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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뽕이 시리즈 120 - 비행기타고 놀러가요!


BY 박예천 2013-08-26

 

       비행기타고 놀러가요!

 

 

 

이번 여름은 정말 살인적인 더위였습니다.

유뽕이는 방학 중에도 교육청에서 실시하는‘희망누리학교’를 다니느라 바빴지요. 정해진 방학기간 중 실제로 쉬는 날은 일주일 정도였습니다.

마침 외할머니 칠순기념으로 제주도여행 일정이 잡혀 유뽕이와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아빠와 누나는 개학일이 달라서 동행하지 못하고 우리 집 대표로 유뽕이와 엄마가 갑니다.

외가에서 출발한다기에 엄마는 유뽕이녀석만 태우고 갔지요.

 

여행당일.

어른들보다 유뽕이가 제일 신이 난 표정입니다.

입에서 콧노래와 휘파람소리가 쉴 새 없이 나오더군요. 그저 집밖으로 놀러 가는 것만 좋아하는 녀석입니다.

유뽕이 어릴 적에도 비행기는 몇 번 탄 기억이 있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요.

웬걸요. 타자마자 난리가 났습니다. 무서워서 울거나 소리치는 게 아니라 기분이 상승되는 바람에 감탄사가 연발 나오는 겁니다.

국내선이라서 작은 탓에 옆 사람들도 가까이 있는데, 유뽕이 짜식 목소리가 너무 큽니다.

이륙하는 순간부터 오버연기가 시작되더군요.

“어....! 어.....! 비행기 출발!”

마치 기내 승무원 대표라도 된 듯한 몸동작으로 흔들거리며 크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힐끗 쳐다보기도 하고 그냥 지나치기도 합니다.

주위시선에 오래 단련된 엄마라서 그쯤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아들 녀석의 모습이 마냥 우습기만 했지요.

일부러 바깥경치를 감상하라고 창 측에 태웠습니다. 그게 더 화근이었을까요? 기류의 영향을 받아 살짝이라도 비행기가 기울기라도 하면, 미리 유뽕이의 안내방송이 울립니다.

“우와~! 비행기가 왜이래? 엄마! 괜찮아! 괜찮을 거예요!”

엄마는 집게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작게 말할 것을 부탁하지만, 그 순간뿐입니다.

곧 다시 이어지는 유뽕군의 굵직한 음성.

그날따라 왜 그리도 비행기는 자주 출렁거리는지요. 아니면 조종사어르신 실력이 미숙한 것인지 유뽕이는 시시때때로 본능적인 함성을 질러댑니다. 시간이 참으로 길게만 느껴졌습니다.

 

제주도에서 지내는 이박삼일의 일정동안 유뽕이는 자기세상을 만난 것만 같았지요. 정작 주인공인 할머니는 할아버지 수발에 유뽕이녀석 챙기느라 고생만 하셨습니다. 그래도 아들들과 딸이 손자, 손녀까지 데리고 와 웃고 떠드는 시간만으로도 크게 만족하셨답니다.

가족이란 그렇게 모이고 나누며 한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엄마는 생각했지요.

하루에 서너 시간의 잠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집 떠난 자리가 불편했지만, 추억 만들기는 제대로 하고 왔습니다.

 

속초로 돌아오는 날.

딸 보내는 것이 서운했던 외할아버지는 방아 찧은 쌀 한 자루 트렁크에 넣어주십니다.

외할머니도 주섬주섬 고춧가루 빻았다며 봉지마다 담아 건네셨습니다.

“이건, 고운 거니까 물김치 할 때 넣어 먹어라!”

“응...., 엄마, 잘 먹을 게! 마침 고춧가루 떨어졌는데....히히히!”

여름내 땀방울로 힘겹게 거둔 열매를 딸인 엄마는 쉽게 얻어갑니다.

선뽕누나, 유뽕이녀석만 최고인양 챙기느라 부모님 잊고 살았는데,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또한 자식생각만 하시네요. 이것이 내리사랑인가 봅니다. 고추냄새인지 눈앞이 매캐해지며 눈물이 나려합니다.

 

유뽕이 개학 하루 앞둔 날 엄마는 부랴부랴 차를 몰고 집으로 왔지요.

달리는 차안에서 조수석을 향해 엄마가 말합니다.

“유뽕아! 내일은 개학이라 학교 가는 거야? 알지? 개학을 축하합니다!”

엄마는 마치 생일을 축하하듯 큰소리로 웃으며 외쳐줬답니다. 하긴, 유뽕이 입장에서 보면 개학이 축하할 일은 아니지요.

마지못해 인정한다는 표정으로 힘없이 대답하네요.

“네에!”

축하한다는 말은 좋은 뜻인데, 어쩐지 얼굴이 밝아지지 않습니다.

한참을 뭔가 생각하는가싶더니 한마디 합니다.

“엄마, 12월은 겨울방학이예요!

“어.., 맞어! 겨울 방학되면 뭐 할 건데?”

“비행기타고 놀러가요!”

우와! 유뽕이녀석 제주도 한 번 다녀오더니 똥구멍에 바람이 제대로 들어버렸네요.

가정경제는 어쩌라고 개학도 하기 전날 또 놀러갈 생각만 하다니요.

그런 생각이라도 말한 것이 기특해서 엄마는 기를 살려줍니다.

“그래! 우리 다음엔 아빠랑 누나도 같이 가자! 9월, 10월, 11월이 지나면 12월 되고 방학 또 할 거야!”

방학을 또 한다는 엄마 말에 금세 입이 헤벌쭉 해집니다.

 

월요일 아침.

아빠와 누나는 부산스럽게 씻고 유뽕이 등교준비를 하느라 바쁩니다.

현관문을 나서는 아빠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말합니다.

“아휴! 학교가기 싫다. 개학이 정말 싫다구!”

“엄마, 나도 아침에 월요일인 거 알고 정말 잃어나기 싫더라. 아! 개학싫어!”

어느새 누나도 한마디 끼어듭니다. 우리 집엔 개학이 싫은 사람들만 가득 하네요.

늦게 일어난 유뽕이가 방에서 나오며 아빠를 향해 툭 던지는 말에 모두 웃고 말았지요.

“아빠! 겨울방학 때는 누나랑, 아빠랑, 엄마랑, 유뽕이랑 비행기타요!”

밤새 비행기타는 꿈만 꾸었나봅니다.

개학이 싫은 건 유뽕이도 똑 같은데, 겨울을 기다리는 맘으로 참는 겁니다. 손꼽아 기다릴 것이 생긴 것이지요.

 

자동차열쇠 챙겨들던 아빠가 출근하면서 엄마를 향해 말합니다.

“몇 달 동안 돈 좀 잘 모아봐! 유뽕이녀석 때문에라도 다 같이 비행기 한 번 더 타야겠다!”

나 원 참! 비행기가 무슨 놀이기구냐고요.

엄마는 그저 어이없게 웃으며 오리입이 됩니다.

우리 집에선 유뽕이가 왕입니다.

 

 

2013년 8월 26일

겨울방학이 두려워지는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