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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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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있거라!


BY 박예천 2008-12-23

 

-겨울설악산 나들이-



 “넌 그런 곳에 사니 참 좋겠다.”

 “산과 바다를 곁에서 매일 볼 수 있어 행복하겠어요.”

가끔 소식을 주고받는 이들에게서 흔히 듣는 말이다. 설악산 아래 살고 있으니 경치 좋은 곳을 자주 찾는 줄 알고 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가까이 있으면 오히려 소홀해지거나 귀하게 여기지 못하는 법.

여고 때 수학여행 차 설악산을 찾은 이후 가본 적이 없다. 나의 이런 말을 들으면 속초에 살고 있으면서 어찌 그럴 수 있겠느냐 하며 웃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갈 기회와 엄두를 내지 못했노라 한다면 답이 될까. 핑계와 변명으로 들린다 해도 나는 적당한 말을 내놓지 못하겠다. 시간에 쫓기는 일로 허덕인 것도 아니고 나라의 중대사를 책임진 몸도 아니건만 왜 그렇게 여유를 찾지 못하는 삶이었는지.


새해로 접어들었고 일월도 반 토막을 살았다.

올 겨울엔 내리는 눈발 한번 만져보지 못하겠다싶게 하늘이 말라있었다. 그러던 것이 나풀나풀 흰나비 떼로 사방을 날아다니며 내려앉는다.

첫눈이다. 굳이 이 나이에 사뭇 설레게 될 일도 손톱 끝에 붉은 봉숭아 꽃 물이 남아있는 기대의 첫사랑도 아득했지만 가슴이 울렁거렸다. 스멀스멀 야릇한 기운이 솟구치며 눈발은 내 심장위로 박히고 있었다.

이럴 땐 왜 하필 기억 속에 저장된 전화번호조차 가물가물 한 걸까. 설사 전화 한들 무슨 말부터 꺼낼 것인가. 겨우 옥양목 홑이불 두께로 쌓였던 눈은 다음날 질척하게 녹아있었다. 채 아쉬움을 느낄만한 틈도 주지 않았다.


남편이 설악산 행을 제안한 것은 골목길에 몇 무더기 남아있던 눈 더미가 거의 사라질 무렵이었다. 직장동료가족 한 팀과 우리 네 식구가 동반한 겨울 산행이 계획되었다. 거창하게 장비를 구비해서 빙벽을 오르는 따위의 등산이 아니었기에 그냥 나들이라고 해야 맞다.

드디어 설악산 입구 신흥사에 도착하던 날. 권금성으로 향하는 케이블카 매표소에서 기다리는데 자꾸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쳐댄다. 곁에 한 무리의 사람들 곁으로 쿵쾅대는 소리가 전해질 듯 하였다.

뭘까. 이 어색한 이질감은.

문명세계와 동떨어진 무인도에서 방금 건져내진 사람의 모양새로 내심 당황하고 있었다.


케이블카 안에 들어서자 미세한 엔진 음을 내며 사람들 매달린 금속상자가 서서히 움직인다. 겨울 흰 산 위에 굵은 전선으로 길게 가로획을 긋는다. 자꾸 눈물이 나오려 한다. 천지에 가득 찬 백색이 햇볕과 눈 맞춤을 하는 통에 눈이 부셔 눈물 난다고 말할 참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왜 우느냐고 묻는 이가 없다. 슬쩍 소매 끝으로 눈 밑을 찍어대고 코를 크게 훌쩍였다.

사실은 설악산이 웅장하게 다가올수록 내 초라함이 눈밭에 투영되어 뼛속까지 엑스레이로 찍혀버릴까 서글퍼진 거다. 어둡고 습한 어린 시절을 보낸 적도 없고 절망과 회의에 가득 찬 현실을 사는 것도 아니건만 눈부시게 밝음 앞으로 다가서는 일이 두렵다.


안내방송을 하는 여자가 권금성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을 해준다.

둘레 약 3,500m. 설악산성 ․옹금산성(擁金山城) ․토토성(土土城)이라고도 하며, 성벽은 거의 허물어져 터만 남아 있다. 설악산 케이블카가 다니는 앞쪽, 깎아지른 듯한 석산 위에 있으며, 해발 800m의 성 정상에는 80칸에 이르는 반석과, 실료대(失了臺) ․방령대(放鈴臺) 등이 있다. 신라 때 권 ․김 두 장군이 난을 피하기 위해 쌓았다는 설이 있고, 고려시대에는 몽골군이 침입하자 인근 마을 주민들이 이곳에 성을 쌓고 피난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적어도 고려 말 이전부터 존속한 산성임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저 여자는 하루에 몇 번이나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마이크에 쏟아 붓게 될까하는 엉뚱한 궁금증이 생기려는 순간 도착했는지 자동문이 열린다.


겨울이라도 주말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권금성으로 향하는 길은 이미 눈길이 아니다. 아침부터 수많은 발자국 세례를 당한 터라 반질거리며 빙판이 되어있었다. 오르는 언덕길 난간으로 쇠말뚝과 사슬이 연결되어 있지만 몸을 지탱하며 걷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름 뙤약볕아래 죽은 벌레몸통에 엉겨 붙어 제 집으로 물고 옮기는 개미떼들 같아 보였다. 개미걸음이라도 떼어놓을 수 있다면 좋겠는데, 어찌된 것이 연거푸 나만 엉덩방아를 찧는다. 오고가는 행렬이 있으니 목 놓아 울 수도 없는 일이고 어색한 웃음기를 내보이며 안간힘을 썼다.

나를 뒤로한 채 남편과 아이들은 이미 꼭대기로 오르고 있었다. 다시 되돌아가기에는 산허리에 체중으로 절구질을 해댄 노력이 억울하다. 안되겠다 싶어 사람들 밟지 않은 눈 속으로 들어섰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 더미를 헤치며 가야했지만 오히려 한결 편하다. 이렇게 많은 눈을 얼마 만에 보는 것인지 모르겠다. 오고가는 사람들마다 어린아이 마냥 함성을 지르기도 하고 아찔하게 발을 헛디뎌 울상을 짓기도 한다.

다정한 연인을 보았다. 아니 신혼부부일까. 여자는 한참이나 위를 오르고 있는데 남자가 아래쪽에서 연실 비명이다. 미끄러지기만 하며 둘 사이가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꼭대기부근에서 여자가 남자를 향해 힘차게 외치는 말에 그만 박장대소를 하고 말았다.

“자기야!, 산에 눈 많은데 왜 그래. 눈 붙잡고 올라오면 되지.”


제 코스를 따라 걷지 못했지만 가까스로 목적지에 도착했다. 딸아이는 스키복을 입혔더니  좋아라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즉석 몸 썰매를 탄다. 두리번거리며 재빠른 내 시야는 설악산의 구석구석을 더듬었다.

이것이 바로 눈 쌓인 설악산의 본명이었구나. 형언키 어려운 감상으로 쩔쩔매는 나를 향해 거대한 설악산의 ‘차라리 침묵하라’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가지마다 공평한 두께의 눈꽃을 매달고 마치 봄날 과수원 뜰에 뿌려지던 꽃가루가 되어 흩날린다. 부는 바람결에 백색으로 갈라지는 그 부스러기들은 설악산이 겨우내 앓았던 몸살비듬들일까. 기지개를 켜듯 두 팔을 하늘로 향하고 얼굴과 몸으로 산 가루를 받았다. 눈물겹게 아름답다는 말은 지금 여기서 하라고 누군가 만들어 놓은 것이 분명하다.

봄부터 가을까지 초록 싹 한번 뽑아내지 못했을 죽은 나무에도 흰 꽃이 만발하다. 어느 것이 주검이고 산몸인지 알아낼 재간이 없을 정도로 눈부시게 화려한 눈꽃으로 핀 나무들이다.

차디찬 겨울 그렇게 단 한번만이라도 꽃을 피우라.


집으로 돌아오는 승용차 안.

아이들의 재잘거림만이 가득하다. 점심식사 때가 훨씬 넘어선 시간이었지만 배고픔도 무리의 이야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설악산 한쪽 나무 틈에 정신을 빼놓고 몸만 내려온 듯했다.

독백처럼 속으로 중얼거렸다.

한 걸음도 떠나지 말고 있거라. 언제고 네 품에 다시 안겨 제대로 아름답게 울 수 있도록.

산아! 게 있거라.   



2004년 1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