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아줌마
여름 되니 원피스 병이 슬슬 도진다.
빼어난 몸매도 아니건만 왜 유독 원피스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아래위로 구분되어진 옷보다는 한 조각 천을 걸치고 다니는 것이 편하다. 사실 몇 등신쯤으로 구분할 만큼 몸길이가 길지도 않다. 지나치게 옷치레를 즐기는 편은 더더욱 아니다. 선이 고운 자태로 원피스자락을 나풀거리기라도 한다면야 봐줄만 하겠다. 허나 내 짧은 체구에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시작을 알 수 없지만, 자가진단 하건대 나의 원피스집착은 꽤나 중증이다.
불쑥 사놓고 몸에 둘러보지도 못한 원피스 몇 벌이 옷장 안에서 습한 잠을 자고 있다. 선뜻 입고 나들이 할 용기 없음에 나날이 불어나는 체중도 한 몫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절마다 원피스를 사 모은다.
며칠 내내 인터넷을 뒤졌다. 알록달록 원피스들이 현란하게 모니터위에서 펄럭인다. 클릭만 하면 빈대떡 뒤집듯 옷의 구석구석이 소개된다. 세상 참으로 좋아졌구나. 다리품을 팔지 않아도 원하는 모양새와 크기의 옷을 주문할 수 있으니.
직접 입어볼 수없고 옷감의 질을 살피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으나, 맘에 안 들면 환불 가능하다지 않는가.
여성복 코너에서 원피스부분을 샅샅이 훑었다. 이미 눈요기만으로도 원피스집착증은 서서히 치료되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 눈의 만족으로만 끝날 것인가. 기필코 하나쯤 내 손안에 거두고 말리라.
착각의 늪에 빠져들수록 눈이 흐려진다. 여자의 나이는 세월이 흘러도 더하기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나의 정신 연령은, 몸에 착 달라붙는 옷을 거침없이 소화해내던 그 이십대 초반에서 멈춤이다. 쳐진 뱃살이며 굵어져가는 팔이 보이지 않는다. 컴퓨터 모니터를 가득채운 원피스들의 임자가 모두 나인 듯하다. 허황된 망상이나마 잠시 즐거웠다.
손가락이 아프도록 마우스를 눌러댔건만 내 몸에 두를 원피스가 없다. 뭔 놈의 옷 크기가 66에서 끝이란 말인가.
숙녀복 크기는 대개 55이니, 66이니 쌍둥이 숫자로 표시된다. 전문가가 아니니 그 수치가 어떤 근거로 계산 되었는지는 모른다. 옷의 숫자가 커질수록 몸의 크기를 예상하게 된다.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처녀시절 넉넉하게 입던 것이 55크기다. 당시 77을 입는 동료나 벗들을 향해 빈정거렸던 내 자만이 떠오른다.
아! 내 몸 불어날 것을 어찌 예상이나 했으리.
아파트 평수라면 큰 숫자일수록 어깨에 힘주고 목을 세우기라도 하지, 이제 어디 누구에게 내가 입는 옷의 크기를 발설할 것인가. 두문불출 집안에만 숨어 지내야 할 형국에 이르렀다.
작년여름이었던가?
대충 어림짐작으로 66이면 넉넉하리라싶어 옷을 주문했다. 간신히 살을 밀쳐 넣었으나 거의 에어로빅 옷 수준이었다. 탱탱하게 물결치는 나의 살결들이여.
원피스를 교환신청하며 몇 날이나 우울했었다. 왜 나는 나이와 정비례하게 살을 늘리는데 역사적 사명을 띤 것일까.
드디어 맘에 드는 원피스 디자인과 색상을 찾았다.
이번에도 크기가 문제였다. 또 한번의 좌절을 맛볼 수는 없다. 땀이 많은 여름이라는 구실을 삼아 아예 88크기를 주문했다.
그 옛날, 나의 비난대상에서도 한 치수나 벗어난 88아줌마가 될 줄이야. 88서울올림픽 홍보요원도 아니었건만 나는 당당히 88을 외쳐대고 있었다.
진초록 색상에 하얀 줄무늬 허리선이 돋보이는 원피스다.
택배로 도착하려면 적어도 이삼일이 걸릴 텐데, 조급증이 진득하게 기다리지를 못한다.
전화확인을 해보고 괜히 좌불안석이다.
어김없이 오늘 오후 초인종을 누르며 달려온 내 88원피스.
하늘하늘 여름 신록 빛을 닮아 몸에 두르면 금방이라도 초록물기가 오를듯하다.
거울 앞에 덩치 큰 여자의 입이 만족스런 한일자(一)를 긋는다. 중간에 흰색 허리끈이 없었다면 영락없는 임신복이다. 0이라는 숫자가 허리를 졸라매고 8이 되었다더니 그 꼴이다.
퇴색하여 사라져간 추억의 55는 기억하지 않으리라.
88을 당당하게 걸치고, 팔팔하게 살아 힘내는 아줌마로 제 빛을 내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88원피스 입고 첫 나들이로 어딜 갈까?
2005년 6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