하여 정말 깡통하나만 들려서 거리로 내보내면 수많은 사람들의 동정을 한 몸에 받을 정도이다. 어쩌다 잠깐 가족들 앞에 등장하는데 배설의 욕구를 참지 못하여 화장실 갈 때이다. 아이들이 거실에서 법석을 떨며 난리폭탄이 떨어진다 해도 미동을 하지 않는다.
무심코 아빠를 찾으며 철없는 아들이 그 방으로 들어가는 날. 모기소리조차 없던 곳에서 불청객의 침입을 내치는 소리가 들린다. “이놈! 나가라 어서!”
남편이 컴퓨터와 씨름하는 동안 나에겐 신경 써야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아이들이 방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 상황에 이제 많이 적응이 되었는지 아니면 엄마의 날카로운 경계를 두려워하는 것인지 아이들은 남편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자동으로 멀리한다.
공사중인 도로에 표지판을 보면, ‘작업반경내 접근금지’ 라고 적혀 있는데 우리 남편이 컴퓨터 할 때는 ‘작업 중 핏줄도 외면’ 이라고 크게 써 붙이고 싶은 게 아내인 내 맘이다.
어느 해 겨울이었다. 그날도 여지없이 밤샘을 했는지 아침에 눈을 떠보니 모니터와 박치기 내기를 하듯 얼어 붙어있다. 늘 하던 식으로 주방에서 밥을 지어 아이들과 셋이 둘러앉아 먹고 있었다. 물론 딸아이를 시켜 몇 번이고 식탁 앞으로 모셔오려는 시도를 해봤지만 대답이 건성이다. 솔직히 추레한 모습과 마주 앉아 밥을 먹는 것보다 나중에 먹어 주는 게 고맙긴 하다.
한참을 아이들 밥숟가락 위에 반찬을 얹어 먹이고 있는데 갑자기 짐승의 포효하는 소리가 거실을 울리는 것이다. “야호, 드디어 끝냈다!” 머리 싸매고 며칠 밤 끙끙거리던 컴퓨터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외침이었다. 순간 우스꽝스러웠던 광경은 밥을 먹던 세 사람의 무표정들이었다. 컴퓨터지식이 어느 정도 있어야 얼싸안고 춤이라도 출 텐데 혼자 기뻐 어쩔 줄 모르는 남편의 모습이 조금은 측은해 보이기까지 했다.
인터넷에서 메일이나 주고받는 수준의 내가 가끔 남편을 애타게 호출 할 때가 있다. 무슨 설명의 창이 뜨고 하는데 도저히 용어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들로만 나열되어 있으니 남편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아! 누가 그랬던가. 운전연수는 절대로 남편에게 받지 말라고. 컴퓨터 역시 남편이라는 존재에게 배워서는 안 된다고 나는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다. 옆으로 온 남편의 지시를 따라 클릭을 하고 설명을 듣는데 다시 시도해보라는 말만 하면 앞이 캄캄해지는 것이다. 그것도 모르느냐, 도대체 무엇을 배운 것이냐 하더니 어느새 나는 맹한 여편네가 되어있었다. 부부사이에 쓸데없는 자존심을 버리고 배움의 자세로 임해야 하건만 자리를 박차고 나가 펑펑 울어 버렸다. 좀 다정하고 부드럽게 가르쳐주면 안 되느냐는 내 말에 설움을 당하며 배워야 내 것이 된다고 투박하게 답한다. 그날이후 남편에게 컴퓨터를 배우는 것을 아주 포기해버려 지금의 컴맹아내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흐렸던 태풍 틈새로 오랜만에 반짝 떠오른 햇볕이 반갑다. 바람이라도 쐬러 가려나 살짝 해보는 기대가 또 그놈의 컴퓨터 때문에 묵사발이 되고 만다. 퇴근을 하고 온 남편은 옷도 벗지 않고 의자에 피곤한 몸을 접고 있다. 동료의 집에 컴퓨터 프로그램을 봐주어야 한다며 다시 집을 나선다.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그리 몸 혹사하면서 해요? 동네 컴퓨터는 혼자서 다 관리하고 있네. 내가 언제고 저 방에 컴퓨터 고물상에 팔아먹을 거야.”
극성맞은 여편네 특유의 발성으로 전에 같았으면 집을 나서는 남편의 뒤 꼭지에 대고 이렇게 중얼거렸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조용히 남편을 내보내기로 한다. 이런 것들은 컴맹 아내가 마땅히 감내 해야 할 본분임을 자각하자.
내장이 드러나는 컴퓨터 본체 앞에 남편은 또 다른 모습이다.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처럼 신중한 표정으로 임하는 것이 때로 경외감마저 든다. 감히 내가 따라갈 수 없는 어떤 신비스러움이 곁을 맴돌기도 한다. 고물상처럼 이것저것 주워와 부수고 맞추며 새로운 컴퓨터를 탄생시키는 모든 것들이 컴맹인 나에게는 그저 위대한 예술가이며 추앙하고 싶을 정도이다.
컴퓨터에 대해 백치라고 하여 아내를 하대하거나 무시한 적은 없다. 저질러 놓은 실수를 묵묵히 고쳐주며 얘기해도 모르는 용어들이니까 그저 허허 웃는다.
컴퓨터 박사 남편을 모시고 살려면 어느 정도의 고충은 참을 준비가 되어야 한다. 정의의 사나이가 되어 대가 없이 이웃들의 컴퓨터를 선뜻 수리해주는 남편을 내심 존경한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등과 허리에 통증이 남아있어 모니터 앞에 앉아있기 힘들다. 진통소염제를 발라달라며 손이 닿지 않는 부분을 내밀자 엎드리게 하고는 정성껏 마사지를 해준다. 돌팔이 아니냐고 우스운 대꾸를 하다가 염치 좋게 엎드려 남편의 손길로 치료받는다. 컴퓨터 박사 남편은 정말 못하는 게 없군.
어떤 이의 호출을 받고 불쑥 또 컴퓨터를 고쳐주러 간다 해도 기쁘게 배웅해줄 준비가 되어있는 순한 컴맹아내가 되어야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남편은 자기 방에서 컴퓨터애인을 정성껏 애무하고 있다. 컴맹아내도 컴퓨터 한 대 제 방에서 끌어안고 눈길 주는 중이다. 우리부부는 밤이면 밤마다 이렇게 자신만의 애인과 밀어를 속삭인다.
자판 두드리는 부부의 난타소리가 깊은 가을밤을 잘게 깍둑썰기하고 있다.
2003년 겨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