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274

유뽕이 시리즈 117 - 공개수업


BY 박예천 2013-07-11

 

                                              공개수업

 

 

 

 

유뽕이 가방에 공개수업 안내문이 들어있습니다.

새로 옮긴 특수학교에서는 처음인 셈이지요. 예전 일반학교에서도 몇 번 있어 가봤지만, 어쩐지 형식적인 교육행사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예전 엄마 어릴 때 장학사님들 오신다면 쩔쩔매며 수업에 임하던 선생님들의 모습까지는 아니지만, 요즘도 비슷한 기분이 들었지요.

예행연습을 거친 수업분위기와 짜여 진 각본대로 움직여지는 듯 한 전체적인 흐름이 느껴졌으니까요.

평소엔 잘 사용되지 않았을 실험도구들이나 먼지 앉은 교재교구들 보며 속으로 웃곤 했습니다. 누군가 내 수업을 참관한다는 부담은 참 크지요.

그래서 이번 유뽕이 공개수업에도 갈까 말까 좀 고민이 됐는데, 아들 기 살려주자는 단순한 생각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공개수업은 2회였는데, 하루는 교과수업시간이었고 몇 주 뒤에 또 한 번 치료수업시간으로 나누어 졌더군요.

 

첫 번째 공개수업일.

유뽕이엄마는 평소엔 걸치지도 않던 여름정장 한 벌을 말끔히 다림질 해두었지요.

오전 11시인 3교시 수업시간에 맞춰 가면 되는데, 아들 등교시켜놓고 일찌감치 준비를 합니다.

경대 앞에 앉아 오랫동안 얼굴에 그림(?)을 그립니다. 교회 갈 때만 쓰던 분첩을 꺼내 뽀얗게 펴 바르고 연분홍 입술연지도 발랐어요. 숱이 줄어든 눈썹도 신경 써서 다듬고 속눈썹도 최대한 치켜 올라가게 힘을 주었지요. ‘에휴! 누굴 보여주겠다구 이 더위에 페인트를 칠하나?’ 속으로 중얼거리며 거울을 뚫어져라 째려봤지요.

잘생긴 아들 녀석 수준에 맞추는 일이 쉽지 않네요.

 

2층 교실로 들어서니 마침 쉬는 시간인데 아이들은 커다란 모니터에서 나오는 ‘써니’ 영상에 맞춰 춤을 추며 놀고 있네요.

수업종이 울리자 각자 정해진 자리로 갔는데, 유뽕이 녀석은 뒤에 앉은 엄마 향해 자꾸만 윙크를 날립니다. 초등학교시절 공개수업 때도 선생님은 무시하고 엄마에게 양손 올려 하트를 연속적으로 그리는 바람에 얼굴이 빨개지곤 했는데 미리 걱정이네요.

3교시 공개수업은 과학과목이었어요. 자석의 성질에 대해서 배운답니다. 전체적인 수업내용과 수준이 딱 유치원 7세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 엄마의 어린이집 근무시절에 했던 자석 수업과 거의 흡사했으니까요.

유뽕이 짜식은 그런 수업에조차 관심이 없습니다. 혼잣말을 하거나 엄마만 해바라기 하느라 마음이 콩밭에 간 불량한 태도입니다.

그런 와중에도 엄마는 아들의 분명한 변화를 읽어낼 수 있었지요.

일반학교 시절에는 없던 차분한 자세도 그렇고, 확실히 유뽕이의 감정은 안정적이고 편안해보였습니다. 비록 혼잣말을 중얼댔지만 들릴 듯 말 듯 작게 몇 번 뿐이었습니다. 유뽕인 불안하고 겁이 나면 혼잣말이 커지고 많아지거든요. 표정도 한 결 밝아진걸 보면, 지금의 학교가 녀석에게 잘 맞나봅니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오려는데, 유뽕이가 따라옵니다.

엄마 따라 집에 가겠다면 어쩌나 덜컥 걱정을 했는데, 저벅저벅 다가오더니 하는 말.

“엄마! 안녕히 가세요!” 꾸벅 고개를 숙입니다.

기특하고 대견한 한편, 매정하게 엄마를 밀어내는 것 같아 서운한 맘이 살짝 들었습니다.

울 아들이 참 잘 컸네요.

 

그 후, 2주 뒤쯤 엊그제 화요일에 음악치료 공개수업이 있었습니다.

푹푹 찌는 더위라 엄마는 지난번보다는 얇게 얼굴화장을 하고 학교에 갔지요.

전날 밤에 자면서 유뽕이에게 물어봤습니다.

“유뽕아! 엄마 내일 학교에 갈 건데, 음악치료실은 몇 층에 있어?”

“1층이요!”

녀석의 말대로 1층 구석에 위치한 치료실 문을 열자, 유뽕이와 고등학생 형아가 선생님 앞에 나란히 앉아있습니다.

교실내부에 구비된 각종 악기들을 훑어보니 생전 처음 보는 모양도 많네요.

초등학교 근무경력이 있는 선생님이라서 그런지 아이들 대하는 태도에서 연륜이 묻어났습니다.

우와! 우리 유뽕인 신이 났어요. 악기마다 혼신의 힘을 다하여 연주하고 흥까지 곁들여 엉덩이도 실룩거립니다. 어깨춤은 자동적으로 으쓱거리고요.

아프리카 악기 ‘젬베’라는 북을 난타 식으로 연주하는데,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엄마가 감동한 것은 완벽하거나 훌륭한 연주 때문만은 아니었지요.

중간에 박자 놓치거나 실수 할 때 나온 유뽕이의 순간적인 말이 엄마를 뭉클하게 했습니다.

둥당둥당 북을 선생님, 형과 함께 노래에 맞춰 치다가 유뽕이녀석이 박자를 놓친 모양입니다. 갑자기 손을 멈추더니 이렇게 말하네요.

“아차! 아깝다!”

미안한지 선생님을 향해 빙긋 웃는 여유까지 보입니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언어표현을 보며 엄마는 만족한 웃음이 나왔습니다.

이제 겨우 두 번째 접한다는 젬베를 울 아들이 정말 잘 두들깁니다. 가끔 중간에 틀리게 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제 박자를 따라잡습니다.

팔불출 엄마는 아빠에게 보여줄 심산으로 휴대전화를 들고 동영상에 담습니다.

혼자보기 정말 아까운 장면들이었거든요.

 

수업이 끝난 후, 유뽕인 지난번처럼 또 엄마에게 안녕히 가시라고 정중히(?) 목례를 한 뒤 총총히 자기교실로 사라졌습니다.

치료선생님과 잠깐 나눈 대화가 가슴에 남습니다.

“유뽕이 어머니가 어떤 분일까 참 궁금했어요! 어쩜 아들을 저렇게 사랑스럽고 긍정적으로 키웠을까? 꼭 만나고 싶었습니다. 유뽕일 보면, 특별한 교육관을 가지고 키운 부모님이겠구나 짐작이 가거든요. 저는 오히려 유뽕이한테 배웁니다. 지난번 실수 한 게 있었는데, 유뽕이가 저한테 그러더군요. ‘괜찮아! 할 수 있어요!’라고요. 저도 이곳 아이들에게 ‘너는 할 수 있다’는 말을 잘 해주지 못했는데...., 유뽕인 언제나 밝고 긍정적인 말만 해요. 엄마가 그러신가 봐요? 애들은 엄마를 따라 하잖아요!”

솔직히 대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대단한 교육관이거나 긍정적이기만 한 엄마가 못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겨우 이런 대답만 했답니다.

“실은...., 저도 유뽕이 한테 배우면서 살아요! 저 녀석은 부정적인 말은 절대 못하게 하니까요....호호호”

 

두 과목의 공개수업을 마치면서, 엄마의 잔잔한 가슴에 파도가 일렁거렸습니다.

부족하다 여긴 내 아들이, 아들보다 더 형편없는 제 어미를 이토록 대단하게 만드는구나.

무엇하나 내세울 거 없는 인격과 성품을 지닌 내가, 아들로 인해 졸지에 훌륭한 교육관을 지닌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은 평생 제 스승입니다.

엄마를 낮아지게 하고 다듬어 주는 일등 교사입니다.

언제나 아들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겁니다.

 

장맛비가 그칠 새 없이 퍼붓는 지금순간, 엄마의 가슴에도 행복한 빗줄기가 충만하게 적셔집니다.

그 비는 엄마 곁에서 맴도는 유뽕기운의 강력한 영향으로 평생 쏟아질 예정이라는 기상 특보입니다!!!

 

 

 

 

2013년 7월 11일

유뽕군의 공개수업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