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벌즈연주가
이제 유뽕이는 중학교 2학년 열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 조금은 어색하지만 적응해가고 있지요.
순하기만 했던 녀석이 싸움닭이라도 되었는지, 통학버스에서 내리면서 누구랑 싸웠다느니 때렸다느니 말을 합니다.
“태현이 형아랑 싸웠어요! 때렸어요!”
“복동이하고 싸웠어요!”
예전 같으면 그런 이야기를 듣고 당황하거나 우울했을 엄마도 단련이 되어 태연하게 대답합니다.
“어..., 그랬어? 유뽕이도 퍽 때려주지 그랬어? 내일 엄마가 몽둥이 들고 학교가서 복동이 두들겨 패줄까? ‘왜 우리 아들을 괴롭히는 거야? ’하면서 말이야!”
보통의 아이들 같으면 얼씨구나 엄마 기세를 빌려 으쓱할 텐데, 맘 착한 유뽕이는 펄쩍 뜁니다.
“아니야! 엄마가 몽둥이 때리면 안 돼! 유뽕이가 말로 할 거야. 용서해달라고 할거예요!”
“에이, 유뽕아! 친구한테는 그냥 ‘미안해!’하면 돼!”
그렇게 하나 둘씩 스스로 부딪히고 해결해 가면서 세상과 사람을 배우게 되는 것이지요.
엊그제부터 학교에서 무슨 활동을 했었는지, 집에만 오면 난리가 났습니다.
아마도 음악치료시간에 했던 것을 실습하는 모양입니다.
“엄마! 시즈벌렘 쳐요!”
“엥? 그게 뭔데? 어떻게 하는 거야?”
뭐라고 듣기는 했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던 겁니다.
엄마가 쉽게 이해하지 못하자 양손바닥을 가슴 앞쪽에서 크게 한 번 쳐 보입니다.
“뭐야? 손뼉치라구?”
엉뚱한 대답만 하는 엄마가 답답했는지, 부엌으로 들어갑니다.
라면 먹을 때 덜어먹는 스텐그릇 두 개를 집어 들더니 쨍하고 부딪히며 뭐라 흥얼거립니다.
제 딴엔 노래에 박자를 맞추려는 것이지요.
그제야 엄마는 유뽕이가 말한 악기이름이 떠올라 빙긋 웃었습니다.
“유뽕아! 심벌즈 말하는 거야? 자! 이걸로 해보자!”
엄마는 그릇장 안에 있던 냄비뚜껑 두 개를 녀석에게 건네줍니다.
시범 보이듯 뚜껑 손잡이를 양손가락으로 잡고 짠! 소리가 나게 했지요.
표정이 환하게 밝아진 유뽕이는 거실과 자기 방을 오가며 냄비뚜껑 연주를 시작합니다.
“잠자리 날아다니다, 쨍! 장다리꽃에 앉았다 쨍!.....,”
까르륵 숨이 넘어가게 웃으며 정말 신이 난 얼굴입니다.
이것저것 아는 노래가 전부 동원됩니다.
“둥글게, 둥글게 쨍!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을 춥시다. 쨍!”
덩실덩실 춤추며 심벌즈연주에 빠져버린 유뽕이를 바라보다가 순간,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괜히 냄비뚜껑을 마련해 줬구나 하고 말입니다.
날마다 옥상에선 2층 증축공사를 하느라 기계소리에 쾅쾅 소음이 만만치 않은데, 1층 소음담당자로 유뽕이가 임명된 꼴입니다.
공사하는 아저씨들과 교대로 쿵더쿵 온종일 연주에 여념이 없네요.
노래 한곡이 무사히 끝나면 그래도 아무데나 냄비뚜껑을 던져두지 않고 있던 찬장에 잘 올려둡니다.
딴 곳에 몰두해 있다가도 생각났다싶으면 쪼르르 달려가 양손에 냄비뚜껑을 챙겨들고 울려댑니다.
엄마는 그저 아들이 좋아하는 모습만 흡족하게 바라볼 뿐이지요.
유뽕이 어릴 적에도 그랬습니다.
녀석이 드럼흉내를 내며 여기저기 두들기며 다니곤 했어요. 엄마는 거실바닥에 온갖 냄비와 프라이팬 늘어놓고 기다란 튀김젓가락을 주었지요. 원하는 대로 맘껏 쳐보라고요.
한동안 고물상에서나 들을 수 있는 고철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엄마는 유뽕이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구해주고 싶습니다.
그것이 녀석에게 도움 되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이라면 주저하지 않을 겁니다.
설사 깊은 산속에 사는 뱀을 잡아오라 한들 못갈까요.
아빠보다도 키와 발이 커진 유뽕이.
생각주머니도 분명 꼭꼭 자라고 있을 것이라 믿으며, 오늘도 엄마는 기도의 줄을 잡고 있지요. 숨 쉬는 순간조차 아들의 시간으로 기꺼이 내어주고 싶을 만큼 간절한 염원을 담아서요.
세상에 나왔으니 아들 몫의 행복은 제대로 누려봤으면 합니다.
학교에서 돌아올 유뽕이는 누구랑 또 싸우고 때렸다고 할까요?
녀석을 만날 시간이 점점 다가옵니다.
어느 때, 어떤 곳의 누구를 만나 봐도 내 아들만큼 잘 난 녀석이 없네요.
당연하지요. 엄마의 최고 작품이니까요!
얼른 냄비뚜껑 찾아 녀석이 잘 보이는 곳에 올려놓아야겠습니다.
둥당거리는 소리가 듣기엔 힘들지만, 녀석의 행복한 표정은 아주 걸작이거든요.
2013년 3월 11일
심벌즈연주가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