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파배우
한동안 잠잠했던 유뽕군의 분노발작이 며칠 동안 지속됩니다.
별것도 아닌 일에 짜증내고, 엄마만 보면 발톱을 숨긴 맹수처럼 달려듭니다.
학교에서 돌아와 혼자 잘 놀다가도 엄마가 뭐라 말거는 순간 말꼬리 잡고 시비를 거네요.
덩치가 커서 두들겨 팰 수도 없고 상대하는 엄마만 지쳐갑니다.
요즘은 어디서 또 욕을 배웠는지 마땅한 대상이 없으니 엄마한테 덤비며 실습(?)합니다.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옷가지들을 보고 엄마가 한마디 했지요.
“야! 옷이 이게 뭐냐? 아이 참내!”
분명 여기까지만 했는데, 엄마 말 그대로 흉내 내다가 끝에 욕을 달아놓습니다.
“옷이 이게 뭐냐? 아이 참내! 이 ㅇ새끼야!”
졸지에 엄마는 그 유명한 강아지가 되었습니다.
놀라는 엄마표정이 재밌는지 더 자주 거센 욕을 합니다.
엄마는 다그치며 혼내려다 묘안을 생각해냈지요.
“유뽕! 안되겠다. 너 이제부터 욕할 때마다 윗몸일으키기 열 번 하기!”
“네에! 알았어요. 엄마!”
처음엔 자신만만 옆방으로 가더니 역기 운동기구에 누워 윗몸일으키기 열 번을 하고 옵니다.
뭐가 간지러운지 혼잣말로 키득거리며 신이 났습니다.
그것도 잠시, 욕하는 횟수가 늘어나다보니 벌칙으로 정한 윗몸일으키기가 힘겨워졌나봅니다. 또다시 화딱지를 냅니다.
“싫어! 안 할 거야. 윗몸일으키기 안 해!”
정말이지 한 대 후려치고 싶을 정도로 속이 부글거리네요.
저녁때가 다 되어 엄마는 주방에서 밥을 해야 하는데, 녀석의 분노는 잦아들지 않습니다.
음식 준비하는 엄마 곁에 바짝 다가와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났습니다.
무슨 말만하면 싸움을 걸어오는 태도입니다.
사춘기 증상이려니 받아주다가도 엄마는 가끔 힘이 듭니다.
가족 중 유독 엄마만 만만하게 여기고 자기감정을 마구 풀어놓습니다.
친구도 없어 가엾다는 생각에 받아주기만 한 것이 잘 못된 방법이었나, 조금은 후회가 밀려옵니다.
도마질 하다가 주방문틀 앞에서 울상 지으며 소리치는 녀석을 쳐다봅니다.
자조적인 목소리로 싱크대 쪽에서 한마디 건넸지요.
“으이구! 쟤는 누구야? 야! 넌 도대체 어디서 왔냐?”
솔직히 대답을 기대하고 물어본 말은 아니었습니다. 신세한탄 격으로 엄마 혼자 말한 거였지요.
헌데, 유뽕이가 징징거리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보내주셨지요!”
엄마는 빵 터지며 웃고 말았습니다.
매일 밤 잠들기 전, 아들의 손을 깍지 끼고 기도를 해줍니다.
“유뽕아! 너는 하나님의 엄마에게 보내주신 선물이야! 알았지?”
그걸 기억하고 엄마에게 똑똑하고 당당하게 쐐기를 박아주는 겁니다.
잊지 말고 상기하라! 유뽕이는 하나님이 보내주신 것이라!
녀석의 말에 웃기는 했는데, 아직도 치솟는 분노는 식을 줄 모릅니다.
더 방방 뛰며 주먹으로 벽을 치다가, 자기 몸을 때리기도 합니다.
수돗물에 상추 씻던 것을 멈추고 돌아서 엄마가 휴대폰을 집어 듭니다.
“우리 유뽕이 화내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야겠다! 자 계속해봐! 화도 잘 내고 있네!”
팔딱거리는 아들 앞에 휴대폰 화면 가까이 대며 동영상을 찍습니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며 목에 핏대를 세우던 유뽕군.
촬영 들어갔다는 엄마 말에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급조된 얼굴표정으로 어색한 미소 짓고 한다는 말이 “엄마! 사랑해요!”라며 손가락 하트를 그리는 겁니다.
불끈 쥔 주먹으로 부엌 벽을 마구 치던 동작도 전화기 화면을 들이대니까 완전히 바뀝니다.
나비가 날 듯 무용을 하는지 주먹만 쥐고 있을 뿐 나풀나풀 춤추는 모양이네요.
아무리 카메라를 의식해도 그렇지 너무 가식적인 연기 아닌가요?
가증스러운 짜식!
엄마 아들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연기력은 요즘 아이돌의 발연기 보다 훨씬 낫더군요.
녀석의 분노감정에 일일이 자극받거나 대꾸하기 싫어 맘을 삭히려고 생각해 낸 즉흥적인 대안인데 나름 좋은 해결법이었습니다.
앞으로 종종 써먹을 겁니다.
찍은 동영상을 보여주니 한참 쳐다보다가 묘한 표정을 짓고 웃습니다. 자기가 봐도 그 모습이 부끄러웠던 모양입니다.
하여간 엄마 닮아서 연기력 하나는 끝내주는 아들입니다.
뭐든 최고인 유뽕이!
엄마도 널 사랑한다.
내 새끼야!(이건 욕이 아니지요?)
2013년 5월 22일
아들의 연기를 감상하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