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하원칙 뛰어넘기
일반적으로 아이들이 말을 하게 되면서 시작하는 것이 질문입니다.
세상천지 궁금한 것들뿐이라서 엄마나 아빠에게 온통 던지는 말들이지요.
눈동자를 빛내고 집게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게 뭐야?’ 혹은 ‘저건 뭐야?’로 재잘거립니다.
여섯 살이 다되도록 말문이 열리지 않던 유뽕이에겐 기대할 수조차 없던 모습이었습니다.
엄마가 몇 번이고 물어봤지요.
“유뽕아! 이건 뭐야?”
그렇게 해야 겨우 사물의 명칭정도를 답하곤 했습니다.
유뽕이 아기 때 아파트에 살던 시절.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이웃남자가 두 돌쯤 되는 아들을 안았는데, 자기 아빠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더라는....., 그게 무척이나 부러웠다는 남편의 얘기를 듣고 한참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세상에 지극히 평범한 일상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간절히 소망해도 이뤄지지 않는 다는 것을 그때 알았지요.
포기하지 않고 반복해서 일깨워준 결과였을까요?
유뽕이는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묻는 말에만 단답형이거나 명사로 말하더니 가끔은 묻기도 합니다.
처음엔 물건의 이름정도를 궁금해 하는 단순한 물음이었습니다.
“엄마! 저건 뭐예요?”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소리 듣더니 정확한 이름이 알고 싶었나봅니다.
“응..., 저거? 헬리콥터지!”
집에 손님이 오면 묻습니다.
“누구예요?”
“유뽕아! 인사해 아빠친구니까 삼촌이야!”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에 시작된 질문들이었지요.
또래에 비하면 형편없는 수준이었지만, 엄마는 그래도 녀석이 자발적으로 물었다는 것에만 의미를 두고 뛸 듯이 기뻤답니다.
특수반선생님께 도움청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6하원칙 중심으로 수업에 적용시키거나 이끌어달라고 부탁했거든요.
시간이 좀 흐르자 녀석의 질문이 다양해집니다.
티브이 드라마에서 아이가 울거나 화를 내는 장면이 나오면 쪼르르 엄마에게 달려옵니다.
“엄마! 쟤는 왜 그래요?"
“어..., 엄마한테 혼나서 슬프대!”
답을 들었으면 궁금증이 해결되어야 하는데, 녀석은 계속반복해서 같은 말만 물어봅니다.
“엄마! 쟤는 왜 그래요?”
나중엔 대답하던 엄마가 짜증 날 정도로 고장 난 녹음기 같았습니다.
그제야 엄마는 눈치를 챘지요.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 아니라, 특수반선생님이 하던 학습의 연장선이었던 것입니다.
학교에서 하던 말투를 그냥 집에서 무의미하게 물어보는 것이지요.
녀석의 그런 행동에 조금은 맥이 빠졌지만, 곧 생각을 바꿨습니다.
스스로 깨닫게 된 것이 아니라도 습관을 들이면 어느 순간 녀석의 말이 될 것으로 믿었습니다.
기대 저버리지 않고 유뽕이의 6하원칙 익히는 순서는 차츰 틀을 잡아갔지요.
중학교에 입학 한 후로는, 질문하는 의도를 거의 정확히 파악하고 대답합니다.
“유뽕아! 너 언제 소풍가지?”
“5월 16일 금요일이요!”
‘언제’라는 질문의 뜻을 이해하고 있는 겁니다.
뒤죽박죽 유뽕이 머릿속에서 엉킨 단어들을 순서대로 맞추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2013년 4월 16일 바로 오늘 아침의 일입니다.
엄마는 머리감고 미처 말리지 못한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감쌌지요.
바쁜 등교시간 가족들의 아침준비가 급했기 때문입니다.
부랴부랴 토스트를 만들어 준비하고는 거실 쪽으로 나오며 수건을 벗었습니다.
잠에서 막 깨어난 유뽕이가 엄마를 쳐다보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건네는 겁니다.
“엄마! 머리 안 빗었지요?”
처음엔 잘못 들었나 했는데, 분명 그렇게 말했습니다.
“어..., 엄마 머리가 좀 이상하지? 빗으로 빗어야겠지?”
“네..!”
속으론 가슴이 쿵쾅거리며 감동이 밀려왔지만 녀석 앞에서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제대로 말을 했다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알게 해야 합니다.
유뽕이앞에서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고 기뻐하면, 녀석은 자기가 누구나 하는 평범한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엄마 위해 아주 거대한 이벤트를 해준 것으로 알지도 모릅니다.
속으로만 기뻐하며 칭찬을 아꼈습니다.
'네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란다!'
누군가에겐 참으로 하찮은 일이지요.
하지만, 유뽕엄마는 오전부터 점심때가 다 된 지금까지 감동의 물결 속에서 헤엄치고 있답니다.
막연하게만 희망했던 유뽕이의 6하원칙 이해하기가 수년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야 조금씩 틀을 잡아가는 그림입니다.
또래 친구들보다 여러 부분 늦는다한들 어떻습니까.
아들과 천천히 걷다보니 감동할 것이 이리도 넘치게 많은 것을.....
2013년 4월 16일
아들의 질문에 감동하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