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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이불


BY 박예천 2008-12-22

 

                     조각이불

 

 


덮고 자는 홑이불의 나이가 스물둘이나 된 것을 이제야 헤아려본다. 천 조각 여러 폭을 이어 붙여 만든 조각이불이다. 해마다 여름만 되면 제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코끝에 대니 오래 묵은 세월의 냄새가 까슬까슬 일어난 보풀에서도 느껴진다. 무더운 여름밤, 잠들기 전에 외면당했다가 새벽한기 밀려오면 무릎위로 슬며시 끌어당겨지는 또 다른 내 피부 한 겹이다.  

 

여고시절 과제물 제출날짜에 맞추어 급하게 완성했던 것이다. 만족스런 점수를 받았기에 필요 없다고 여겨 아무렇게나 던져놓았었다. 손때 묻을까, 구김 생길까 고이고이 비닐에 싸여 친정집 장롱 속에서 십여 년 넘게 숨어있었다. 손녀딸 솜씨 귀하게 여긴 할머니가 애지중지 보관하셨다.

나누어진 천 한 폭마다 꽃이며 새와 나비를 수놓았다. 형형색색 기법을 달리하여 꼬아 내리고 박음질한 모양새가 기특하다 나를 다독이셨다. 시집갈 때 가져가라는 말씀을 웃으며 흘려들었는데, 혼수이불들 틈에 끼어 새색시를 따라왔다.

“네 수놓은 솜씨를 보면, 시어른들 너를 막 자라지 않고 잘 배웠다 할 것이여.”

할머니에게 있어 한 겹 조각이불의 무게는 나의 가정교육 증명서였다. 삼십 여년 잘 배운 음전한 여인임을 설명 없이 보여주는 표상 같은 것이었다.

 

논밭에 품앗이일 나가는 어머니대신, 여인이 지녀야 할 됨됨이를 집안에서 가르쳐준 분이 할머니다. 자분자분 말대꾸 쏘아대며 못된 송아지마냥 날뛰던 손녀를 향해, 처음엔 놀이삼아 서서히 접근하셨다. 직접 음식의 간을 보게 하고 상차림에도 예절이 있음을 알려주셨다.

풀 먹인 이불호청 다듬이질이며 맞잡고 주름 펴는 상대로 기꺼이 나를 택해주셨다. 대청마루에 빳빳해진 광목호청을 펼쳐놓고 명주실로 한 땀씩 시침질 하면서도 설명을 빠뜨리지 않으신다.

“홈질로 솜이 돌아 댕기지 않게 꿰매라, 실 땀이 가려지게 잘 공글러야지. 가장자리 올 풀림 막으려면 휘갑치기로 하는 거다.”

바느질법의 이름들이 다양한 것에 흥미로움이 더해갔다.

한복을 간수하는 것에도 그랬다. 저고리부분들 명칭이며, 수눅을 살펴 바른 짝을 찾는 버선과 두루마기 개키는 방법까지 차근히 알려주셨다. 할머니는 영락없이 양반 댁 아씨마님이었다. 서른 나이 다 되도록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말은 ‘여자는 그래야 하는 겨!’였다.

그래야 마땅한 여자가 되기 위해 나는 할머니의 학습법을 착실하게 따르며 자랐다.

 산 넘고 물 건너 낯선 강원도 땅으로 시집와 산지 십여 년. 하나둘씩 곁들이 낡아가고 있다. 고장 난 가전제품을 바꾸고 오래된 가구는 손질했다. 혼수이불도 너덜거리며 솜이 삐져나오기 시작한다. 버릴 것을 고르다보니 손에 잡힌 것이 바로 조각이불이다. 최신 기계자수 침대보와 누비이불들 틈에서 안간힘 쓰며 버티느라 솔기가 해지고 실밥도 풀려나기 시작했다.

낡은 조각이불위에 안쓰러운 할머니가 겹친다. 혼기 과년하기 전에 솜씨맵시 잘 갖추어야 한다며 다듬어준 손녀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지병인 치매로 되묻기만 반복하는 지금의 할머니가 나를 보자마자 하시는 첫말. 뉘시여?

당신 닮아서 손끝이 여물다는 손녀딸이 먼 길 찾아와 거친 손을 맞잡는데도 눈웃음이 흐리다. 마치 처음 보는 동네 아낙을 대하듯 한참이나 뚫어져라 쳐다보신다. 산산이 흩어져버린 할머니의 기억조각들은 다시 이어 붙을 생각을 않는다.

 

새롭게 열리는 아침이 되면 명료한 의식이기를 바라지만, 오래 묵은 이름의 조각마다 낯선 할머니가 있다. 어느 날은 예닐곱 살 철없는 코흘리개 계집아이였다가, 까무룩 낮잠에서 일어나는 순간 심술궂은 뺑덕어멈이 되기도 한다. 기본적인 본능에의 욕구만 남아, 식사량 조절이 어렵고 배변처리 또한 어머니 손을 빌려야 한다.

 

친정 안방에 홀로 누운 할머니를 뵙고 오는 날이면, 밤마다 홈질, 시침질, 공그르기의 바느질법 동원하여 기억조각 눈물로 잇는 꿈을 꾼다.

할머니께 따져 물을 말들이 속내에 그득하건만, 나를 외면하고 먼 산 바라보기만 하신다.

혼수로 지니고 온 조각이불 하나로는 표시할 인품이 턱없이 부족하여 인내의 헝겊을 다시모아 수놓고 있노라 전하고 싶은데 귀를 닫으셨다.

양단공단 시집살이 비단 천 조각과, 친정 대청마루에서 건너온 허름한 광목천을 어찌 이어 붙이면 고울지도 귀띔해줄 할머니가 나는 그립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스물두 살 꽉 찬 나이 된 조각이불은 실밥이 풀리고 솔기가 닳았다. 쪽머리 잘라내고 몸의 양분 다 빠져나간 할머니를 닮아간다.

또 하루가 접히는 여름밤. 검버섯 할머니 손등을 매만지듯 이불을 쓸어내려본다.

갈수록 희미해지는 내 일상의 조각들도 꿈에서나마 잇고 싶어 잠 속에 얼굴을 묻는다.


(2005년 8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