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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뽕이 시리즈 106 - 오이트림


BY 박예천 2013-02-01

 

               오이트림



 

우리 집엔 물돼지 한 마리가 살지요. 수시로 물을 먹어 정수기에서 불이 날 지경입니다. 녀석의 전용 컵까지 있어 항시대기중이랍니다.

엄마는 유뽕이가 물을 벌컥거리고 마시는 꼴만 보면 얼른 말합니다.

“야! 물돼지! 작작 좀 마셔라!”

누가 들으면 술 좀 끊으라는 말로 알겠지요?

“아냐! 나 물돼지 아닌데, 난 전유뽕이야!”

별명으로 놀리기라도 하면, 자기 이름이 아니라며 성까지 붙여 제대로 알려줍니다.

방금 전에도 또 물 마시려는 녀석을 불러 물돼지 얘기 쓰고 있노라고 글 쓰던 노트북 화면 보여주니까, 쭉 읽어보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돼지 아냐, 물 젖소야! 물 코끼리 할 거야!”

돼지보다는 젖소나 코끼리가 위엄 있다고 생각 되었나봅니다.

녀석의 요구대로 물돼지 대신, 이제부터 우리 집엔 물코끼리 한 마리가 살기로 합니다.


아빠 닮아 방귀도 잘 뀌는 유뽕이.

한동안 별명이 ‘방귀쟁이’였지요.

유독 소리에 민감한 녀석이라 어쩌다 엄마가 재미있는 의성어 섞어 흉내 내면 숨넘어가게 웃습니다.

별것도 아닌 일에 정말 재밌어합니다.

한동안 종류대로 방귀를 구분하고 선별하며 키득거렸습니다.

엄마방귀는 뾰족방귀, 자기는 보들방귀라며 말이지요.


엉덩이에서 나오는 방귀엔 심드렁해졌는지, 요즘은 입으로 내는 트림소리에 꽂혔습니다.

일부러 만들어 하는 수준이 되어 신경을 곤두세우고 연구 중입니다.

트림을 자기가 원하는 순간에 맘대로 하고 싶어 더 자주 물  마십니다.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발사되는 미사일 트림입니다.

‘꺼억!’소리가 나자마자 엄마 곁으로 쪼르르 달려오지요.

“엄마, 유뽕이가 트림했어요!”

“그래? 잘 했어!”

트림했다는데, 하지 말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냥 잘 했다 그랬더니 아무 때나 입술을 내미네요.

‘꺼억’ 소리와 함께 저녁나절 먹은 메뉴가 다 섞여 나옵니다.

쫄깃한 감자만두 열 두 개가 입속에서 다시 튀어나올 것만 같네요.

대단한 냄새를 동반한 유뽕군의 트림입니다.

가족끼리 밥 먹는 중간에도, 교회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 차 한 잔 나누다가도 녀석은 입으로 가스를 뿜어댑니다.

소리만 들어보면, 변사또 생일날 한상 푸지게 잘 얻어먹은 거지 이몽룡 같습니다.

며칠 굶다 오지게 챙겨먹은 뱃속에서만 울려나올 수 있는 풍악소리이지요.


유뽕이의 트림은 이제 신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입술 쭉 내밀거나 크게 벌려 원하는 단어를 읊조릴 수 있답니다.

절대 허풍이 아닙니다.

엄마가 증인이 되어 확인한 바가 있고, 녀석도 장난삼아 동영상으로 찍기도 했으니까요.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거울 앞으로 쏜살같이 뛰어갑니다.

제 얼굴표정을 들여다보며 깔깔거리며 웃습니다.

그리고는 엄마 곁으로 달려와 위풍당당 알려주기도 합니다.

“엄마, 유뽕이가 오이트림을 했어요!”

처음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요. 오이 먹고 트림을 했을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채소 먹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녀석이 자발적으로 오이를 씹어 먹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게 뭐야? 오이가 트림을 했어?”

“아니요, 트림이 오이 그래요!”

자세히 유뽕이의 행동을 살펴보았지요.

우선 물 한 컵 마시다가 트림이 나올 조짐이 보이면 거울 앞으로 달려가 입술 오므려 음을 내는 겁니다.  

우연히 트림을 하다가 ‘오-이!’라고 소리가 나왔나본데,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부스라도 된 양 우쭐대고 있는 겁니다.

몰래 엄마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동영상까지 찍습니다.

토인처럼 입술을 두툼하게 내밀고는‘오-이!’라며 길게 트림합니다.

무슨 야동 찍는 여배우도 아니고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우습기만 합니다.

자신이 찍은 동영상을 반복해서 돌려보며 연실 거실바닥 뒹굴고 까르륵 거리네요.

하긴 자신이 봐도 입술에서 나오는 ‘오-이!’가 배꼽 떨어질 지경이긴 하지요.


이제 녀석의 자신감은 원하는 말을 다 트림으로 해결하겠다고 작정한 모양입니다.

물만 한 입 물으면 오이뿐만 아니라 다른 소리에 도전하기도 합니다.

“끄-억! 아-이-스-크-림!”

“꺽-! 요-구-르-트”

일단은 자신의 애호식품부터 트림발음으로 불러봅니다.

무슨 괴기영화 주인공인 듯 혀까지 꼬아가며 트림을 보탭니다.


유뽕이의 머릿속에는 세상구석구석 재밌는 것만 먼저 골라 담는 안테나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어른들이 눈치 채지 못하고, 최신식 기계도 잡아 낼 수 없는 것을 녀석의 상상본부에서는 척척 알아차리지요.  

밤은 깊어가고 곧 잠자리에 들 시간이 가까워오는데,

우리 집 물코끼리가 또 정수기 앞으로 걸어옵니다.

길쭉한 입술 내밀어 이번엔 무슨 트림을 만들까요?

꺼---억! 






2013년 1월 31일

트림소리박사 유뽕엄마 씀.